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렇게 신용사업(금융)과 경제사업(농축산물 유통·판매) 분리를 핵심으로 한 농협법 개정안이 의결됨에 따라 1990년대 중반부터 논의됐던 농협 개혁 작업이 획기적인 전기를 맞게 됐다.
이날 통과된 개정안을 통해 농협중앙회는 내년 3월부터 1중앙회·2지주회사(경제·금융) 체제로 개편된다. 다시 말하자면 중앙회와 자회사가 수행 중인 농축산물 판매·유통·가공 등 경제 사업을 묶어 농협경제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신용사업을 분리해 농협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금융지주회사에는 농협은행과 함께 농협생명보험·농협손해보험, NH투자증권 등이 포함된다.
초거물급 금융기관 탄생 임박…농민 반발 무마 등 숙제
“농협, 시중 금융기관과 경쟁 가능한 조직형태로 전환”
농민들 “이번 농협법 개정안 농민 의견 무시한 것”비판
개정안에 따르면 중앙회의 기능은 신용사업 중심에서 경제사업 중심으로 개편돼 현재 신용사업에 대부분 투입하고 있는 재원 운영 및 인력구조도 변경한다. 또 경제 사업은 회원조합 지도, 지원 중심에서 농업인이 생산한 농축산물을 직접 팔아주는 판매 사업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신용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 사업을 활성화함으로써 농업인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 그동안 농협은 “돈이 되는 신용사업에만 치중해 농업인이 원하는 농축산물 유통, 판매 등 경제 사업은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현재 중앙회는 은행업 등 신용사업에 인력과 재원을 대부분 투입하고 있다. 지난 2009년 기준으로 중앙회 인력 가운데 76%가 신용사업부문에 배치돼 있으며 경제 사업 부분은 14%에 불과했다.
이와 아울러 경제 사업은 회원조합 지도·지원 중심에서 농업인이 생산한 농축산물을 직접 팔아주는 판매사업 중심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될 경우 중앙회는 조합 및 농업인 교육·지도 등에 전념토록 하고, 경제 및 금융 사업은 시장경쟁이 가능하도록 기업경영제체로 전환하게 된다. 대신 중앙회가 신설 경제지주 및 금융지주의 지분을 소유해 두 지주회사의 경영 및 인사권을 통제하게 된다.
이번 법 개정 과정에 가장 논란이 됐던 사업구조 개편에 필요한 자본금은 우선 농협이 자체 조달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정부가 지원하게 된다. 더욱이 조세특례를 부여해 사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세금 8천억 원은 면제받게 된다.
신용분리, 시너지 효과
또한 이후 사업을 영위하는 과정에 발생하는 세금에 대해서도 현재 농협중앙회가 부담하는 세 수준보다 높아지지 않도록 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번 개편안에서 특히 주목받는 부분은 금융지주 부문이다. 금융지주회사 산하에는 농협은행·농협생명보험·농협손해보험을 두도록 했다. 작년 9월 기준으로 농협의 총 자산은 ▲국민(275조 원) ▲우리(247조 원) ▲신한(238조 원)에 이어 193조원으로 4위에 해당된다. 앞으로 자산 200조 원 규모의 거대 금융지주가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농협금융지주는 은행·보험·증권 등 자회사 간 고객정보 공유를 통한 복합 상품 개발·교차 마케팅·복합금융점포 운영 등으로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농협은 2009년 5천억 원에 불과했던 당기순이익을 3조3천억 원 규모로 늘린다는 포부도 마련해 놓고 있다.
특히 ‘경제지주회사가 조합과 농업인의 이익에 기여해야 한다’는 조항을 명시해 공익성을 한층 높였다. 또한 NH증권 등 기존 자회사를 아우르게 되며 NH카드도 별도 설립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농협법상 특수법인의 지위를 유지해 일반은행업무 외에 조합 및 중앙회 자금 지원, 농업자금대출 등 농업금융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또한 농업인의 농축산물 생산·유통·판매 자금 및 농협의 경제사업 활성화 자금을 우선 지원하거나 우대할 수 있도록 했다.
보험업종 등도 강세
농협공제에서 전환되는 농협보험은 농협생명보험과 농협손해보험으로 설립된다. 생명보험업계에서 농협보험은 당장 삼성·대한·교보생명과 함께 ‘빅4’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농협보험은 일단 생명보험 시장에 주력하고 점차 여건을 보면서 손해보험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 나갈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손해보험의 주력인 자동차보험을 하려면 금융위원회의 별도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한 이유다. 여기에 조합의 농협보험 취금에 대해 방카슈랑스 규정 적용을 5년간 유예토록 해 이 기간 동안 적극적인 시장 확장 공세가 예상된다.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는 농협의 원활한 사업구조 개편을 지원하고 지도·감독하기 위해 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농협사업구조개편지원본부(가칭)’를 설치·운영키로 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번 농협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 “농협의 신용사업은 농업금융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시중 금융기관과 경쟁이 가능한 조직형태로 전환하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농협법 개정을 통한 농협의 분리 움직임에 대해 이해 당사자인 농민들은 적극 반발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3월 10일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은 광주 북구 유동 민주당 전남도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반농업적 농협법 개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농민들 반발 거세
이 단체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농협법 개정안은 농협중앙회가 농민의 재산과 농협 정신을 팔아 금융업에 몰입하겠다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그렇다 치고 민주당 전남 지역 국회의원들이 앞장서 개정을 추진하는 데 분노한다”고 밝혔다.
전북 농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이들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결된 농협법 개정안에 반발, 민주당의 책임론을 주장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전농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과 전국농협노조 전북본부 관계자 20여명은 전주시 중화산동 민주당 전북도당사에서 농협법 개정안을 의결한 것에 대해 “농민의 염원과 요구를 무시했다”며 농성을 진행했다.
이들은 “회기 내에 처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버리고 농협을 지주회사로 만들기 위해 행동한 민주당의 모습은 농민을 무시하고 천대했다”며 “전북지역 민주당 국회의원은 농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협동조합 개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성찰해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들은 “민주당에게 개악안을 즉각 폐기하고 재논의 해 개정할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전북도연맹 관계자는 “민주당 지도부가 민생 법안안에 농협법을 상정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놓고 이제와 그 약속을 어겼다”며 “이번 농협법 개정안은 농민의 의견을 무시한 것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