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노한 이건희 회장, 삼성테크윈 비리가 뭐길래
대노한 이건희 회장, 삼성테크윈 비리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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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응도 있고 뇌물도 있고 심지어 부하까지 끌어들여”

이 회장 “향응도 있고 뇌물도 있고 심지어 부하까지 끌어들여”
오창석 삼성테크윈 사장, 책임지고 사의…중도 사의는 드물어
이례적인 공개경고, 업계 “K9자주포 결함사태 영향 미친 것”
삼성 “비리내용 비공개”…업계, 임원급 추가퇴진 가능성 제기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조직문화가 훼손됐으며, (조직 내부) 부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대노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회장이 삼성 조직에 대해 이처럼 강한 자기비판을 제기한 것은 이례적인 일. 그 배경에는 삼성테크윈이 있었다. 

삼성테크윈은 삼성 그룹으로부터 강도 높은 경영진단을 받았다. 이 여파로 삼성테크윈 오창석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특히, 삼성사장단 중 임기를 채우지 않고 중도에 사의를 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이번 사내 비리의 정도가 중대한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 회장은 6월 9일 삼성 서초사옥 출근길에 기자와 만나 최근 삼성테크윈의 비리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향응도 있고 뇌물도 있고 저 혼자 (부정을)하는 것도 문제인데, 부하를 시켜 부정을 저지르게 하고 이로 인해 부하를 부정에 입학시키는 것이 더 문제”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삼성테크윈과 관련한 부정부패의 내용을 보여줌과 함께 이른바 부정의 세습에 대한 그룹 전체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여겨져 주목이 된다.

“삼성 자랑하던 깨끗한 조직문화 훼손”

이 회장은 최근 삼성테크윈 경영진단 결과를 보고받고는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이렇게 훼손돼서야 되겠느냐”고 강하게 질책했고, 오창석 삼성테크윈 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면서 구체적인 비리 내용에 관한 궁금증을 낳고 있다.

이 회장은 이와 관련해 ‘삼성테크윈 경영진단 결과 후속 쇄신이 이뤄지는가’라는 질문에 “테크윈이 우연히 나와서 그렇지 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 10년간 한국이 조금 잘되고 안심이 되니까 이런 현상이 나타나서 나도 더 걱정이 돼 이 문제를 챙겨보고 있다”고 말해 앞으로 그룹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와 인적쇄신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삼성측은 감사과정에서 적발된 삼성테크윈의 구체적인 비리 내용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창석 삼성테크윈 사장은 6월 8일 돌연 사표를 냈다. 오창석 사장의 사임은 최고경영자(CEO)로서 관리 책임을 지기 위한 것일 뿐 개인 비리와 연관된 것은 아니며, 삼성테크윈이 군에 납품하는 ‘K9 자주포’의 결함과도 무관하다는 게 삼성의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K9 자주포의 오발 및 동력계통 오작동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테크윈은 2009년 삼성디지털이미징을 설립해 디지털카메라 사업 부문을 정리하고 방위산업 분야에 총력을 쏟아 왔다. ‘국산 명품 무기’로 불리는 K9 자주포도 삼성테크윈이 국방과학연구소와 공동 개발했다. 지난해 삼성테크윈의 전체 매출 가운데 방산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40% 정도다. 삼성테크윈은 K9자주포를 비롯해 K10 탄약운반장갑차, K77사격지휘장갑차, 무인전투로봇차량 등을 생산하며 국내 대표 방산업체로 자리매김했다.

K9 자주포, 반복되는 결함문제

그런데 지난해 8월 경기 파주에서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가던 K9 자주포의 차체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결과 K9자주포의 조향장치(진행 방향을 바꾸기 위해 바퀴 회전축 방향을 바꾸는 장치)가 반대로 작동해 사고를 냈다. 이 사고는 K9자주포 엔진의 힘을 바퀴에 전달하는 '커플링'이라는 이음새에 문제가 발생, 조향장치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연평도 사태 당시에는 일부 K9 자주포가 작동되지 않아 성능 논란이 제기돼 왔다. 당시 북한군이 방사포 등으로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 모두 6문의 K9 자주포가 있었지만 3문이 고장나 3문만 대응사격을 가했다.

