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추락, ‘교권보호 조례’까지 검토하게 만드는 단계까지 와
학생은 물론 학모부들까지 폭언·폭행 가세…교사권위 흔들려
자긍심 무너지고 교권 추락한 상태서 제대로 된 교육 어려워
교원단체 노력만으로 교권추락 막기엔 부족, ‘대책마련 시급’
학부모와 학생들이 교사를 모욕주는 행위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연이어 터지는 교권추락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수업중에 사용한 휴대전화를 압수하다가 전치 8주의 중상을 입은 교사를 비롯해 수업 중 휴대전화를 쓴 학생에게 엎드려뻗쳐를 몇초간 시켰다가 학모부의 민원제기로 징계를 당하는 등의 이야기는 이제 가볍게 넘기지 못할 정도로 이 시대 교육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교권은 말 그대로 교육권의 권리다. 교사에게 보장된 법률적 권리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인격적 권위를 포함한다. 하지만 ‘스승’이란 말이 무색하게 만드는 교권의 추락은 사회적으로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할 정도의 상황까지 오게 만들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6월 28일 “학생 인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교권 강화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곽 교육감은 이날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갖고 “돌이켜보면 교권을 침해하는 학생이나 학부모에 대해 좀더 강력한 대책을 내놨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있다”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시의회와 함께 교권 보호 조례를 만드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 교육감은 그러나 “체벌 금지를 교권 약화·추락의 주범이라고 모는 것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며 “학교 현장에서 권위주의를 걷어내는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곽 교육감의 말처럼 교권 보호 조례까지 검토 중인 상황이 바로 지금 이땅의 현실이다. 이처럼 교권추락은 교사의 권위가 무너지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을 지칭한다. 이제는 누구나 쉽게 이 말을 접할 정도로 최근 다양한 교권 추락을 대표하는 사건들이 터지고 있다.
‘첫키스 언제냐’ 성희롱하는 중학생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개념없는 중딩들’이라는 이름으로 유포되고 있는 동영상이다. ‘개념없는 중딩들’ 속에 보여지고 있는 내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중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여교사에게 성희롱 발언을 하는 내용으로 교권 추락의 극단적인 폐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들은 교실에서 젊은 여교사에게 “첫키스는 언제냐”, “첫경험” 등의 질문을 던지며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여교사가 주의를 주러 학생에게 다가가자 한 학생은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예쁘네”라고 말하며 벌떡 일어나는 모습까지 담겨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개념없는 중딩들’ 동영상 이외에도 최근 교권이 추락한 사례는 또 있다. 이번에는 학생이 교무실에서 교사를 폭행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울산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울산지역 한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8주 진단의 중상을 입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학교 1학년 남학생 A군은 교무실에서 교사 B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4, 5차례 때렸다.
교사 B씨는 그 자리에 쓰러져 동료 교사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진료 결과 B씨는 얼굴 뼈에 금이 가고 눈 부위가 다쳐 전치 8주 진단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출근을 못하고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A군은 수업 중 교실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담임교사 C씨에게 휴대전화를 압수당하자 이를 되찾으려고 교무실로 찾아와 이같은 일을 저질렀다. 담임교사 C씨에 고함을 지르다 이를 저지하던 교사 B씨의 얼굴 부위를 갑자기 때린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측은 사건 발생 후 교육청에 이런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A군을 전학시키는 선에서 사건을 덮었다가 사건이 알려지면서 경찰조사까지 시작되는 등 홍역을 앓고 있다.
이외에도 경기도의 모 고등학교에서는 학교 건물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노상방뇨를 하는 등의 행위를 하다 적발된 학생들이 해당 교사의 가슴팍을 밀치는 폭행을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학생은 훈계를 하는 교사 A씨의 가슴팍을 밀치며 "그만하고 법대로 하라"고 외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 역시 이같은 사실을 쉬쉬하다 학교 학생들의 입소문을 통해 다른 학교로 이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선도위원회' 등을 열고 해당 학생을 등교 정지 처분하고 해당 학생의 부모에게 전학을 권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교권침해 10년동안 2.5배로 늘었다”
상황이 이렇자 교원단체에서는 교권침해가 얼마나 많은지 수치로 공개했다. 수도권 등 일부 지역 학교현장에서 '체벌 전면금지' 정책이 처음으로 시행된 지난해 전국의 교권침해 사례가 사상 최다였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지난해 교총이 상담한 초ㆍ중ㆍ고교의 교권 침해 사례가 2009년보다 23건 늘어난 260건으로 집계됐다고 3월 17일 밝혔다. 교총이 말하는 ‘교권 침해’ 사례란 교사가 법적으로 부과된 책무를 넘어서는 부당ㆍ과잉 책임 논란에 휘말린 사례를 가리킨다.
이 수치는 2006년에 접수된 179건보다 약 1.5배 였고, 2001년(104건)에 비교해서는 2.5배 수준이라고 교총은 설명했다.
유형별로는 '학부모ㆍ학생에 의한 부당행위'가 98건(37.7%)으로 가장 많았고, 특히 이 중에서 '경미한 체벌에 과도한 금품ㆍ사직 요구와 폭언'이 39건으로 전년도(28건)에 비해 약 14% 늘어났다.
또 학생 안전사고와 관련한 손해배상 부당 요구(34건ㆍ13%), 부당징계와 교직원 사이의 갈등(각각 32건ㆍ12.3%), 허위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12건ㆍ4.6%) 등이 있었다.
