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정치권의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다. 정가 일각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문재인 대망론’ 때문이다.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서도 그가 차기 대권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문 이사장의 행보 하나하나가 차기 대권과 연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용꿈’을 꾸고 있을까. 이러한 사실관계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미 ‘해몽’이 한참이다.
무르익는 대망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현실정치에서 자취를 감췄던 문 이사장이 새삼 정치권의 관심을 모으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문 이사장의 이름은 ‘박근혜 대항마’를 찾는 와중에 거론되기 시작했다. 대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지만 야권은 지난 대선 이후 지지율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를 막아설 차기 대선주자에 목말라했다.
우선 손꼽히는 야권 차기 대선주자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이다. 그러나 손 대표는 한나라당 출신이라 ‘정통성’이, 유 대표는 ‘표의 확장성’ 부분이 걸림돌로 지적됐다. 이 때문에 정가의 시선은 김두관 경남도지사와 문 이사장 등 친노 인사들로 향했다. 특히 문 이사장이 ‘박근혜 대항마’로 손꼽혔다.
지난해 초 정가에서 벌어진 한 일화가 이를 대변한다. 당시 정가에 ‘한국의 민주당에서 오바마 같은 ‘벼락 스타’가 등장할까’를 묻는 질문이 제기됐다. ‘벼락 스타’로 꼽힌 것이 문 이사장이다. 친노와 전통 민주당 진영에서 호감이 강한데다 보수진영에서도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이 같은 질문에 야권 관계자가 답했다. 자신이 만난 보수인사가 노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불안’하다고 평가했으며, 다음 선거에서는 안정감 있는 후보를 원하는 정서가 높을 것이라고. 한명숙 전 총리나 문 이사장이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안정감 있는 후보”
그는 슬쩍 정가에 돌았던 ‘소문’도 꺼내 놨다. 모처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박 전 대표를 이길 유일한 후보로 문 이사장이 나왔다는 게 그 소문의 내용이었다. 박 전 대표의 강점을 나열하고 기존 야권 후보 가운데 유일한 강점이 있는 사람을 뽑으면 딱 문 이사장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며, 이 때문에 문 이사장이 박 전 대표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힌다는 것이었다.
4·27 재보선을 거치면서 문 이사장의 ‘대망론’은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는 ‘설’의 수준을 벗어났다. 처음 김해을 재보선 출마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문 이사장은 아슬아슬했던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야권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중재자’로 나서며 주가를 높였다. 이후 정치권에서 잠재적인 대권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
재보선을 계기로 그가 현실정치에 나설지 여부를 살피는 정치권과 달리 문 이사장은 “정치를 직접 하지 않고 있는 입장”이라며 “요즘 이명박 정부의 심한 실정, 악정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가치나 정신 등이 다시 부각되니까 그런 관심을 받게 된다”고 거리를 뒀다.
자신이 잠재적인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데 대해서도 “그런 정도의 역량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노무현재단을 통한 정치적 시민운동, 노 전 대통령이 말한 깨어 있는 시민을 키워나가고 세력화하는 것을 통해 우리 정치를 밑바닥에서 부터 바꿔 나가는 일들을 하는 것이 제 역할에 더 맞다”며 “그런 것을 통해 현실정치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 제 생각”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총선 역할론에 이목 집중
그러나 내년 총선·대선에서의 ‘역할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문 이사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보계 진영이 함께 힘을 모아 정권교체를 이룩해야 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며 “제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힘껏 도우려고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그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반응이다. 지난달 29일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서 보다 확실한 방법인 통합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야권통합에 강한 열의를 내비쳤다.
또 지난달 26일부터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의혹을 제기했던 조현오 경찰청장의 소환조사를 촉구하는 릴레이시위를 벌이고, 같은 달 29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김해시지부 초청으로 ‘공무원노조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청와대를 나선 후 첫 강연을 펼치는 등 외연을 넓히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 이사장은 이 외에도 진보성향 연구원들의 연합체인 ‘복지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싱크탱크 네트워크’ 창립대회에 참석했으며, 지난 11일 노 전 대통령 2주기 학술심포지엄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을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진보개혁 진영은 국민이 믿을 수 있는 비전과 정책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키도 했다.
또한 조만간 참여정부 5년을 재조명한 자서전 성격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을 출간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행보가 늘어나는 것과 함께 대권에 대한 발언에도 여운이 묻어나고 있다. 지난 1일 김해 발언이 그렇다. 문 이사장은 이날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답변하기 난감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라의 위기감이 큰 만큼 이런저런 가능성을 찾고 있는데 나도 압박을 받을 것”이라며 “청와대 수석 시절에도 정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했다.
정치권은 ‘지금까지는’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금까지는’이라는 단서는 ‘앞으로는 다를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대권’ 얘기가 나올 때마다 손사레를 쳤던 것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인 것.
문 이사장이 여지를 남기면서 그의 대선 출마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토론회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대망론’에 대해 “선수들이 많이 나와 아름다운 경선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정권교체를 위해 필요하다”며 “문 이사장도 선수의 한 명으로 등장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어 “문 이사장의 분위기가 변했다. 사람을 통해 들은 것도 있는데, 그의 변화는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응원 박수 ‘짝짝짝’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지난 1월 “노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아했던 측근은 문 이사장”이라며 “문 이사장이 손학규 대표와 대통령 후보 경선을 했으면 좋겠다”며 대선 출마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었다.
정치권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경남 거제 출신으로 영남을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데다 야권 적통인 운동권 투사 출신에 공수부대 제대,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이라는 이력을 시작으로 청렴하고 강직한 원칙주의자라는 면모는 야권 뿐 아니라 중도·보수층에게까지 크게 어필 할 수 있는 경쟁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원칙주의자’라는 점은 박 전 대표와 직접적으로 대결구도를 펼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인물론으로 따져도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가 국회의원 등 현실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대중의 평가와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