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 불화, 패륜범죄 부른다
가족 간 불화, 패륜범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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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가정, 절반 이상이 가정폭력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

부산의 한 대학 교수가 내연녀와 짜고 이혼 소송 중인 부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에서 보듯 최근 끔찍한 가정 내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범죄 양상도 다양하다. 가정 폭력은 물론 가족 간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등 날로 극악해져가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가정 폭력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에서도 가족폭력 방지 대책 등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5월 17일에는 충남 아산시의 한 아파트에서 몸에 불이 붙은 여성이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인근 주민들이 발견해 몸에 붙은 불을 끌 수 있었지만 이미 전신에 2도의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아내 몸에 불 지른 남편

 

경찰조사 결과, 여성의 몸에 불을 붙인 범인은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시는 남편 때문에 말다툼이 빈발했다. 남편은 술김에 아내의 몸에 불을 붙였다. 남편은 집에 있던 여행용 가솔린을 이용해 아내의 몸에 불을 붙였다.


아내는 몸에 불이 붙자 화장실로 도망가 불을 끄려 했지만 남편이 뒤따라와 다시 불을 붙였다. 마침내 아내는 남편을 피해 아파트 1층 베란다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가 도움을 요청해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경찰은 가족 및 이웃 주민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여 불을 붙이는데 사용한 가솔린 통을 확보하고 남편 A(39)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했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빈발하고 있다. 지난 4월 16일 오후 11시40분 경 경기 평택시 팽성읍 김모(58)씨의 집에서 김 씨와 김 씨의 부인 양모(58)씨가 숨져있는 것을 아들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양씨가 친척을 시켜 남편을 납치해오게 한 뒤 월세를 주려고 비워놓은 방에서 남편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을 매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평상시 양씨가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는 이유다.


또한 가정폭력으로 부모가 이혼한 뒤 시설에 생활하던 10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3월 9일 오후 8시46분께 광주시 남구 봉선동의 한 빌라 6층에서 A양(15)이 1층으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A양은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려 부모가 이혼한 뒤 다니던 중학교도 중퇴하고 어머니·여동생 2명과 함께 쉼터에서 생활했다. 평소에 힘들다는 말을 여동생에게 자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불화, 가정 흔들리는 주요 원인”

 

아들이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지난 1월 25일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살해한 손모(27)씨에 대해 존속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손 씨는 같은 달 24일 오후 4시 경 서울 사당동의 한 다가구 주택에서 아버지(59)와 다투다 목을 조르고 깨진 병을 휘둘러 아버지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손 씨는 아버지가 평소 술을 많이 마시고 가정폭력을 일삼아 왔던 것에 불만을 품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전날에도 손 씨 아버지는 만취 상태에서 아내를 심하게 때리고 아들과 다퉜다.


다문화 가정에서도 가정폭력으로 인한 비극적인 사태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 4월 27일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조선족 김모(57·여)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 씨는 같은 달 25일 오후 11시 경 서울 미아동 자신의 집에서 남편 이모(57)씨에게 수면제를 넣은 국을 먹게 한 후 잠이 들자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6년 12월말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김 씨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이 씨와 지난해 5월 결혼한 후 1년여 동안 폭행에 시달려 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이 이유 없이 폭행을 해 견디지 못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가정 내 범죄 대부분이 가정 내 대화 단절로 인해 발생하는 만큼 가족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단순 싸움이 살인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지속적인 가정불화가 가정이 흔들리는 주요 원인”이라고 말한다. “가정 불화는 곧 가정 폭력으로 이어지며 쌓인 문제가 폭발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살인 등 극단적인 범죄도 발생


 
실제로 가정 폭력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가족 내 구성원 절반 이상이 가정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의 ‘2010 가정 폭력 실태 조사 보고서’에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9세 이상 65세 미만 성인 남녀 2659명 중 부부간 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54.8%로 조사됐다. 여성의 경우 51.3%가 가정폭력으로 인한 신체적 피해를 경험했다. 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을 정도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도 30.1%에 달했다.


자녀에 대한 학대도 많았다. 18세 미만 자녀를 둔 1523개 가구를 조사한 결과 자녀학대 발생률은 59.1%로 집계됐다. 유형별로는 정서적 폭력이 52.1%로 가장 많았고 ‘신체적 폭력(29.2%)’, ‘방임(17%)’ 등으로 순이었다.