한국교총은 이러한 교원과 학교에 대한 경시 풍조가 학생으로까지 점점 확대되어 학생에 의한 교사 폭언·폭행 등 교권침해 사건으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교권침해 방식도 다양해져 '부당 대우를 한다'며 학부모가 학교 측에 5년 동안 민형사 고소와 항소ㆍ상고를 되풀이하고, 학생이 체벌로 머리를 맞자 고급 병실을 옮겨 다니며 수백만원을 요구하는 예도 있었다고 교총은 전했다.
진보성향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지난해 교사의 과잉체벌 문제가 불거지자 지역 학교에 '인권침해에 속하는 모든 육체적 체벌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교권추락, 제대로 된 교육 어렵다”
하석진 한국교총 교권국장은 “교사는 자긍심으로 산다는 점에서 자긍심이 무너지고 교권이 추락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전제하고, “소수 학생·학부모의 잘못으로 선량한 대다수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현상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교직사회가 전문성 향상과 학생 교육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일 때 교권확립과 스승 공경 풍토가 조성되는 만큼 교직사회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며 “학생, 학부모도 학교생활 중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감정적 대응보다는 대화와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 등 제도적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소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인권조례, 교권추락과 관계?
교권추락의 근본이유로 학생인권조례를 일각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정책이 교권추락과 관계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체벌과 과도한 용모 복장 규제 금지, 사상과 종교의 자유, 의사표현에 자유 보장등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 학생인권조례다. 본격적인 태동은 첫 직선 교육감제가 실시된 지난해로 몇몇 지역에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준비되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경기도 교육청으로 지난해 5월 진보 성향의 김상곤 교육감이 취임과 함께 추진하기 시작해 지난 3월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게 사실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체벌금지 정책과 교권추락 및 교사가 학생들로부터 폭력 피해를 당하는 일은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곽 교육감이 체벌금지를 밝힌 9월 이후 서울시내 중·고교에서 교사에게 폭행과 폭언을 했다가 징계받은 학생 수를 조사한 결과 이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서울시교육청은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시내 중학교 376곳에서 지난해 2학기에 교권침해와 관련해 징계를 받은 학생은 모두 162명으로 1학기의 153명보다 5.8% 늘었다. 2009년 2학기에는 117명으로 같은 해 1학기의 88명보다 32.9% 늘었다. 2008년에는 2학기에 124명이 징계를 받아 같은 해 1학기 77명보다 61.0%나 늘었던 것에 비하면 증가폭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바람직한 정책 vs 교권추락 가속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최근 지난 해 9월 서울시교육청의 ‘체벌금지’ 지침과 올 3월 시행된 경기도의 ‘학생인권조례’ 시행이후의 학교 현장 변화를 묻는 설문에서 90%에 해당하는 현장교사들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학생인권을 존중하면 교사의 권리와 노동환경이 나빠진다’는 질문에 동감하는 교사는 10%에 불과했으며 ‘학생인권 조례 시행이후에 학생지도가 어려워졌다’는 질문에는 ‘동감하지 않는다’가 56.9%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반면 경기교총은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서 교실붕괴와 교권추락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불만이 표출하고 있다”며 “현재의 상황과 교사가 (간접)체벌을 할 수 있는 데도 체벌 대신 훈계와 훈육을 하는 상황은 학생들의 입장에서 엄연히 차이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교계 일각에서는 수많은 교육개혁 정책을 고려할 때 학생 체벌 금지나 인권조례 제정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최소한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교권추락 사례는 경쟁과 성적만능이 만들어 낸 한국교육의 비극적 현실이라는 의견도 있다. 전교조는 “교육당국은 이번 일련의 사건들의 계기로 정부가 추진하는 경쟁만능 교육정책이 가져올 교단의 황폐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원단체에서는 교권추락과 관련해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전국 초·중·고교 250여곳에 교권 침해와 학교 관련 분쟁을 담당할 고문 변호사가 배정한다는 내용이다. 서울과 경기교육청 등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시행 중인 체벌 전면 금지 조치와 학생인권조례 제정 움직임에 따라 불거진 교권 추락 사태를 막겠다는 교원 및 교원단체가 마련한 일종의 자구책이다.
고문 변호사들은 학생 지도 과정에서 학생 및 학부모의 폭행, 협박, 폭언이 발생하거나 학교 안전 사고 및 명예 훼손 같은 분쟁으로 교권 침해가 발생할 경우 1차로 당사자 간의 조정 및 중재를 담당하고, 직접 법률 상담도 맡는다.
“교권 더이상 실종되는 일 없어야”
하지만 교원단체의 노력만으로는 교권추락을 막기에는 부족한게 사실이다. 교육계 일각에서 체벌금지 매뉴얼을 내놓은 서울시교육청부터 보완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정치권이 교원의 교육활동보호법 등 법적인 보완책 마련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와 같이 교사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교육현장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9년 7월, 한국교총의 노력으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 대표발의로 ‘교원의 교육활동보호법’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여·야 정쟁 등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제대로 심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이제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교육계 한 전문가는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교권을 지키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며 “그러나 교권이 더 이상 실종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적 특성과 학생 인구의 특성에 맞춰 교사가 학생을 제대로 교육하도록 하려면 실추된 교권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