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국민과의 약속 어겨” 신뢰정치 강조, MB에 직격탄
MB “내 입장 이해할 것” VS 朴 “MB 비판 의도 없다”
정면충돌 피했지만, 친이-친박 간 신경전 갈수록 치열
‘영남 맹주’자리 지키기 위한 朴의 노림수는 ‘신공항 재논의’?
박근혜 전 대표가 칼을 빼들었다. 정치적 발언은 ‘아끼고’ 있던 박 전 대표가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을 비판하는 것으로 오랜만에 포문을 열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백지화되자 ‘국민과의 약속 파기’라며 강한 유감의 뜻을 전한 것. 박 전 대표의 발언으로 신공항 유치에 공을 들였던 영남의 성남 민심에 기름이 끼얹어져졌다.
3차례나 입지 선정이 미뤄지며 영남권에 갈등의 골을 깊게 했던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결론’이 났다.
‘모두 없던 걸로…’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는 지난달 30일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 결과,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 모두 공항으로서의 입지가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결과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창호 위원장은 “두 후보지 모두 불리한 지형조건으로 인해 환경 훼손과 사업비가 과다하고 경제성이 미흡하다고 판단했다”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아직 시기와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평가위원회 및 평가단원들의 전문가적 양심을 갖고 고심한 평가결과를 널리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입지평가위원회의 다독임과는 달리 영남권은 쑥대밭이 됐다. 부산지역 의원들은 ‘수용 불가’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31일 허남식 부산시장 등과 당정협의를 갖고 이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해공항의 ‘가덕도 이전’ 추진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김정훈 의원은 “김해군사공항을 이전하고 공항 부지를 매각해 신공항 건설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겠다”며 “김해공항 확장 예산을 가덕 신공항 건설에 투입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구·경북지역 의원들도 정부가 대국민 약속을 파기했다며 항의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에서 회동한 후 발표한 성명에서 “대통령은 국토해양부장관을 즉각 해임시키고 국민 앞에 직접 설명하고 설득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동남권 신공항’을 공약으로 재추진하고 동남권신공항건설특별법 등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입지평가 결과와 관련, 평가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는가 하면 격차가 크지 않은 점수에 대해 ‘마사지 의혹’이 거론되는 등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신공항, 계속 추진할 일”
입지 선정 결과 발표 후 이에 대한 입장 발표를 예고했던 박근혜 전 대표도 입을 열었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신성철 초대총장 취임식장에 들어서기 전 기자들과 만나 신공항 백지화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대표는 먼저 “국민과 약속을 어겨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 경제성이 없더라도 동남권 신공항은 필요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제 입장에서도 계속 추진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시 수정 논란 등에서 보여 왔던 ‘신뢰정치’에 방점을 찍음과 동시에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동남권 신공항 조기 착수’ 약속을 상기시킨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센’ 발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는 “국토해양부는 2025년 인천공항의 3단계 확장이 제대로 완료돼도 전체 물량을 소화할 수 없다고 한다. 입지평가위원장도 장기적으로 남부권 신공항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며 “이게 미래의 국익”이라는 말로 경제성을 전면에 내세운 신공항 백지화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이어 “일부에선 국내 항공 수요 감소를 얘기하는데 이는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 추세”라면서도 “그러나 국제공항은 다르다. 세계화 진전을 감안하면 물류랑은 계속 확대돼 제대로 된 국제공항이 필요하다. 인천공항은 현재 물류량을 소화할 수 없다. 신공항 건설은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대비를 안하다가 필요하다고 할 때는 이미 너무 늦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또 “앞으로 국민과 약속을 어기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면서 “정치권과 정부가 거듭나야 한다.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아야 우리나라가 예측가능해진다”고 대선공약을 잇따라 파기하고 있는 이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은 이날 발언에 대해 “여러 수요를 봤을 때 인천공항 외에 신공항은 필요하다는 뜻”이라며 “이는 정책적인 문제로서, 다른 복선이나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종시 수정 논란 당시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당시 박 전 대표는 짧은 입장 표명으로 자신의 발언에 무게를 더 했으며, 세종시 수정안은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이에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입장 표명으로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재논의 되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는 물론 한나라당의 세가 강한 영남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지지층을 굳힐 수 있게 된다.
정치권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따른 영남권의 반발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이로 인해 친이계 일부가 정부의 결정에 반기를 든 상태이며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이 대통령의 탈당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종근·배영식·서상기·유승민·이한구·이해봉·조원진·주성영·홍사덕 의원 등 대구 지역의원 친박 의원들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국민과 한나라당에 대해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한다”면서 이 대통령의 탈당을 주장했다.
주성영 의원은 “국민을 여러 번 속인 결과로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탈당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고 했으며, 이한구 의원도 “국민과 당에 정치적 책임을 지라는 표현은 탈당요구라고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신공항으로 ‘안개정국’
정가 인사들은 “후폭풍이 거세지면 수도권 친이계와 영남권 친이계 인사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이후 이 대통령의 탈당으로까지 이어지면 당내 주도권은 차기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에게로 기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비판한 것과 관련해 “박 전 대표도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내 입장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4월 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특별기자회견에서 “지역구인 고향에 내려가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입장도 나는 이해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어 “언론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와) 마찰이 생겼다는 식으로 보도하지 않아도 된다”며 “입장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 있는 문제지만, 책임있는 지도자로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