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성가족부 발표, 가정폭력발생률 54.8%에 이르러
- 다문화가정 내 가정폭력도 3년 사이에 4배 이상 급증
- 피해자 대부분 여성…남성 피해자 상담사례 20% 넘어
- “신고 접한 경찰 초기 대응 잘하면 가정폭력 줄일 수 있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가정폭력발생률은 무려 54.8%로 그 수치가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가정폭력은 극단적인 경우 존속 살인에까지 이르러 이에 대한 예방 및 치료가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가족부는 가정폭력을 가족해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 가정폭력사건을 접한 수사관계자들의 초기 대응 강화의 필요성을 인식해 지난 3월 24일부터 검?경찰을 대상으로 ‘양성평등 인권의식 교육’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가정폭력에 대해 정부가 개입한 것은 1998년, 가정폭력특례법이 통과되면서부터다. 그로부터 벌써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가정폭력은 여전히 기승을 부려 다시금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가정 폭력은 내국인 뿐 아니라 내외국인 가정까지 뿌리내리고 있다. 지난 22일,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남편이 잠든 사이 현금을 챙겨 달아난 필리핀 여성이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것을 계기로 다문화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가정 폭력이 알려지자 다문화 가정 내 가정 폭력은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다문화 가정 내 가정폭력 급증
A씨(22.여)는 “전반적인 결혼 생활은 좋지만 술을 마신 남편은 싫다”고 말한다. 그녀는 필리핀에 관광차 방문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섬세하고 자상한 남편의 모습에 반해 남편을 믿고 무작정 한국에 와 살림을 차렸다.
그녀와 A씨의 나이차는 무려 17살, 결혼 초반에 남편은 나이차가 많은 것을 의식했는지 무척 어른스럽게 굴었지만 6개월 뒤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먹고 늦은 귀가를 일삼더니 나중에는 만취 상태로 아내에게 폭력을 가했다.
A씨는 남편이 휘두르는 폭력에 놀랐지만 술을 먹지 않으면 결혼 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기에 남편의 폭력을 술버릇의 일종으로 간주해 참고 살았다. 낯선 타국 땅에서 남편을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A씨는 남편의 물리적 폭행 외에 언어 폭행까지 당했지만 한국말에 서툴러 남편의 말이 욕인지는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현재 그녀는 3개월 전 한국에서 식당 일을 도울 때 연을 맺은 한 한국인에게 도움을 얻어 남편 몰래 서울로 올라와 식당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통계에 의하면 다문화가정 내 가정폭력 및 성폭력은 2007년에 1천793건이던 것이 2010년에 와서 6,985건으로 늘어 4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3월 10일에 전라남도가 발표한 ‘다문화 가정의 현황과 가정폭력 실태 조사’ 결과 전라남도 내 이주여성의 27.7%가 남편으로부터 신체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으로는 언어폭력(17.6%), 정서적 폭력(11.8%), 남편 가출(1.7%), 방임(1.7%), 정신적 학대(0.8%) 등의 순이었다. 종합적으로 합해보면 폭력 행세는 무려 58%에 이르렀다. 이는 일반 부부의 평균 폭력 발생률 16.7%보다 3.5배나 높은 수준이어서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있다.
가정 폭력 원인, 음주보다 더 큰 요인
일부에서는 가정 폭력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음주’를 꼽고 있다. ‘제주지역 여성 폭력 실태와 예방 프로그램 개발’ 정책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가정폭력과 술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1월 30일부터 12월 13일까지 20∼50대 도민 510명(여 310명, 남 200명)을 대상으로 성 의식과 가정폭력에 대한 면접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 응답자의 63.9%가 가정폭력이 술과 관련 있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는 12.7%에 그쳤다.
또한, 응답자의 78.6%가 자녀에게 가정폭력이 세습된다는 견해를 보였고, 58.8%는 해마다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음주’가 가정 폭력을 불러들이기 쉬운 것은 맞지만 대부분의 ‘음주’가 바로 가정 폭력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즉, 음주가 촉매제 역할을 하긴 하나 ‘음주’로 인해 가정폭력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가정 폭력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결혼과 동시에 타인과 가족이 되면서 타인을 더 이상 존중하지 않게 되는 안일한 태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타인을 마구잡이로 밀어 넣으면서 자기 본위의 행동을 일삼고 타인을 파괴시키는 폭력에 무뎌지게 된다. 여기에 힘의 논리까지 작용되면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이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순간의 방치, 큰 화를 불러
힘의 논리와 상관없이 가정 폭력을 겪는 남자들도 있다. 정확한 통계치는 없지만 용산가정폭력상담소의 경우 가정폭력상담 문의전화 비율이 전체의 2~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용산가정폭력상담소 남기형 소장은 “남성 피해자들도 생각보다 꽤 있지만 대부분 숨기려는 경향이 강하다.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 중 일부는 피해가 극에 달했을 때에야 상담을 요청한다. 남성분들은 대개 창피해 한다. 한국이 아직은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라 남성들이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1년 10월에 상담소를 개설해 만 10년째 상담을 해오고 있는 그는 통계상 가정폭력 피해 수치가 늘어난 것에 대해 “통계적으로 보면 가정폭력이 늘어났다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인 소견은 좀 다르다. 기존에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라며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그는 과거에 비해 피해 신고 및 상담이 활발해진 편이라고 했다. 그 원인으로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피해자들이 그들을 위해 마련된 설립 기관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며 기관 활용이 잦아진 것이 통계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그간 가정 폭력을 가정의 일로만 여겼는데 사회적 인식이 달라짐에 따라 중요한 영역으로 바뀌었다. 가정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나아가 국가적 문제로 도래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는 가정폭력에 대한 대응 자세를 달라지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가정폭력 신고를 접한 경찰들이 초기 대응을 잘 한다면 가정폭력의 7~80%는 근절이 가능할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남 소장은 “역시 얘기가 또 반복되지만 가정 폭력을 단순히 가정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경찰들에게도 있는 것 같다. 가정의 ‘가치’가 그들의 맡은 다른 업무보다 경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잡무가 많이 일일이 처리하기 힘들겠지만 그 순간 대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면 한다. 한순간 방치해 둔 가정폭력이 존속살인이라는 극단적인 경우까지 가게 만들 확률이 높다. 물론 경찰 전부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의 문제인데 초기 대응 단계가 워낙 중요하니까 알아줬으면 한다”며 초기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에게 폭력을 행세한 이를 죽이는 등의 가해자로 둔갑하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라고 한다. 피해자들이 울분과 분노를 쌓아두다가 자신도 모르게 폭발, 당시 환경과 조건이 맞아떨어져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특히, 상습적으로 당하게 되면 외골수적인 생각에 빠져 피해자 스스로도 모르게 돌발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남 소장은 경찰의 초기 대응 못지않게 피해자 스스로의 초기 대응도 중요함을 알렸다.
