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롯데, 신세계 등 국내 재벌가 딸들이 이번엔 ‘빵집’사업에 뛰어들면서, 유통업계의 뜨거운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41)씨가 빵 사업으로 유통업계에 복귀하면서 현 조선호텔 베이커리의 대주주로 있는 신세계 정유경(40) 부사장, 이건희 삼성회장의 딸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41)과 삼각구도를 이루며 ‘인스토어 베이커리(유통업체 내 제빵매장)’ 시장에서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직함만 걸어둔 임시직 수준이 아닌 실세로 등장하기 시작한 재벌가 여성 경영인들의 이같은 행보에 재계는 물론 유통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재벌의 딸들까지 ‘빵’사업에 가세하면서, 동네 빵집들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요즘 재계 화두는 단연 재벌가 딸들이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재벌가 출신 여성의 경영참여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몇 년 사이 재벌가 여성들이 CEO로서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재벌가 여성들은 정몽구 현대차그룹의 부인인 이정화 여사처럼 내조에 충실하거나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리움 관장, SK 최태원 회장의 부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같이 미술계에서 활동을 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요즘 재벌가 여성들의 행보는 과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삼성그룹 오너 이건희 회장의 딸인 이부진 사장을 비롯해 이서현 부사장, 한진가의 조현아 전무, 조현민 상무보, 신세계 정유경 부사장 등 일찍부터 경영전선에 뛰어들어 공식적인 직함을 달고 양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실적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고급화된 빵 사업 확대
그런데 최근 재벌가 딸들이 고급화된 카페형 베이커리로 사업 확대에 나섰다. 우선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 ‘블리스’ 대표는 프랑스 베이커리 전문 브랜드 '포숑'의 사업권을 따내고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장 대표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블리스는 자본금 5억원으로 과자 빵류 제조업, 음료 도소매, 식료품 수출입, 와인 수입, 조리서비스 등 사업을 하는 식품업체다.
여기에 ‘포숑’은 원래 롯데측이 프랑스 본사와 영업권 계약을 맺고, 제과업체인 고려당에 지난 15년 동안 위탁 운영을 시켜온 브랜드이다. 지난해 말 포숑과의 영업권 계약이 끝나고, 포숑측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하던 차에 장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서 영업권을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장선윤표 포숑’은 기존 빵집 개념에서 벗어나 '럭셔리 부티크 카페'를 선보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신세계 정유경 부사장은 올 초 세계수준의 프리미엄 식품점인 미국의 '딘앤델루카'를 신세계에 단독으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올 하반기에 처음으로 신세계 강남점에 대형 매장을 여는데 식품에서부터 카페, 케이터링(파티용 맞춤 요리) 등을 총망라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정 부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조선호텔베이커리는 2005년 조선호텔의 베이커리사업부문에서 물적분할할 당시만 해도 그 해 매출액이 760억원에 불과했지만, 전국 이마트에 빵과 피자를 독점 공급하고 신세계백화점에 출점하며 지난해 매출액을 160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이어 지난해 7월 조선호텔 외식 사업부에서 운영하던 베키아앤누보와 페이야드까지 흡수하는 등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커피 전문점 '아티제'로 고급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아티제는 호텔신라가 100% 자본금을 출자한 자회사인 보나비가 직영하는 커피 전문점이다. 현재 강남권 중심으로 15개 매장이 있다. 일본 디자이너 칸지 우에키가 인테리어하는 등 고급화를 꾀하고 있다. 현재 홈플러스에 입점해 있는 아티제 브랑제리(신라호텔과 홈플러스의 합작회사)라는 빵집도 호텔신라에서 지분의 20% 가까이 갖고 있다.
‘동반성장’ 나몰라라?
이같이 재벌가 여성들이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제빵시장 등에 뛰어들면서 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대기업들이 주력사업과 무관한 영역에까지 진출하는 등 문어발식 확장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
이 같은 대기업 경제력 집중현상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대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푼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소기업 살리기’에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금산분리 완화, 법인세 인하 등 정책이 취해지면서 사실상 대기업들이 덩치를 키우고 사업영역을 확장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55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총 계열회사 수는 1554개로 지난해(1264개사) 보다 290개(22.9%) 늘었다. 이중 상위 10대 그룹의 계열사는 2008년 405개에서 현재 617개로 늘었다. 5일마다 하나씩 10대 그룹 계열사가 새로 생긴 셈이다.
대·중소기업간 경영성과 격차도 심각한 수준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재계 1~20위권 그룹의 매출·순이익은 각각 54%와 71% 증가했다. 한국은행 자료에서도 대기업 세전 순이익률은 2007년 7.9%에서 작년 8.4%로 늘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3.8%에서 2.9%로 떨어졌다.
중소기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동반성장은 다 립서비스가 아니었나 싶다”며 “대기업이 돈 되는 사업이라면 무조건 뛰어들고 보자는 식의 경영으로 갈수록 중소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