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서울시장이 승부수를 꺼내들었다. 그동안 오 시장은 여권 차기 대선주자 중 한명으로 꼽혀왔음에도 차기 대권과는 거리를 둬왔다. 지난해 지방선거에 출마했을 때 임기를 완주하겠다는 뜻을 확고히 한 후 이 같은 입장을 거듭 강조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앞두고 오 시장이 결단의 시기를 맞았다는 정치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강한 부정이 강한 긍정이 될까.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묻는 질문에 선을 그어왔던 오세훈 시장에게 ‘선택의 시간’이 다가서고 있다.
대선출마 언급 조심스러워
오 시장은 서울시장 당선 이후 여권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한 후에는 주가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차기 대선에 대한 언급에 조심스럽다. 지난해 그가 재선 도전을 선언했을 때 화두가 됐던 것이 ‘차기 대선 출마’였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그를 서울시장으로 다시 선택했는데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해 중간에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난다고 하면 재보선을 치르기 위해 수백억의 예산이 쓰여야 한다는 경쟁자들의 주장에 맞서 “재선시장이 되면 임기 4년을 완주하겠다”고 공언했다. 연임에 성공한 뒤에도 그는 차기 대선 출마여부를 묻는 질문에 “재선 4년의 임기를 완벽하게 채우는 첫 서울시장이 될 것”이라는 말로 거리를 뒀다.
하지만 1년 만에 오 시장이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15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차기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내년이 선거니까 올해가 가기 전에는 입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돼야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 22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는 차기 대선출마에 대한 고민이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대권 도전 계획을 묻는 서윤기 서울시의원에게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장직 버릴까
서 의원이 재차 답변을 촉구하자 “올해가 가기 전에 입장을 완전히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오 시장이 대권 출마로 입장을 선회할 경우 올해 안에 서울시장직을 사퇴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
이에 서 의원이 “주민투표 182억원에 더해 시장 보궐선거 150억원까지 오 시장의 행동에 따른 대가는 시민 혈세 330억 원”이라고 질타하자 오 시장은 “너무 기정사실화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대선 불출마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지금 계산하기에는 이르다는 뜻”이라며 적극적인 답변을 피했다.
차기 대선에 대한 오 시장의 결단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각계의 반발에도 불구, 오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수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거액의 예산을 들어가는 만큼 그의 정치 생명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투표 결과가 오 시장의 승리로 정리되면 그는 보수층의 지지를 얻는 것은 물론 이를 기반으로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크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반면 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오면 서울시장으로 시정을 꾸려나가는 일마저 버거워 질 수 있다. 이 같은 ‘승부수’에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 시장이 차차기 대선 출마에서 차기 대선 출마로 입장이 선회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권용 프로젝트, 주민투표”?
지난달 22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박운기 의원은 급식 주민투표를 ‘당내 대선 경선용이자 보수층 눈에 들기 위한 대선용 지지율 상승 프로젝트’로 규정하고 “대권용 프로젝트인 주민투표를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시장은 “자신이 있어서 시작한 게 아니라 망국적 포퓰리즘을 막으려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며 “80만명이 서명한 주민투표의 프로세스를 관리할 뿐 주민투표를 철회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다”고 반박했지만 주민투표가 차기 대권과 연계돼 해석되면서 오 시장에 대한 당내 차기 대선주자들의 견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현역 지자체장으로 오 시장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22일 오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 “주민투표까지 해야 할 사안인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 지사는 “주민투표라고 하지만 엄연히 국민투표인데 무상급식이 주민투표까지 해야 할 사안인지 시비가 일 수 있다”며 “시의원도 시민들의 선택을 받은 3권 분립의 한 축이다. 다투더라도 의회에서 해야지 그것을 밖으로 가져 나가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당대표 선거에 나선 남경필 의원도 “주민투표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보수는 나의 힘?!
다른 한편에서는 오 시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김무성, 이경재, 정몽준 의원 등은 22일 중진의원회의에서 오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비판적인 전당대회 출마 후보들을 비판하며 오 시장에 대한 당의 적극적인 지원사격을 촉구하고 나섰다.
김무성 의원은 “국가의 운명을 가를 반포퓰리즘의 낙동강 전선이 8월말로 예정된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라며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에 큰 타격을 가할 무상복지 포퓰리즘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보수우파로 대표되는 한나라당의 간판을 내려야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경재 의원도 “서울시에서 건곤일척 무상시리즈의 포퓰리즘으로 가냐, 건전한 성장과 복지를 균형잡게 가야하냐는 판결이 거기서 날 수도 있다”며 오 시장에 대한 적극지원을 주장했다.
이와 관련 한 정치 평론가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 의견 뿐 아니라 오 시장에 대한 평가까지 담게 됐다”며 “이번 투표를 계기로 오 시장은 차기 대권으로 가는 티켓을 얻느냐, 정치적 암흑기를 걷게 되느냐가 갈리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번 투표를 계기로 오 시장이 보수진영의 선봉장 역할을 맡게 된 만큼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찬반 의견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면 차차기 대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 시장은 24일부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중진 의원들과 차례대로 만나고 이주영 정책위의장과도 회동,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슈화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론 인터뷰나 토론회에도 잇달아 참석, 여론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