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자서전 파문’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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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사 실명 거론에 거침없는 내용…파문 ‘일파만파’

       - 정운찬 동반위원장 비판하고 기자 성추행 사건 등 파격 내용 담아
       - 당사자들 “사실이 아니다”…책 내용의 진위여부 논란거리 
       - 일부에선 “불륜 포장, 자기 미화 등 내용에 문제 많다” 비판 
       - “돈·권력·언론 등에 나타나는 사회적 병폐 꼬집었다”며 옹호도

지난 3월 22일, 신정아의 자전 에세이집 ‘4001’이 출간되었다. ‘4001’은 그녀가 1년 6개월의 수감 생활 내내 가슴에 달고 있던 수감 번호다. 이 책은 그녀가 그간 써온 일기와 기억을 바탕으로 서술해 자기 고백적 형태를 띤다. 책에는 큐레이터 시절, 변양균 전 실장과의 만남, 수감 생활 등 다양한 그녀의 인생이 들어있지만 변양균을 비롯해 유명인들의 실명이 거론되면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책은 출간된 지 이틀 만에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그만큼 그녀의 이야기는 사회에 만연한 권력, 성, 언론 등의 병폐를 보여주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신정아는 ‘4001’에서 약 36페이지에 걸쳐 변양균 청와대 전 정책실장과의 만남을 서술했다. 많은 지면을 할애한 만큼 변 전 실장과의 관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사랑’의 전형을 보여준다며 비난했지만 각자의 사회적 위치를 떠나 오년이나 지속된 남녀의 관계가 꼭 이해타산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변양균 전 실장과의 만남과 사랑

출간기념회에서 신정아는 변 전 실장과의 서술에 대해 “이 부분은 사실 제가 가장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고 제 책에 이 내용이 들어가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하고 고민했다”며 운을 떼었다. 


이어 그녀는 “그런데 제가 4년간 겪은 일을 쓰면서 이 내용을 감춘다는 것은 이제와 너무 구차스러운 것 같다. 지금은 있는 사실대로 모두 말씀 드리고 여러분이 질책하거나 제가 더 자숙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자숙해야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내용을 책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녀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연이라고 하더라도 서로가 새로 시작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변 전 실장과 신정아의 스캔들이 정치적 여파까지 몰고 와 당대를 달구던 사건이었던 만큼 사람들의 관심은 쏠렸다. 변 전 실장이 참여정부의 핵심 실세이었기에 스캔들은 학력위조파문과는 별개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 전체의 도덕에 관한 문제로 번진 바 있다.
 

그러나 책을 통해 서술된 변양균은 신정아의 눈으로 바라본 지극히 평범한 남자에 불과했다. 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또한 만남이 시작되는 과정, 사건을 겪을 당시 변 전 실장의 태도에 대해 느낀 개인적 서운함 등이 담겨있을 뿐 애초에 이슈가 된 이해타산적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책이 출간될 당시 신정아가 “처음부터 내가 먼저 원하던 관계가 아니었다. 끈질긴 ‘똥아저씨’의 사랑에 나는 무너졌다”라고 쓴 대목과 “‘똥아저씨’는 처음에 나를 꼬시려고 예술에 관심있는 척했지만, 이후에는 예술의 ‘예’자도 꺼내지 않았다”는 대목이 기사를 통해 나돌았다.
 

이를 접한 누리꾼들은 ‘신정아가 자신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 ‘똥아저씨를 사랑했다며 꼭 저렇게 표현해야 하나’, ‘기대 이하다. 그런데 변양균도 어쩔 수 없는 남자’ 라는 등 비난했지만 이 대목은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볼 때 남자들의 일반적 습성에 대한 여성의 서운함을 분출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각 문장들만 놓고 보면 각종 억측이나 추측에 날개를 달아줄만한 요소가 있지만 초장부터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성로비, 꽃뱀 등 여러 의혹을 떠나서 변 전 실장과 신정아가 남과 여로 만났다는 단순한 팩트만을 가지고 그녀의 글을 대한다면 생각보다 글은 복잡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그녀의 글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중심적으로 풀어냈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대개의 자서전들이 그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듯 그녀 역시 보이고 싶은 면만 보일 권리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녀의 글이 유부남과의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과 인연 소개

책 발간과 동시에 변양균 전 실장과 더불어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은 정운찬 동방성장위원장이었다. 신정아는 책을 통해 당시 서울대 총장이던 정운찬을 카리켜 “정 총장이 존경을 받고 있다면 존경받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겉으로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였다”며 비난했다.
 

