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에 대한 책임 여전히 미혼모 혼자의 몫”
“임신에 대한 책임 여전히 미혼모 혼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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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의 이해”설명

      - 미혼모자 시설 턱없이 부족하고 서울에만 밀집
      - 미혼모, 입양보다 양육 더 원해…지원 대책 확대돼야 
      - 미혼모 양육 지원을 위한 임대 주택 절실히 필요
      - “미혼모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의 이해”설명

 

지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 103회째 되는 날 이었다. 이날 반기문 총장은 유엔 여성기구가 주최한 콘퍼런스 연설을 통해 ‘지금도 수많은 국가와 사회에서 여성들은 2등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 여성의 성별 격차는 세계 104위’로 반 총장의 2등 시민 발언과 무관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성별 격차의 최전방, 그곳에는 미혼모들이 있다.  


서울 서대문구 청전동에 위치한 미혼모자쉼터 ‘생명 누리의 집’은 현재 14명의 미혼모와 입소한 미혼모들이 낳은 4명의 아이가 살고 있다. 이곳은 1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미혼모가 있는데 쉼터에서 지원해주는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출산 준비 및 아이 양육을 위한 취업을 준비 중이다. 언덕배기에 위치한 이곳에서 작은 문을 열고 나온 강영숙 원장은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양육을 원하는 미혼모

강영숙 원장은 분주했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향하는 미혼모를 배웅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잠이 부족한 미혼모들을 깨우는 등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녀는 23년간 상담을 해왔고 시설을 맡은 지 2년이 됐다고 했다. 그녀는 “요새 미혼모 지원이 많이 좋아진 편이에요. 청소년 지원법으로 올해 양육모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요”라고 전했다.
 

강 원장은 복지 여건에 대해 “미혼모자 시설에 1년, 추가적으로 6개월 더 있을 수 있어요. 다음으로 2년 보호 가능한 중간의 집에서 미혼모자가 공동생활을 하는 가정에 기거하다가 모자보호시설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3년 있을 수 있는데 자립준비가 안 되면 2년 더 있을 수 있죠. 그곳을 나오게 되면 자립 지원금 2~500만원을 주긴 하는데 자리가 있어야 가능하긴  해요. 시설이 부족하죠, 서울에만 밀집되어 있고. 어쨌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쉼터에 들어와 약 7년간 준비를 할 시간을 가질 수 있죠. 가끔 너무 어린 친구들은 양육을 하겠다고 하다가 잘 따라가지 못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자식은 눈에 밟히는데 아직 감당하기는 힘들고 하다보면요”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녀는 “복지 여건은 차츰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며 “사실 양육 지원이 되고 있다는 정부의 입장이 준비가 너무 안 된 미혼모에겐 아예 받아들여지지 않는 측면도 있어요. 저출산 정책의 일환으로 미혼모들의 양육을 권장하라는데 이 또한 쉬운 문제가 아니에요. 미혼모들은 애를 낳고 보니 내 자식인데 당연히 키우고 싶지만 현실적인 부분에서 양육이 이곳 지원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서, 양육과 입양 사이에서 신중하게 생각하길 권해요. 입양을 택하는 경우 국내 입양을 많이 하는 추세고요”라고 전했다.
 

과거에 비해 달라진 정책에 대해 강 원장은 “고2 다니다 들어온 임신 7개월 청소년이 출산을 위해 4개월 쉬어야 했는데 담임과 교장이 합의하에 그 4개월을 인정했어요. 예전처럼 중퇴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다만, 특수한 경우라 학교 전체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는 면에선 문제가 제기되겠지만 전보다 한층 나아진 여건이긴 하죠”라고 말했다.

남성에 대한 혐오증?

