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하나금융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유회원 전 론스타 코리아 대표의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의 파기 환송심 첫 공판이 열렸는데, 이에 대해 론스타는 증권거래법의 양벌 규정에 대해서 위헌 법률 심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주가 조작과 관련해서 유 전 대표가 유죄라고 해서 회사인 외환은행이나 론스타까지 유죄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빨리 팔고 나가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매각 협상에서 주도권도 잡고 시간을 끌면서 몇 년 더 기다려도 배당금을 몇 조원씩이나 더 챙길 수 있고 손해 볼 건 전혀 없다고 보고 입장을 완전히 바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5조원이라는 조달 자금까지 마련한 하나금융은 완전히 닭 쫓던 개 비슷한 신세가 됐다. 앞으로 변수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하나금융측도 대안이 있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사실상 무산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여러 가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합병이 성사될 것이라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계약 6개월 연장하고 인수가격은 2829억원 깎기로 합의
주가조작 사건 및 론스타 대주주 적격성 여부 등 걸림돌
매매가격을 둘러싼 이견 등으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길어지던 하나금융지주와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매매계약 연장 협상을 타결했다. 지난 5월 24일 계약 만료 후 한달 보름 만이다. 지난 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와 론스타는 외환은행 주식매매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계약을 6개월 연장하면서 인수가격은 4조6천888억원에서 2천829억원을 깎아 4조4천59억원으로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관심은 서울고등법원이 진행 중인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재판에 쏠릴 전망이다. 양측은 계약 연장 기간 중 재판 결과가 나오고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대한 금융당국의 판단이 내려지면 수정계약 내용을 이행해 외환은행 매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위헌제청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기 까지는 보통 1~2년, 사안에 따라 선 그 이상 기간이 걸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향후 결과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속타는 하나금융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외환은행 인수에 갖는 야심은 크다. 외환은행 인수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을 잇는 아시아 금융벨트를 강화해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자산 및 수익비중을 끌어올려 ‘한국판 메가뱅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환은행 인수합병(M&A)을 두고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하나금융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워낙 얽히고설킨 사안이 많은데다 론스타 대주주 적격심사와 양벌규정 위헌 신청 등 법정 공방은 적어도 1~2년이 넘는 장기전을 피할 수 없게 되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매입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채 1조 1476억원을 발행했고, 지난 2월 말 1조 3353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했다. 또 하나은행으로부터 2조 2059억원을 배당받으면서, 인수 금액 총 4조 6888억원을 확보했다.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거액의 실탄을 확보했지만 외환은행 인수가 무산될 경우 상황은 복잡해진다. 하나금융으로서는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차입한 수조원을 지닌 채 언제 끝날게 될지 모르는 법적 판단을 기다리기에는 버거운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주가 폭락으로 인한 대외신인도도 하락하고 있는데 지난해 11월 외환은행 인수 발표 후 상승세를 타던 하나은행 주가도 인수 불확실성이 부각되면서 하락해 인수 발표 전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하나금융측은 외환은행 인수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의 시나리오도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5월 김승유 회장은 긴급 이사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외환은행 인수에 실패할 경우, 해외 금융기관을 인수할 수도 있고 비은행부문을 강화할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하나금융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법원이 우호적인 결과로 빠르게 판결을 내리고 바로 금융당국의 승인이 뒤따르는 것이다. 론스타가 대주주 적격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고, 양벌규정 위헌 신청에서 위헌판정이 남으로써 론스타에게는 무죄판결이 나는게 하나금융측에 우호적인 결과이다.
그러나 반대상황이 될 경우 외환은행 인수는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론스타가 대주주 적격심사에서 부적격판정이 날 경우 6개월 내에 지분의 10%를 매각해야 하는데 이 지분을 하나금융이 매입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 지고, 양벌규정이 인정되면 하나금융과 맺은 계약 자체가 파기될 가능성이 높아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또 금융당국이 법원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내부적 판단을 통해 합병을 승인하는 시나리오도 좋다. 시간이 갈수록 외환은행 주가가 하락하고 있는데다 외환은행 소액주주들이 론스타의 의결권 행사를 막아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어서 매각 승인을 보류했던 금융당국도 론스타 손보기에 나설 기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하나금융지주의 자회사인 하나은행은 론스타가 보유한 외환은행 지분 51.02%를 담보로 1조5,000억이라는 이례적인 주식담보대출이 협상카드로 활용될 수 있고 외부상황 역시 하나금융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의 인수 승인이 관건
금융당국이 외환은행 인수 승인 문제를 계속 보류하자 ‘변양호 신드롬’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변양호 신드롬은 경제 관료들이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정을 미루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2003년 론스타에 외환은행 매각을 결정했다가 헐값매각 혐의로 기소된 변 전 재경부국장을 빗댄 표현이다. 변양호 신드롬은 지난 6월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적격성 판단과 지분매각 승인 결정을 무기한 연기하면서 또 다시 나타났다.
매각 기한이 길어질수록 론스타는 계속 배당이익을 챙겨 먹을 수 있다. 론스타는 2조1548억원을 투자했다가 이미 배당 수익과 일부 지분 매각으로 2조4058억원을 이익을 봤고, 이번에 매각익 4조6888억원을 얻으면 5조원 가까이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국가신인도와 국가이익, 대의명분과 실리 측면에서 8년간 끌어온 론스타의 구원을 풀어야 할 시점”이라며 “정부는 외환은행 문제를 비용편익분석(Cost -Benefit Analysis) 방법으로 냉정히 평가해 빨리 결론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보류하는 것은 ‘변양호 신드롬’ 장막 뒤로 숨는 직무유기다”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