또한, 그녀는 “정 총장은 내가 서울대 자리도 거절하고 X교수가 관장으로 내정된 다음에는 나를 불러낼 명분이 없어졌다. 내가 약속을 거절해도 탓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바로 다음번에 팔레스 호텔에서 만났을 때는 아예 대놓고 내가 좋다고 했다. 앞으로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고, 심지어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밝혀 파장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경기 성남분당을 보궐선거에 정운찬 전 총리를 ‘전략후보’로 내세울 것이라는 여권의 계획이 어렵게 되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정 전 총리는 신정아의 책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됐어요”, “사실 아니다” 등의 말로 일축했지만 앞으로 논란이 장기화될 경우 그가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련된 논란을 살펴보면 정 위원장의 도덕성 논란보다는 교수직 제안에 대한 논란이 더 컸다.
 

특히 아무리 총장이라 해도 시스템 상 관장직과 교수직을 마음대로 결정하지는 못한다며 신정아의 주장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교수직은 해당 학과 교수들의 추천과 단과대학의 심사를 거쳐 총장의 결재를 받아야 결정되기 때문이다. 설립자와 재단의 입김이 작용하는 사립대도 형식적으로 임용절차를 지키는데 하물며 국립대인 서울대의 총장이  교수 임용을 감행하려 했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신정아=거짓말쟁이’라는 등식을 염두에 둔 반응을 보였다. ‘정치적 음모가 있다’, ‘거짓말 좀 그만하고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다’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반면, 다른 의견을 내놓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 누리꾼은 “결국 사실이던 아니던 그리고 국립대 총장이 미술관 관장과 교수를 임용할 수 있던 아니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란 거다”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번 논란에 대해 신경민 MBC 논설위원은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신정아씨 증언이 모두 사실인진 모르지만 정운찬씨 문제는 정·관·학·언론에선 상당히 알려졌다”며 “책임 있는 사람의 알려진 잘못을 걸러내지 못하고 보도하지 못해 이미지로 판단하는 사회구조·법·언론 문제가 크다”고 정 전 총리를 비판했다.  
 
왜곡 아님 진실?

신정아는 책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밝혔다. 그녀는 “노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는 말만으로도 사람들은 또다시 내가 돌아가신 분의 이름에까지 먹칠을 한다고 손가락질할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이어 그녀는 “노 대통령을 뵌 후부터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을 하실 때마다 가끔씩 내게 크고 작은 코멘트를 들어보려고 하셨다. 몇 번 나의 코멘트를 들어본 대통령은 홍보나 대변인 같은 일을 해도 잘 하겠다고 하셨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칭찬을 받은 일화를 서술했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는 이를 두고 거짓말 논란이 일었다. 신정아에게 대변인 제안을 한 것 역시 그녀의 거짓말 중 하나라는 의견이었다.

