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검찰, ‘중수부 폐지 여부’를 두고 갈등 고조
‘정치검찰’ 논란의 중심인 중수부, 정치권과 질긴 악연
김준규, “비리와 부패 밝혀내고 거악에 맞서 왔다”밝혀
청와대의 반대와 한나라당의 입장 변화로 ‘오리무중’
정치권과 검찰이 중수부 폐지를 두고 한판 붙었다. 지난 국회 사법개혁특위의 ‘사법개혁안’으로 불붙은 이번 논란은 정치권과 검찰의 갈등을 넘어 청와대의 합류와 한나라당의 입장 변화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권은 중수부를 폐지해 정치권과 중수부의 오랜 악연을 정리하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살아있는 권력’까지 떨게 했던 검찰 내 최고 수사부서, 대검 중수부를 두고 정치권과 검찰간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새도 쐈는데…
중수부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지난 1961년 대검 중앙수사국으로 설립된 후 1973년 대검 특별수사부로 개편됐으며 1981년 대검 중앙수사부로 개편되며 현재의 중수부로 자리하게 됐다.
이후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기 사건’으로 손꼽히는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구속된 재계 인사만 32명, 여당인 민정당 사무총장과 법무부 장관까지 옷을 벗어야 했다.
정계도 중수부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1988년 ‘5공 비리’ 수사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족과 전 정권 실세들이 구속됐으며, 1995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 의혹 수사를 맡았다.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를 구속한 것도,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홍업, 홍걸씨를 구속 기소한 것도 중수부였다.
하지만 ‘정치검찰’ 논란으로 중수부 폐지에 대한 주장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중수부의 수사가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것이 아니라 정권교체 후 전 정권에 대한 것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1997년 한보수사에서 처음 제기된 중수부 폐지론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다시 한 번 뜨겁게 달아올랐다.
여야, 합의는 했지만
결국 지난해 시작된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는 지난 3월 여야 6인소위를 통해 중수부 폐지를 합의했다. 당시 국회 사법개혁특위 한나라당 간사인 주성영 의원은 “1981년 생긴 대검 중수부의 역할은 송광수 검찰총장, 안대희 중수부장의 ‘정치자금 수사’ 이후 시대적 사명이 다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종언을 고했다”고 평했다.
지난 3일 여야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검찰관계법 소위 전체회의에서 대검 중수부의 직접 수사기능을 폐지키로 전격 합의했다.
현행 검찰청법의 직제규정을 ‘대검에는 직접 수사하는 부나 과 등을 두지 않는다’라고 고치는 안과 검찰청법에 검찰총장의 수사명령 권한을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안 가운데 양자택일키로 한 것.
검찰은 발칵 뒤집혔다. 중수부 폐지 합의 소식이 전해진 후 박용석 대검 차장 주재로 검사장급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회의를 갖는 등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6일에도 김준규 검찰총장이 직접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키도 했다.
검찰의 강한 반발
‘반전’은 현재 정치권과 검찰이 처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중수부 폐지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정치권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부산저축은행 수사에 전 국민의 이목이 쏠려있는 가운데 검찰 수사가 정치권을 정조준하기 시작한 미묘한 타이밍에 결정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중수부가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수부 폐지를 꺼내는 것은 수사에 차질을 줄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6일 긴급회의 직후 “항해가 잘못 되면 선장이 책임지면 되고, 굳이 배를 침몰시킬 필요는 없다”며 중수부 폐지에 반대했다.
김 총장은 이어 “중수부는 우리 사회에 숨겨진 비리와 부패를 밝혀내고 거악에 맞서 왔다”며 “부패수사의 본산으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비리 척결의 역할과 기능을 꾸준히 수행하겠다”고 했다. 부산저축은행 수사에 대해서는 “수사로 말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검찰의 입장에 청와대가 손을 들어줬다. 이어 한나라당도 9일 의원총회와 당 소속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간담회를 잇달아 열고 ‘이 시기에 중수부를 폐지할 수는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황우여 원내대표도 “중수부 폐지에 우려의 목소리가 많은 만큼 신중해야 한다”며 “국민여론 수렴을 위해 사개특위의 활동연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6월 말 종료되는 사개특위를 7월부터 연장 가동해 다시 중수부 폐지와 ‘특별수사청’을 신설 등을 논의하자는 것.
야당 “칼 빼들었으면…”
입장을 선회한 한나라당과는 달리 민주당의 태도는 강경하다. 여야 합의대로 6월 강행처리해야 한다고 입장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손학규 대표는 7일 의원총회에서 전날 김 총장의 발언에 대해 “중수부를 폐지하면 수사를 못 한다? 현장에 나서려고 하는 장수를 갈아치우려고 한다? 입맛에 들게 하다 쌀독이 빈다? 그런 궤변으로 권력 탐내선 안 된다”고 조목조목 질타한 뒤 중수부 폐지와 검·경 수사권 조정, 특수수사청 설치를 관철할 것임을 강조, 사실상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또한 반박논평을 내고 “검찰총장의 직접 지시를 받는 중수부는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검찰총장이 할 일은 공정한 인사관리와 외부 압력이나 로비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면 된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께서는 ‘정치검찰’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 대신에 ‘국민의 검찰’ ‘선진 검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아드릴 것”이라고 중수부 폐지 관철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한나라당의 의총 소식이 전해지자 이용섭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3월 사개특위에서 합의한 사안을 백지화해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건 청와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나라당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도 “한나라당이 더 이상 청와대 하수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검찰개혁에 응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정가는 6월 국회에서의 사법개혁안 처리 여부가 정치권과 중수부의 악연을 끊느냐 마느냐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개특위를 연장한다고 해도 중수부 폐지 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입장이 달라진 이상 여야의 공방전 끝에 표류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