결국 이런 사실은 언론을 통해 크게 알려졌고 삼성테크윈의 이미지도 타격을 받게 됐다. 이후 3개월 지난 올해 2월 10년만에 삼성테크윈에 대한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이 시작됐다. 경영진단팀은 자주포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 하도급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납품과정에서 테크윈 관계자들의 비리가 있었는지 조사했다.

일부에서는 삼성테크윈 임직원들이 협력업체들로부터 돈과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적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받은 돈의 액수와 향응 정도에 대해서는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도”라는게 업계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다른 기업 같으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경영진단팀, 삼성테크윈 ‘현미경 감사’

하지만 삼성 미래전략실의 경영진단팀은 지난 2월부터 2개월간 삼성테크윈 직원들을 대상으로 꼼꼼히 살펴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감사직원만도 100여명이 넘고 협력업체들을 일일이 찾아가 식사접대와 같은 내용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측은 이에대해 “이번 경영진단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비리사항이 적발됐는지 일일이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임원들까지 10여명이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방산사업부문 쪽에서는 협력업체에 과도한 요구를 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오창석 사장의 갑작스런 사의 표명과 관련, 회사측의 후속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그룹의 사장이 정기인사철이 아닌 시기에 경질된 것은 2007년 당시 에스원 사장을 제외하면 드문 일이다. 이 회장이 그만큼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2007년 에스원 당시 이우희 사장은 직원이 고객의 집에 들어가 강도행각을 벌인 사실이 드러난 데다 거짓해명까지 탄로가 나면서 물의를 빚자 물러났다.

삼성측이 오사장의 개인 비리가 아닌 관리 책임이라고 설명함에 따라 관심은 일단 후속 인사나 징계 대상자에 집중됐다. 오 사장이 관리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것은 누군가가 잘못을 했다는 것이고, 사장이 사의한 것을 감안할 때 내부적으로 잘못된 사람의 징계수위도 높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이번 경영진단으로 적발된 비리 내용은 사내에서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며 “감사를 실시한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 밖에서는 구체적인 사실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이 지적했던 삼성 내부의 비리에 삼성의 대응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앞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임원급 인사 5~6명이 추가로 퇴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 감사조직 기능 대폭강화

재계 관계자는 “비리문제도 중요하지만 과거 신라호텔 한복사건부터 최근 서미갤러리와 홍라희 관장의 그림값 송사 문제까지 내부적으로 시끄러운 일들도 많았다”며 “이 회장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삼성의 흐트러진 분위기도 잡을 겸 강력한 발언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세계 시장 경쟁에서 삼성이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과 함께 후계구도에 대비한 조직 다지기의 의도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 감사자료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오랜 경영공백으로 인한 조직의 느슨함을 잡는 동시에 후계 승계전 내부 긴장감을 조성해  조직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조직 내부 부패 문제를 강하게 제기함에 따라 감사 기능이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이 회장은 당장 “감사 책임자의 직급을 높이고 인력도 늘리고 자질도 향상시켜야 하며, 감사조직은 회사 내부에서 완전히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했다.

삼성관계자는 “계열사 경영진단팀을 사장 직속으로 배치하고 책임자도 직급을 올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진보신당, “부패 핵심인 이건희 회장부터 처벌 받아야”

한편 진보신당은 6월 10일 논평을 통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발언에 대해 “삼성 부정부패의 핵심인 이 회장이 마치 자신은 쏙 빼놓고 부하직원과 계열사만 닦달하고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진보신당은 “제대로 된 反부패 선언이려면 이 회장 본인의 고해성사여야 한다”고 전제하고 “그 동안의 정관계 뇌물 공여, 분식회계, 편법증여, 노동3권 박탈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과 부정부패의 핵심에 있던 이 회장이 스스로의 죄를 시인하지 않고서 무슨 부정부패와의 전쟁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진보신당은 “지금이라도 지난 2009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사면 조치를 반납해야 한다”며 “불법적 경영권 승계, 탈세, 차명계좌 운영 등 본인이 지은 죄부터 감옥에서 제대로 처벌 받으시라”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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