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과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야권의 대권후보군으로 부상하고 있다. 본인의 거듭된 고사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선후보 호감도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맹추격하는 등 이미 여론시장에서는 문 이사장이 야권의 유력주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분위기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지난 5월 26~28일 전국의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진보진영에서 거론되는 대통령 후보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은 결과, 문 이사장은 15.2%의 지지를 얻어, 손학규 민주당 대표(22.8%)에 이어 전체 2위를 차지했다.
“대망론은 과분한 말”
문 이사장이 대선후보군에 포함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야권 2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10.6%)는 문 이사장의 등장으로 3위로 밀려났다.
특히 문 이사장은 영남권에서 야권주자 중 1위를 차지했다. 부산·울산·경남(PK)에서 22.4%로 손 대표(15.5%)보다 6.9%포인트 많았고, 대구·경북(17.8%)에서도 손 대표(17.0%)를 근소하게 앞섰다.
부산의 한 친노 핵심인사는 “야권 주자들의 취약지인 영남의 흥행을 위해서라도 문 이사장에 대한 출마 요구는 갈수록 거세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문 이사장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 이사장이 공식적으로 현실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은 가운데 나온 이번 여론조사는 문 이사장의 향후 정치적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문 이사장은 지난 5월 30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너무 과분하기도 하고 과장된 말씀”이라며 ‘대망론’을 일축하면서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 상황에서 ‘당신도 나와 역할을 하라’는 뜻으로 받아 들인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문 이사장은 “절체절명의 과제인 야권단일후보를 만드는데 힘을 보탤 것이며 혹시 도움이 된다면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시너지 효과를 위해 단일정당으로 힘을 모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며, 민주당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자신의 대권 출마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으면서 야권통합을 위한 역할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내년 총선 행보 주목
그는 또 내년 총선에서 부산·경남(PK) 지역의 야권통합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겠다”고 강조했다.
바람직한 야권통합의 방향에 대해선 “하나의 단일정당으로 힘을 모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이를 위해 민주당이 적극적이어야 하고, 다른 정당이 민주당에 흡수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킬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친노 대표주자로서 독보적 위치를 구가해온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지난 재보선 패배 책임론과 맞물려 ‘칩거’에 들어간 사이 그 대안으로 부상한 문 이사장의 ‘대망론’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확산되는 흐름이다.
문 이사장 지지도가 2위로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시아투데이는 박기태 경기대 교수(정치학)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박 교수는 “문 이사장의 개인적인 이미지와 4·27 재보선 패배에 대한 친노들의 불안감이 한꺼번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분위기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박 교수는 이어 “문 이사장의 지지율 상승은 손 대표의 2% 부족함과 유 대표의 5% 부족함 때문”이라며 “노무현 후계자로서의 문 이사장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문 이사장을 현실정치로 끌어들이기 위한 야권 지지자들의 바람의 표현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보선, 야권 단일화 행보로 지지율 상승
지난 4월 27일 경남 김해을 재보궐 선거의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 준 행보도 지지율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또 박상병 박사(정치학)는 “문 이사장이 김해을 야권연대 과정에서 보여 준 행보는 야권 지지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며 “개인 이미지에 크게 도움을 준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박 박사는 “문 이사장의 상승은 그의 절대적 이미지에 기인하기 보다는 유 대표의 추락에 따른 풍선효과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며 “아직까지 정치적으로 정확하게 평가 받은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 이사장이 정치행보를 본격화 한다면 어떻게 될지 주목해야 한다”며 “친노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면 손 대표의 최대 대항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김진표 현 원내대표 정장선 민주당 사무총장 등야권인사들이 일제히 문재인 이사장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문 이사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 대표에 이어 2위를 기록하는 등 명실상부한 잠룡 반열에 오른 문 이사장은 유 대표에 대해서 “훌륭하신 분이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치를 계승해야 한다는 기준에도 손색이 없다”고 치켜세웠다.
문 이사장은 내달초 자서전 성격의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도 펴낼 예정인 반면 친노 분열이라는 ‘원죄’를 떠안은 유 대표의 침묵은 길어지고 있다.
문 이사장은 아직 현실정치와는 일정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친노 진영에서나 야권에서 대권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과 대선후보로 나설 것 이라는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다.
합리적이며 소신과 집념이 강함
문 이사장은 참여정부 출범 후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을 지내면서 부패척결과 제도개선에 앞장서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다.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경남고를 졸업한 그는 경희대 법대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해 구속되기도 했다. 80년 사법시험(22회)에 합격한 그는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 졸업하고도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가 되지 못하자 부산으로 내려가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원칙주의자이면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체질 때문에 정치권 입문 제의를 거절해오다 지난 대선 때 노 대통령 당선을 위해 부산선대위 본부장을 맡으며 현실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보다 일곱 살 어린 그를 자신이 아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로 평가했다. 청와대에서는 ‘왕수석’·‘왕의 남자’로 불리며 대통령의 신뢰를 받았지만 나이 어린 직원에게도 존댓말로 사용할 정도로 공손했다.
2008년 2월 청와대를 떠난 그는 부산에서 경남 양산의 시골마을로 내려갔다. 닭 개 등을 키우며 소박한 삶을 살았다. 다만 그의 소박한 성품과 어울리지 않게 스킨스쿠버도 함께 즐겼다.
산도 좋아했던 그는 노 전 대통령 탄핵으로 중간에 돌아왔지만, 민정수석을 그만 둔 뒤에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로 트레킹을 떠났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는 산 한번 편히 가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문 이사장은 푸근한 인상과 온화한 성격으로 합리적이면서도 소신과 집념이 강하고 주변의 신망이 두텁다.
취재/ 이행종 기자
사진/ 이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