노인 부부의 가정폭력도 쉽게 치부할 수는 없다. 65세 이상 노인 부부 간의 폭력발생률도 31.8%로 분석됐다. 유형별로는 정서적 폭력이 23.9%로 가장 많았다. ▲방임(15.4%) ▲신체적 폭력(7.1%) ▲경제적 폭력 (5.3%) ▲성학대(3.1%) 등이 뒤를 이었다.


또한 가정폭력으로 인해 이혼을 결심하는 여성 중 64.8%가 10년 이상 남편의 폭행에 시달려온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무료 소송구조를 통해 이혼에 나선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의 소송 301건을 분석한 결과 매 맞는 아내들의 혼인 기간은 10년 이상~20년 미만에 해당하는 경우가 111건으로 전체의 36.9%를 차지했다.

 

가정폭력의 심각성

 

가정 폭력의 피해유형은 폭언이나 욕설을 들은 경우가 9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주먹질이나 발길질(80.4%) ▲흉기로 위협(33.6%) ▲방망이 등 물건으로 맞은 경우(31.2%) ▲남편이 목을 조르거나 자신을 향해 흉기를 휘두른 경우(15.9%)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대화 단절을 꼽았다. 함께 살면서 서로에 대한 의견차이가 발생할 경우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부부들이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여기에 자신의 분노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한 가정폭력상담소 간사는 “서로 다른 생활환경에서 살아온 남녀가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면 미묘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런 의견 차이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면 사소한 자극에도 폭발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가정불화가 지속되면 함께 있는 자녀들이 보고 자라면서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는 것. 자녀들이 갈등의 해결방법을 부모들의 모습에서 배우게 되는데 잘못된 대화와 갈등 해소 방법을 익히게 되면 결국 성인이 돼 잠재된 폭력성이 표출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가정불화가 극단적인 상황으로 확대되지 않기 위해서는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대화를 할 때 훈계나 비난의 어조로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는 방법에서 벗어나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토론으로 이뤄져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을 당했을 경우 경찰이나 상담소를 찾아 교정 치료 등의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혼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초기에 신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가정폭력 발생이 우려될 경우 일단 현장을 피하고 신고를 통해 상담과 치료 등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스스로 자신과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족 문제로 치부하기엔

 

또한 전문가들은 가정 폭력의 특성상 엄벌보다는 가정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부부간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가정폭력의 심각성은 도를 넘어섰다”며 “서로를 존중하는 가족 분위기 조성과 함께 부부간의 지속적인 대화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가정폭력으로 인한 사건이 급증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여성가족부는 가정폭력사건 초기 대응강화와 피해자 보호에 중점을 둔 ‘가정폭력방지 종합대책’을 지난 5월 24일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가정폭력방지 종합대책’은 크게 ‘피해자 보호기반 구축’, ‘가정 폭력 재발방지’, ‘피해자 및 가족보호기능 강화’, ‘가정폭력 근절 문화확산’ 등이다. 


종합대책에 따르면 우선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피해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응급조치할 수 있도록 경찰의 주거 진입권과 피해자 대면권을 인정함으로써 사건 초기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사법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해 가정폭력 범죄가 재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경찰 직권 또는 피해자 신청에 의해 피해자의 주거지에서 가해자를 퇴거시키고 100m 이내 접근 또는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을 금지하는 등 긴급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가 우선

 

이는 사법경찰관의 신청과 검사의 청구를 거쳐법원의 임시조치 결정까지 8일 정도 걸려 피해자가 2차 피해 위험에 노출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


이와 함께 가해자에 대한 형사 처리와 별개로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보호조치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법원은 ‘피해자 보호명령’으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거나 친권행사를 하는 일을 제한할 수 있다.


또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의 대상사건 및 상담기간 등의 적정 여부를 검토하고 상담 결과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알콜중독, 도박, 정신질환, 의처증 등 특성별 교정ㆍ치료 프로그램을 전문화하고 위험성 평가를 제도화하기로 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이번 가정폭력방지 종합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해 4월 여성가족부, 법무부, 검찰청, 경찰청, 보건복지부 등으로 TF를 구성하여 그동안 가정폭력 실태조사, 연구용역, 토론회 등을 하였으며 앞으로 6월중에 시행계획을 수립하여 제도개선 등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며 “이에 따라 피해자를 한층 더 보호하고 가족 해체를 예방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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