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유혹에 몰린 사람들, 출구는 없다?
신용카드 유혹에 몰린 사람들, 출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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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회사 저신용자 대상 ‘묻지마’ 카드 발급 급증…가계부실 우려

 

카드회사 저신용자 대상 ‘묻지마’ 카드 발급 급증…가계부실 우려
은행대출 힘든 저신용자 대상인 불법 ‘카드대리발급’ 유혹도 기승
현금서비스 포함 카드대출 등 19% 증가, 가계대출 증가율에 ‘3배’
정부, 외형 확대경쟁 감시-위규 행위 엄중 제재 마련 실효성 의문

신용카드회사의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2의 카드 대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카드회사의 영업이 신규 카드 발급 유혹에 빠지기 쉬운 저신용자에게 집중되면서 ‘묻지마’식 카드 발급이 이뤄지고 있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더욱이 신용불량자에게 카드를 발급을 빙자로 대출영업을 해 빚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경우도 다반사라 서민들의 추락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의 신속한 대처가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현재까지 뾰족한 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2003년 초 매월 10만명의 신용불량자가 쏟아져 나왔다. 이때만해도 신용불량자 수는 350만명에 육박했다. 특히 이 가운데 60% 이상인 220만명이 신용카드 사용에 의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처럼 2003년은 '카드대란(大亂)'의 시기라고 불릴만큼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큰 상처를 남겼다. 당시 카드빚 때문에 수많은 가정이 파탄이 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신용불량자의 낙인이 찍혀 벼랑 끝에 서는 참담함을 경험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모럴 헤저드를 부채질한 것은 정부의 무분별한 소비진작 정책이었고 이에 편승해 이윤을 추구한 카드사들이었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카드대란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도덕적 해이를 몰고 온 것은 후환에 대한 대비책 없이 쏟아낸 정부의 정책미스, 이윤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가계부문을 헤집은 카드사들의 영업전략 때문이었다.

제2의 카드대란 가능성 제기

이후 신용회복위원회도 생기고 개인파산정책을 확대해 가면서 카드대란은 조금씩 잠잠해졌다. 하지만 또다시 카드의 유혹에 넘어간 서민들이 늘어가면서 ‘제2의 카드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카드 대란을 겪은 지 8년이 지난 현재 곳곳에서 '신용카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야구장, 축구장에서부터 놀이공원, 마트, 일반 사무실까지 달콤한 조건을 내세운 신용카드 발급 권유가 넘쳐나고 있다.

금융당국에서 수차례 카드 과열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규 카드 발급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으로 발급된 신용카드는 1억1950만장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전에 비해 1000만장 가까이 급증했고 올해 들어 매달 100만장씩 늘어나는 추세다. 3월에는 총 123만3000장이 발급됐다. 카드 대란 직전인 2002년 말 기준 총 발급 카드 수 1억488만장을 1500만장이나 웃돌았다.

카드 발급 경쟁은 은행계나 전업계 카드사 구분이 없다. 3월 기준 은행계 카드는 8042만장, 전업계 카드는 3908만장이 발급됐다. 카드사 영업이익이 급증하면서 공격적으로 신규 카드고객 유치 전략을 벌인 결과다.

업계에 따르면 등록된 카드 모집인은 5만1249명. 2009년 3만5000명에 불과했으나 카드사 간 경쟁을 타고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신용카드사들의 회원 유치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신용불량자들에게도 카드를 발급해준다며 유혹하는 길거리 광고물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대리발급업체들은 상담원과 사무실을 갖춰놓고 ‘휴대전화를 이용한 100% 카드 발급’ 등의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길거리, 지하철역 같은 곳에 붙여놓고 기업형으로 영업하고 있다.

카드사 카드론 영업 방식, 대리발급 부추겨

신용불량자들을 대상으로 한 카드 대리발급 업체들의 불법적인 영업이 기승을 부리는 배경에는 카드사들의 공격적인 카드론 광고영업 방식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지난해 7∼10등급에 대한 카드 발급 건수는 193만6000건으로 2009년(177만5000건)보다 16만 건가량 늘었다. 이 등급 해당자들의 카드 이용액은 2008년 46조9000억 원, 2009년 51조 원에서 지난해 66조5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카드 대리발급 업체들은 카드사들이 부추긴 저신용자들의 ‘카드사용 열기’를 이용해 이들을 유혹한다는 것이다.