강 원장은 “좀 개선되었으면 싶은 게 있는데”라며 말을 이었다. “애를 출산하고 양육을 결정해서 지금은 9시부터 4시까지 검정고시를 준비하고자 하는 미혼모가 있어요. 아기 돌보미가 필요한데 마땅한 지원이 없어 봉사자들로만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봉사자들 중 매일 9시부터 4시까지 애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봉사자들끼리 시간을 맞춘다 해도 환경 변화에 민감한 애를 돌보는 이가 매일 바뀌는 건 좋지 않죠. 그리고 양육 지원이 더 탄탄하게 바뀌었으면 해요. 요즘 미혼모들은 입양보다 양육을 더 원해요. 다들 하나 같이 ‘집만 있으면 뭘 하더라도 애를 키울 텐데’라고 말해요. 결혼을 한 남녀가 제일 먼저 마련하고자 하는 것도 집인데 애를 안고 있는 미혼모야 오죽 하겠어요. 이 부분이 임대주택으로나 뭐로나 정책적으로 개선되었으면 해요. 현재 한부모 가정에 한해 지원이 가능하고 미혼모가 한부모 가정이니까 임대주택에 들어갈 자격 요건은 되는데 이혼이나 사별한 가정의 아이들은 수가 더 많으니까 우선적으로 선별되죠.”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미혼모쉼터가 미혼모들을 위해 실행하는 여러 프로그램 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다. 6명의 철학 교수들을 초청해 42주에 걸쳐 인문학 강좌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인문학을 접하기는커녕 진지한 고민도 해보지 않은 대부분의 미혼모들에게 버거운 프로그램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막상 생활 가까이에 놓인 철학적 주제를 논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는 미혼모들도 적지 않다.
 

한 번은 교수가 남자 대학원생을 동반해 강의를 했다. 교수는 미혼모들에게 남자를 아버지, 남자친구, 남동생, 친척 오빠 등 다양하게 나누어 보라고 한 뒤 남자를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하자 대부분 ‘개XX’, ‘미친X’, ‘나쁜X’ 등 거친 욕설이 섞인 표현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이 남성에 대해 가진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표현 말미에 “그런데, 저기 계신 선생님은 빼고요”라며 동반한 남자 대학원생을 가리켰다고 한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익히 알다시피 특히 어린 미혼모의 대부분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자라면서 겪게 되는 일들이 일반 청소년에 비해 힘겹다. 그런 환경을 속에서 만나는 남자들은 대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강의에 동반된 대학원생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새로운 남성상이었는지 잘 드러내주는 상황 이었다”며 “그들이 필요한 부분을 토해내면서 점차 자기표현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남자들의 무책임한 태도
   
미혼모가 있게 한 최초의 공범(?)인 남성들은 여전히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최근 미혼부가 양육 책임을 분담하도록 하기 위한 시도와 노력이 있지만 양육에 대한 책임을 물었을 때 대부분은 “그 아이가 내 자식인지 누가 아냐”며 발뺌을 한다고 한다.
 

이를 대비해 복지부에서 유전자 검사 비용까지 지원되고 있지만,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애 아버지임을 인정하고 양육에 대한 책임 분담을 약속한 뒤에도 사실상 지켜지지 않는다.
 

관계자는 “미혼모들이 이러한 과정의 빤함을 알고 있지만 자녀양육이행지원 소송을 통해 정부로부터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기 때문에 이런 싸움은 실효성 없이 계속 된다”고 전했다. 일부, 아이를 책임지는 미혼부들도 분명히 있긴 아직까지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물 네 살 미혼모 A씨는 2년간 사귄 남자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자 애를 지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다른 애들은 아예 나 몰라라 하는데 나 정도면 양반”이라며 낙태를 할 수 있는 병원을 알려준 뒤 낙태 수술비 30만원을 주고 연락을 끊었다. 그녀는 미혼모가 된 처지는 둘째 치고 믿었던 남자친구의 무책임한 태도가 그녀를 더 괴롭혔다고 했다.
 

그녀는 “다섯 살 연상이라 되게 어른스러운 오빠라고만 생각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부모님 모르게 애를 낳고 입양을 시키기로 작정한 그녀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무작정 미혼모 쉼터를 찾았다.
 

그러나 미혼모자 쉼터는 한정되어 있고 찾는 이들이 많아 임신 8~9개월 정도가 아니면 들어가기 어려웠다. 임신 9주째인 그녀는 당연히 들어갈 수 없었다. 휴학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집에서 학교 가는 척하기를 한 달, 그동안 낙태를 결심하고 병원 앞에까지 갔다가 여러 번 돌아오기도 했다.
 

