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그룹 출신 이은미씨 사망, 데이트 폭력이 빚어낸 ‘참극’
데이트 폭력 폭언, 폭행 넘어 살인까지 이어지는 경우 다반사
데이트경험이 있는 여성들 중 10명 7명이 정서적 폭력 경험
전문가들, “데이트 폭력 숨기지 말고 주위 알려 도움 받아야”
트로트그룹 아이리스 출신 이은미(24)가 6월 19일 전 남자친구에게 흉기로 찔려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전 남자친구인 조모(28)씨는 이별을 고한 고 이은미에게 앙심을 품고 이같은 극단적인 선택한 것이다. 이른바 ‘데이트 폭력’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이처럼 데이트 폭력은 데이트 중에 일어나는 육체적, 언어적 폭력을 뜻하는데, 처음에는 그냥 사소한 손찌검 정도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았다. 이에 본지는 연애의 이면인 데이트 폭력의 유형을 살펴보고 실제 데이트 폭력을 당했을 때 대처방안은 없는지 취재해 봤다.
최근 고 이은미씨의 죽음은 대표적인 데이트 폭력의 극단적인 결말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경기도 시흥경찰서는 6월 22일 3인조 트로트그룹 보걸로 활동했던 이은미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전 남자친구인 조모(28)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19일 새벽 2시경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이씨를 미리 준비한 흉기로 목과 복부, 옆구리 등 60여차례나 찔러 살해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7개월간 교제해왔던 조씨는 평소 애정문제로 자주 다퉜으며 최근 이씨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뒤 이같은 행동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결과 조씨는 범행직후 “사람을 죽여 힘들다”며 어머니 전화에 문자를 남긴 뒤 고향인 전북 고창 인근에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20일 새벽 위치추적을 통해 서해안 고속도로 화성휴게소 상행선 주차장에서 조씨를 긴급 체포했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사랑하던 여자친구를 60여차례나 흉기로 찌를 수 있느냐”며 “어떻게 저런 사람과 사귈 수 있는가”며 분노를 표했다.
옛 애인 살해 20대 남성, 징역 11년 선고
실제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살인 사건은 이씨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모욕적인 말을 참지 못하고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20대 남성이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11년을 선고받았다.
대구지법 제 11형사부(박재형 부장판사)는 6월 8일 자신을 모욕했다며 전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살해)로 구속기소된 이모(27)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1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모욕적인 말에 격분해 흉기로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은 죄질이 무겁지만 범행 후 바로 자수한 점과 범죄전력이 없는 피고인이 반성을 하고 있는 점, 배심원들의 의견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국민참여재판에서 지병인 간질이 발작해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했다고 주장했으나 배심원단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평결했고 5명의 배심원이 징역 10년, 2명의 배심원이 징역 13년의 의견을 냈다.
살해된 전 여자친구인 A씨는 지난해 1월 인터넷 게임사이트를 통해 이씨를 만나 10개월 간 연인 사이로 지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그 해 11월 다시 여자친구를 만났다가 “헤어진 사이 더 잘생긴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격분해 흉기로 약 20차례 찔러 살해했다.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달 16일 새벽 2시에 울산에서 박모(25)씨가 2달 간 알고 지낸 여자친구 박모(35)씨를 모텔로 유인해 목 졸라 살해했다. 박씨는 시신을 모텔에 유기한 뒤 대구 동구로 도주했다가 이날 저녁 9시쯤 경찰에 붙잡혔다.
다른 남자 만난다고 감금, 폭행하기도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 12일에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이유로 살해하려한 남자가 구속되기도 했다. 인천서부경찰서는 12일 자신의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만났다는 이유로 여자친구를 감금, 폭행하고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한 김모(30)씨에 대해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4월 6일 여자친구 김모(29))씨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보고 계양구의 한 모텔로 끌고가 3일 동안 감금, 수차례 폭행하고 회사에 간 여자친구가 1시간 동안 나오지 않자 마트에서 흉기를 구입해 여자친구의 허벅지를 찔러 살해하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처럼 데이트 폭력은 폭언, 폭행을 넘어 살인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교제기간이 길어지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두 사람의 사랑이 커 가는 한편에는 데이트 폭력의 잠재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일방적 스킨쉽, 과도한 감시도 한 유형
가장 빈번하게 경험하는 데이트 폭력의 형태는 일방적인 스킨쉽과 과도한 감시를 들 수 있다. 감시의 단계가 심한 사람의 경우 노예처럼 자신의 하루 일과를 연인에게 보고하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끝없는 의심과 싸워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언어적 폭력도 데이트 폭력의 한 형태다. 욕설은 물론 연인을 심하게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 말로 연인에게 폭력을 가한다. 이런 경우 상대방은 심한 좌절감과 열등감에 빠지게 될 수 있다.