책을 읽어본 독자들은 맥락상 노 전 대통령이 신정아에게 대변인 제안을 한 것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이것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노무현의 ‘칭찬’이 ‘제안’으로 왜곡됐고 이에 대한 강한 반발이 솟구쳐 신정아는 또다시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는 분석이다. 책을 읽어 보기도 전에 알려진 몇 구절을 가지고 멋대로 추측해 억측을 낳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나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가끔씩 그녀에게 크고 작은 코멘트를 들어보려고 했다고 주장은 의심의 여지가 있어 강한 반발을 샀다.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은 23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굳이 해명할 가치가 없다고 봤는데, 일부 신문들이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부각을 하니 진실은 알릴 필요가 있는 것 같다”며 “고인이 되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얘기여서, 사실관계는 엄정하게 남길 필요가 있어, 다른 참모들을 대신해 밝히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또 “대국민담화나 회견은 관련 참모들 중심으로 보안을 유지해 작성하고, 밖에 있는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거나 자문을 얻는 것은 참모들을 통해 이뤄지지 대통령이 직접 하지는 않는다”며 “업무를 담당했던 참모 입장에서 보면 쓴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며, 노 대통령 스타일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한 주장”이라고 밝혀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책에서 학력 위조가 드러나는 과정을 서술한 것을 보면 교수들의 이권 다툼이 고스란히 나온다. 신정아는 이를 밥그릇 싸움이 아닌 ‘밥풀떼기 싸움하는 대학가 교수’라고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만큼 교수 사회에 얼룩이 많이 묻었음을 알 수 있다. 신정아 교수 채용 과정은 예술을 판단함에 있어 명확한 기준이 없을 수밖에 없는 예술계 특유의 권력 횡포가 엿보인다는 지적이다.   
 

모 언론사 기자의 성추행 사건을 예로 들며 신정아는 “나는 가능한 한 골치 아픈 일을 만들지 말고 곤혹스런 상황들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아예 선머슴이 되기로 했다”는 고백을 했다.
 

또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만약 남자였더라면 언론들이 그렇게까지 내 문제를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남자가 잘하면 능력 덕분이고 여자가 잘하면 분명히 뒤에 배경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젊은 여자였기에 사람들은 능력보다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고, 그들 입맛에 그 무엇이란 반드시 ‘남자’여야 했다”는 서술을 통해 남성권력 아래 일방적으로 가해진 폭력성을 드러낸 셈이라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트위터 이용자는 “우리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위선과 부도덕을 폭로한 순기능을 했다”며 동의했다. 그러나 당사자로 지목한 모 언론사 기자 출신 인사는 언론을 통해 “악의적인 거짓말일 뿐”이라며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녀의 책에는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기자들이 학력위조 파문이 일자 곧바로 그녀에 대해 부풀린 기사를 쓴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고위층 권력, 여성에 이어 언론까지 사회적 병리 현상에 합류됐다. 2007년 사건 발생 당시, 황색 저널리즘의 피해를 입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에 발생한 그녀의 책 출간 파문 역시 정치, 사회, 문화적 요소가 두루 섞여있어 각 언론들이 구미에 맞게 글을 쓸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그녀가 서술한 사건들은 사회적 병리 현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녀의 책을 제대로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전했다.

사회적 병폐 꼬집어

특히 신정아는 학력 위조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지만 애초에 브로커를 통해 학위를 살 의도가 아니었음을 강조하고 있어 그녀가 했던 사과가 그녀의 주장 속에 묻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은 나 스스로 학력을 위조했건 결과적으로 위조한 것이 되었건 다 똑같은 것 아니냐고 보겠지만, 내게 그것은 나의 양심, 나의 마지막 도덕심이 걸린 문제이다. 법적으로는 여전히 나를 범죄자라 불러도 이제는 아무 상관이 없다. 1년 6개월의 수감 생활을 겪으면서, 나는 내게 내려진 형벌을 논문 대필에 대한 대가로 생각하고 뼈저린 반성을 하며 고통을 참았다’고 서술하며 여전히 학력 위조에 대해 세세한 시시비비를 가려주길 희망하고 있다.


한편, 최근 알라딘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출간 초반에 ‘4001’의 구매층이 남성 4,50대가 주를 이뤘으나 24일부터 3,40대 여성의 구매율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김성동 마케팅 팀장은 이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초반에는 4001의 출간이 민감한 정치적 현안으로 받아들여져 상대적으로 정치 이슈에 관심이 높은 40~50대 남성들의 비율이 높았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 사회적 이슈로 큰 논란에 오름에 따라 구매 연령층이 변화, 확대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이슈가 소소한 공감을 얻어감에 따라 외면 못할 뉴스로 변하고 있다”며 “책을 통해 펼쳐놓은 신정아의 자기 고백이란 형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백은 진실성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 고백을 통해 공감을 하고 고백을 들은 댓가로 상대를 이해해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데 그것이 책을 읽어본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흔들지 않았나 추측해본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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