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 내정됐다. 이에따라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산은금융지주 민영화가 급물살을 탈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관급 인사를 산은지주 회장에 내정한 것은 산은 민영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그동안 인적분할을 통해 산은지주와 정책금융공사를 설립하는 등 민영화의 1단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국책은행의 역할론이 강조되면서 수신기반 확대나 기업공개를 통한 지분매각 등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정책금융, 중소기업지원 기능이 중시되면서 민영화 논의는 물건너갔고 우리금융 민영화보다 우선순위에서도 밀리게 됐다.
산은 체질개선 시급해
산은은 오는 2014년 5월까지 기업공개(IPO) 등의 작업을 끝내고 최초 지분매각이 이뤄지도록 산업은행법에 명시돼있다. 하지만 산은은 현재 수신기반이 시중 은행들에 비해 크게 모자라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체질개선이 가장 시급한 문제다.
산은의 총부채 중 수신기반 척도인 예수금 비중이 16.9%에 불과해 70% 안팎인 시중은행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또한 유동성 및 건전성과 반비례하는 예대율도 작년 6월말 기준 352%에 달했다. 시중 은행들은 100% 내외다.
앞서 민유성 회장이 리먼브라더스, 외환은행, 태국 및 인도네시아 은행 등을 인수하려 했던 이유도 수신기반을 확보하고 글로벌 투자은행(IB)로 도약하기 위해서였지만 이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강만수 특보가 산은지주 회장으로 가게 되면서 산은의 민영화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강 위원장은 금융권 및 경제정책 전반에 걸쳐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또한 현재 정부 및 금융당국과도 코드를 맞춰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3월 10일 산은지주 회장에 강 위원장이 내정한 데 대해 “믿고 통으로 맡길 사람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금융위도 “강 위원장이 국내외 경제, 금융 전반에 걸친 폭넓은 지식과 풍부한 경륜을 바탕으로 미래의 산은금융지주를 이끌어갈 적임자로 평가됐다”고 내정 배경을 설명했다.
강만수 민영화, 메가뱅크 탄력받나?
강 위원장이 산은 수장의 역할을 맡게됨에 따라 금융권 전체에 새로운 판도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민영화 우선 순위가 우리금융에서 산은으로 넘어올 수 있는데다 최근 김석동 위원장이 거론한 메가뱅크(초대형은행) 육성 아이디어에서 산은이 핵심적 역할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 위원장 역시 ‘메가뱅크’ 추진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메가뱅크를 잘 추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메가뱅크는 산은지주와 우리금융, 기업은행 등 정부 소유 은행을 인수합병(M&A)해 자산 규모 500조원 안팎의 세계 40∼50위권 은행을 만드는 것인데 현재 금융당국은 우리금융 등과의 M&A에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우리금융 민영화와 맞물려 어떤 방안이 나올지 주목된다.
산은금융지주의 역할과 영향력도 커지게 됐다. 산은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강 위원장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다. 강 위원장이 취임하면 산은 내부 분위기가 반전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임직원들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산은 관계자는 “산은지주 민영화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힘 있는 사람이 와서 이를 이뤄졌으면 하는 기대가 컸다”는 의견도 나왔다. 관료 출신인 강 위원장이 정부와 산은간의 다리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다만 강 위원장은 앞으로 금융당국과 산은 민영화, 메가뱅크 문제 등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과제로 남게 됐다.
강 위원장은 행시 8회로 현 김석동 금융위원장(행시 23회)과 차기 금융감독원장으로 유력시되는 권혁세 금융위 부위원장(행시 23회)보다 한참 선배이자 상관이었다. 현직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산은 민영화를 주도해야 할 금융당국 수장과 실세 금융지주 회장과의 조율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보은인사’ 각계 반대도 커
한편 강 위원장이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내정에 따라 각계의 반대도 만만찮다. 야당들과 시민단체들은 이번 인사에 대해 ‘보은인사’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3월 10일 논평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고집불통 인사, 오기인사의 결정판”이라며 “이 대통령은 인사를 보은을 위해 나눠줄 수 있는 자신의 쌈짓돈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차 대변인은 “강만수 내정자가 어떤 사람이냐”라며 “IMF 외환위기는 물론이고 이 정부 들어 고환율 정책을 고집해 물가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위기로 몰아간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돌고도는 ‘물레방아 인사’ ‘내 맘대로 인사’의 극치”라며 “함량미달의 보은인사로 상하이 총영사를 임명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도 이 정부는 반성은 커녕 보은인사, 물레방아인사, 내 맘대로 인사만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도를 넘은 자기 식구 챙기기에 이제는 국민들이 환멸을 느끼고 있다”며 “대통령이 무슨 자리 하나만 생기면 무조건 자기 식구부터 떠 올리니, 회전문 인사라는 말도 지겨울 정도”라고 비판했다.
우 대변인은 “강만수 특보는 관료 출신으로 금융기관 경영능력이 전혀 입증된 바 없다”면서 “국책 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은 우리 산업개발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는 만큼, 강 특보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진작 퇴진했어야 할 인사를 대통령 경제특보,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등 요직에 앉힌 것을 넘어 막중한 임무를 지닌 국책은행장에 임명하려는 행태는 전형적인 보은인사”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또 “자질은 물론 국민 정서를 무시하고 실시하는 보은인사는 향후 이명박 정부에게 커다란 짐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려 하지 말고 강만수 내정을 철회하라”고 덧붙였다.
산은노조 역시 성명서를 통해 “강 내정자는 관료출신으로 금융기관 경영능력이 검증된 바 없다”며 “이미 회장 선임에 대한 직원들의 우려를 밝혔지만 또 다시 밀실 인사가 진행된 것에 분노를 느낀다”고 항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