은행 대출이 쉽지 않은 저신용자들에게는 카드론을 이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 발급이 달콤한 미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카드사들은 “신용카드는 반드시 ‘본인’이 신청해야 한다”며 “휴대전화 신용을 바탕으로 한 카드발급 방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카드 대리발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 카드업계 관계자는 “본인의 신청에 의해, 신용등급을 심사한 뒤 발급하는 것이 신용카드”라며 “이외의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대리발급 업체들이 대체로 체크카드를 발급한 뒤 자신들의 자금을 통장에 넣어 신용카드처럼 사용하게 해주고 ‘수수료’ 명목으로 높은 이자를 떼는 방식으로 영업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신분증, 주민등록등본으로 개인 신용정보를 빼돌릴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카드 사용이 늘어나는 만큼 가계부실의 위험은 커진다. 카드론이 작년에만 42% 늘어 23조9000억원이 풀렸다. 현금서비스를 포함한 카드대출 잔액 또한 27조9000억원으로 19% 증가해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6.3)%의 세 배를 웃돈다. 저신용자들이 빚내어 빚을 갚는 카드 돌려막기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저신용자 연체율 일반등급 30배 이상

이런 위험은 현실로 나타났다. 신용등급 7∼10등급 저신용자의 신용카드 연체율이 일반등급(1∼6등급)에 비해 3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5월 30일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이 개인신용평가회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신용등급 1∼6등급의 연체율은 0.2%에 불과했지만 7∼10등급은 이의 30배가 넘는 7.6%로 집계됐다.

저신용자의 연체율이 심각한 상황인데도 저신용자의 카드 이용액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7∼10등급의 카드 이용액은 2008년 46조9000억 원, 2009년 51조 원에서 지난해 66조5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카드회사 매출에서 저신용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9년 16.3%에서 지난해 17.8%로 높아졌다.

이성헌 의원은 “금리 상승기에 연체가 늘어나면 가계에 부담이 커지고 카드사의 채무건전성도 악화될 수 있다”며 “카드론 신청에 대한 심사 승인 기준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연체 가능성이 큰 저신용자에 대한 리스크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도 저신용자에 대한 ‘묻지마’식 카드 발급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점검에 나섰다. 금감원은 최근 카드사의 신용카드 발급 현황 자료를 넘겨받아 분석하고 있다. 카드사가 신규로 카드를 발급할 때 고객의 재산과 소득, 채무관계 등 고객심사기준을 제대로 지켰는지를 중점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신용카드사의 과도한 외형확대 경쟁에도 제동을 걸었다.
6월 7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신용카드사(겸영은행 포함)의 카드남발, 카드대출 급등 등 과도한 외형 확대 경쟁에 따른 제반 문제점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특별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감독당국은 6월 중으로 외형 확대경쟁 밀착 감시와 위규 행위 카드사 엄중 제재와 관련한 세부 시행기준을 마련해 즉시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또 레버리지 규제 도입과 회사채 발행 특례 폐지를 위한 여전법 개정을 올해 중 추진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레버리지(차입) 규제는 법 개정 이전이라도 행정지도를 통해 여전사들(여신전문금융회사)이 제도 개선의 취지에 맞춰 자율 이행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책에서 금감원은 우선 신용카드사의 외형확대를 적정 수준으로 제한한다. 카드자산, 신규 카드발급, 마케팅비용(율) 등 3개 부문의 감독지표를 설정하고, 과도한 외형 확대경쟁을 지속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특별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위규 행위가 적발될 경우 영업정지, 최고경영자(CEO) 문책 등 엄중 제재에 나선다.

“저신용자 문제 근원적 해결방법 모색돼야”

금감원은 안정된 자기자본 중심의 건실한 성장을 위해서 레버리지 규제 도입도 추진한다. 신용카드사를 포함한 여전사는 총자산이 자기자본의 일정 배수를 초과하지 않도록 규제한다는 방침이다. 과도한 차입을 바탕으로 외형 확대 경쟁에 나서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이번 대책의 추진 배경으로 카드사가 2003년 카드사태를 겪은 이후 2006~2009년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해 왔으나 일부 은행의 카드업 분사, 통신회사의 카드업 진출 등을 계기로 지난해부터 경쟁이 심화되면서 무리한 영업조짐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현재 우리 금융시장은 대내적으로 가계 부채 문제, 대외적으로는 남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 상황에 직면하면서 잠재적 불안요인을 안고 있다”면서 “가계 부채가 금융시장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의 유혹에 내몰린 사람들이 사회 안전망의 좁은 틀로 구제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신용평가 관련 전문가는 “금감원의 규제 등으로 카드사의 외형 확대를 줄일 수 있다고 하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저신용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인 방법이 모색돼야 할 것”이라며 “신용등급이 낮거나 신용불량자에 대해서도 정부차원에서의 신용회복 지원이나 안정적이고 낮은 이자율의 대출 등 서민 금융지원 프로그램 확대가 절실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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