사회 복지 여건, 열악의 극치
미국은 가해자를 ‘치료감호소’에 보내 관리한다. 이는 가해자가 반성할 수 있게 프로그램만을 마련해둔 한국의 실정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가정 폭력을 겪은 피해자를 가해자의 눈을 피해 쉼터 등에 격리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가해자는 버젓이 집에 있고 피해자는 자신의 자식을 가해자 몰래 전학시키는 등 남 눈치를 봐가며 에너지 소모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에서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치료감호소’같은 시설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으나 정부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정부는 새로운 시설을 설립하는 데에만 앞장 설 뿐 실질적인 관리나 운영에는 도움을 주지 않고 있어 윗선에 보여주기 위한 실적 올리기가 아니냐는 빈축을 사고 있기도 하다.
또한, 지원이 상당히 미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에 있는 42개소 상담소 중 고작 7~8개소만 지원을 하고 있어 대부분의 상담소는 심각한 재정난에 처해있다.
남 소장 역시 사회 복지 분야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여기서 일하는 인력이 최소 석사 이상인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다른 데서 더 대접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복지를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오신다. 그래도 워낙 열악하니까 힘에 부치고 그러다 보면 또 인력난에 시달린다. 사회 복지가 지금은 ‘사는 구조’가 아닌 ‘망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복지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복지 지원이 되는 곳은 기념행사 등이 있으면 장관부터 참여하지만 지원을 받지 못하는 곳은 축전만을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시설에 대한 역차별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외에도 공무원 비리 근절을 위해 담당자가 매번 바뀌어 번번이 ‘업무 파악 중’이 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비난도 있다.
가정의 가치, 거듭 강조해야
얼마 전, 검찰청의 의뢰로 인해 용산가정폭력상담소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B씨는 처음에는 상담소의 상담을 거부했다. 강하게 저항하는 것은 물론 욕설까지 난무해 상담원들을 곤란하게 했지만 결국 상담을 받아들였다.
그는 집안 살림을 잘하는 남자였다. 빨래, 청소, 설거지 등 못하는 게 없었다. 반면 그의 아내는 잘 치우지 않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옷이며 양말 심지어 속옷까지 개의치 않았다. 그의 가족은 넷인데 치우는 이는 B씨 혼자뿐이었다. 그것이 B씨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고 복받치는 감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정신을 차렸을 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B씨는 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한번 터진 화는 추스러질 줄을 몰랐다. 그는 아내가 맞을 짓을 했다는 주장을 하다가 상담소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상담을 받던 중 그는 문득 반성이 되었다.
B씨는 가족 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상담원은 가족이 함께 협의를 해서 가족 간의 규칙을 세워보라고 권했다. 이 과정에서 B씨와 B씨의 아내는 서로 마음을 열었다. 가족 안에 규칙이 있다는 걸 상상해본 적 없던 부부는 이를 계기로 소통이 원활해졌다. 대화의 기회가 생기자 대화의 기술도 발달했다.
얼마 뒤, 그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은 케이스로 분류됐다.
위의 이야기는 남 소장이 들려준 긍정적 사례다. 가정 폭력이 시발점이 되어 가족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으니 폭력이 처음 시작될 때 대처를 잘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말까지 곁들였다.
“가족 안에 규칙이 없다”
남 소장은 가정 폭력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족 안에 규칙이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그는 “위기 가정과 건강 가정을 비교해 보면 그 안에 표면적이든 내면적이든 규칙이 있다”며 규칙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는 곧 소통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규칙은 법처럼 강제성을 띠고 있지 않아서 소통을 통해 정해진다. 남 소장은 “소통이 있어야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며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지 않는 가정이 많아졌다고 지적한다.
또한, 남 소장은 물질 만능주의 역시 문제 삼았다. 그는 “한 사람이 벌어서는 살기 힘들다 보니 맞벌이 하는 부부가 늘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맞벌이를 통해 물질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물질 만능주의에 젖어 있다 보면 윤리적 가치가 훼손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가정에서 ‘가치’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 하는데 이젠 교육의 책임을 학교와 학원에 전가하고 돈만 벌어다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처세는 알아도 자기 가치를 성장시키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