특히 언어폭력 이후에는 육체적 폭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밀기, 잡아채기, 손바닥으로 때리기, 물건 던지기, 발로 차기, 주먹으로 때리기, 두들겨 패기의 순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이러한 데이트 폭력으로 연인들의 관계가 악화되거나 헤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조차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어쩔 수 없는 폭력이 일어났으며, 피해자 자신은 폭력을 당할 잘못을 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데이트폭력은 언어적, 정서적 폭력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데이트경험이 있는 여성들 중 10명 7명이 정서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가 2009년 9월에서 10월 서울지역 11개 대학 800여 명을 대상으로 대학 입학 이후에 호감을 가지고 만난 모든 이성관계(1-2회의 데이트 포함)에 대해 대학생들의 데이트폭력경험 및 인식 실태조사를 한 결과 여성들 중 77.8%가 정서적 폭력을 한번 이상을 경험했다.
주로 경험한 행동은 상대방이 자신의 “핸드폰, 이메일, 개인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자주 점검한다”(59.7%), “누구와 함께 있는지 항상 확인한다”(40.9%), “다른 이성을 만나는지 의심한다”(32.1%)로 나타났다. 데이트상대자가 자신의 일정을 통제하고 간섭하거나, 자신이 학과·동아리 활동을 못하게 하는 등 의심·통제·감시와 같은 정서적 폭력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언어적 폭력 경험한 여성 61.4%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61.4%로 나타났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위협을 느낄 정도로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고 답한 여성이 10.6%, “결별 후 자주 집이나 학교 앞으로 찾아와 다시 만나자고 한다”는 행동을 경험한 여성이 16.3%로 나타났다. 상대방이 “죽이겠다거나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다”는 여성은 2.3%였다.
또한 여성들은 데이트상대자가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하거나(12.1%), 자신의 몸을 만지거나(15.2%), 애무를 하도록 강요한 적이 있다(8.1%)고 응답해 데이트관계에서 여성이 성적 폭력을 많이 경험함을 알 수 있었다.
신체적 폭력 사례에서는 “집에 못 가게 막은 적이 있다”(여성 24.6%), “발로 문을 차거나 주먹으로 벽을 친 적이 있다”(11.3%)로 나타났다.
근본적인 책임은 가해자인 남성들에게 있지만 한국 여성들의 인식 역시 데이트 폭력이 증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 피해여성들은 폭력이 발생한 후에도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여성들이 성적 폭력 후에도 연인을 용서하고 관계를 유지한 이유는 ▲항상 그러는 것은 아니어서 ▲헤어질 만큼 심하지 않아서 ▲사귀는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등으로 확인됐다. 신체적인 폭력 후에도 관계를 유지한 이유는 ▲헤어질 만큼 심하지 않아서 ▲나도 잘못한 부분이 있어서 등으로 나타났다.
데이트폭력과 관련한 인식을 묻는 질문에 전체응답자의 절반(49.2%)이 “데이트 관계에서 폭력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세 명 중 한 명(34.6%)이 ‘데이트 폭력’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해 인식 확산을 위한 캠페인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들, 대부분 경계성 성격장애”
이처럼 데이트 폭력은 첫 폭력이 일어났을 때의 대응이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사소하게 느껴지는 경우라도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가해자들은 데이트 초기 자신의 학교나 직장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상대방에 지나친 호의를 베푼다.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 가해자들 대부분이 경계성 성격장애”라며 “굉장히 잘해주다가 시간이 지나면 소유하려하고 해를 끼치고 폭력을 행한다”고 전했다.
폭력이 일어났을 때 단호히 폭력 상황에 대해 따져야 하며 상대방이 공격 성향이 있다면 상담소 등의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평소에도 데이트 폭력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며 폭력 상황에 대해 무조건 숨기지 말고 주위 사람에게 알리고 의논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 전문가는 “여성들은 데이트 폭력을 당했을 경우 자기표현을 확실하게 함과 동시에 애초에 자신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으로 자책하지 않아야한다”며 “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즉각적인 관련기관의 상담과 도움을 받는데 중요하다”고 전했다.
정부가 나서 처벌규정 마련해야
또다른 전문가는 “우선적으로 데이트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민사적 피해자보호명령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와 함께 사회가 데이트 폭력에 좀 더 엄격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의견”도 제시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데이트 폭력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다. 데이트 폭력 수치에 대한 통계자료조차 없다. 일본의 경우 2007년부터 일본 내각부에서 데이트 폭력에 관한 조사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그러한 움직임은 없는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여성운동진영에서는 이같은 현실에 대해 좀 더 정부가 나서서 제대로 된 대책마련과 처벌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