임신 15주째에 접어들자 이상하게 집에 알릴 용기가 생겼다. 집에 휴학 사실과  임신 사실을 알렸다. 집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제일 먼저 창피하다며 혼을 냈고 “애 아버지는 어디 있냐?”며 분노했다. 그녀가 미혼모가 된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오히려 제가 더 담담한 척 했어요”라고 말했다. 현재 그녀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집에서 출산 준비를 하고 있다.
 

스무 살 K씨는 작년 겨울에 미혼모자 쉼터로 들어와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현재 3개월째 머무르고 있다는 그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사귀던 남자친구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고3이 되던 해 임신을 했다. 처음엔 애를 지우려고 마음먹었지만 망설이다가 임신 12주가 되었다.
 

겨우 애를 지우려 찾아간 병원에선 수술비 100만원을 요구했다. 남자 친구가 마련한 돈 50만원으로는 수술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학교를 자퇴하고 애를 낳기로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태도를 보고 임신한 것을 알아차렸고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어 여건이 어려운 집을 나와 미혼모 쉼터에 몸을 맡겼고 아이를 출산한 뒤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애 아버지와는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애가 아파 전에 연락을 한 적은 있지만 좋은 관계는 아니라고 답했다. 애 아버지와 다시 잘 지내면서 같이 키울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딱 잘라 “없다”며 “같이 사느니 차라리 혼자가 낫다”고 했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그녀의 남자친구는 제일 먼저 “자신의 애가 맞느냐”고 물었다.
 

이어 그녀는 “아무튼 나도 어리지만 걔도 나이가 어리니까,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래서 지우라고 할 줄 알았지만 진짜 그러니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무덤덤하게 “내가 내 몸 관리를 못한 거죠, 뭐”라고 말했다.   
 

A씨는 인터뷰 도중 말을 고르기 위해 자주 말을 멈췄다. 그녀는 아직도 혼란스럽다며 한마디로 “내동댕이쳐진 것 같다”고 표현했다.
 

K씨는 양육을 준비하고 있는 현재는 두렵지 않다고 했다. 솔직히 자살 하고 싶다가도 아이 얼굴만 보면 힘이 난다고 했다. 다만 그녀들은 하나같이 왜 이것들을 혼자만 감당해야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기자에게 왜 그런지 물었다. 기자는 가렵지도 않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가족의 이해 필요

한때 미혼모의 출현 자체가 놀라운 적도 있었지만 이제 사회는 전혀 놀라워하지 않는다. 사회적 충격은 덜 해졌지만 여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은 줄지 않았다. 과거에 비해 미혼모 복지가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것은 저출산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진정 미혼모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입양과 양육 사이의 기로에 선 미혼모가 양육을 선택하도록 권장하는 것에 대해 “양육의 현실적 여건 혹은 조건에 대한 감각은 제로다”며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한 전문가는 “성의식이 개방적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지만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아직도 유교적이다. 이들에 대한 대접은 소홀하면서 낙태법을 시행해 보다 더 많은 미혼모가 나오게 하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원치 않은 임신에 대비하는 것은 대개 여성이다. 미혼모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누구보다 고통을 겪고 있다. 성관계시 여자가 몸 간수를 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들에게 내면화되어 자신이 감당하는 게 마땅하다 혹은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 역시 사회?문화의 전반적인 책임이다”며 몇 년 뒤에는 이런 비판을 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최근 ‘코피노’로 국제적 망신까지 당했지만 무책임의 행보는 끝이 없다. 인식은 여전히 전근대적이다”라며 분개하기도 했다. 
 

그는 “시대에 어울리는 성교육이 필요”하다며 “특히 청소년 미혼모들의 미혼모 시설 재입소가 있기도 해 청소년의 경우 피임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꼭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도 미혼모는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다. 성별 격차의 최전방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들. 전문가들은 미혼모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의 이해라고 전했다.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가정, 가족은 그들이 미혼모가 된 뒤 제일 처음으로 접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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