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무노조 신화’ 깨지나
삼성 ‘무노조 신화’ 깨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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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경영권 이양, 노조가 걸림돌되나?

삼성에버랜드 노동자 4명, 창립총회 후 노조설립신고서 제출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 직원들 대표하는 ‘초기업노조’ 표방
앞서 설립된 삼성에버랜드 노조가 변수…교섭권 누구에게로?
지배구조 핵심 에버랜드에 노조 첫 깃발, 이건희 회장에 부담 

삼성에 드디어 민주노조의 깃발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삼성에버랜드 노동자 4명은 7월 12일 오후 7시 삼성노동조합 창립총회를 열고, 위원장 선출 등 노동조합 설립절차를 마무리했다.

총회 참석자는 모두 에버랜드 소속이지만 이들이 설립한 노조는 ‘에버랜드 노조’가 아닌 ‘삼성 노조’였다. 이에따라 삼성의 고민이 커졌다. 노조의 등장으로 인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하나의 비판세력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재용-이부진 등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데에도 노조의 감시가 있을 수 있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노조의 신화’라고 불릴만큼 삼성은 대내외적으로 노조를 갖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미 노동계에서는 여러번 삼성 내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번번이 삼성의 대응으로 인해 좌절되고 말았다.

무노조 경영철학 삼성

삼성은 창립자 고 이병철 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노조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할 만큼 노조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신경을 써왔다. 이런 무노조 경영철학은 이건희 회장에게도 전달됐다.

때문에 삼성은 그동안 직원들이 노조를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 복지나 연봉 부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 왔다. 그동안 삼성은 복수노조 시행에 맞춰 노사협의회 대표를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고 복리후생을 강화하는 쪽으로 삼성 직원들을 단속해 왔다.

또한 노조가 설립전에 이미 다른 노조설립신고서가 접수되는 등 복수노조 금지 조항 때문에 번번히 삼성 내부에서 노조 설립은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복수노조가 시행되면서 처음으로 노조 설립이 준비되면서 삼성은 긴장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이번 삼성노동조합 총회에서는 4명의 에버랜드 노동자가 참여했고 투표를 통해 노조 규약을 정하고 박원우 초대 위원장을 선출했다. 이들이 에버랜드 노조가 아닌 삼성노조를 선택한 것은 다른 계열사에도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는 노동자들이 있을 것이고 이들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조를 만드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넓게 보자는 뜻에서였다. 초기업별 노조인만큼 삼성 전 계열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조 조직화에 나선다는 것이다.

에버랜드노조 아닌 ‘삼성노조’

박원우 위원장은 “노조설립 필증을 접수하고 교부받기까지의 과정이 우선적으로 걱정이 되지만 의지와 열정으로 헤쳐나간다면 그 정도 두려움은 문제없을 것”이라며 “위원장으로서 삼성노조 조합원 권익 보호와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법외노조의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삼성노조는 초기업별 노조로, 노동자는 하나라는 기본적인 원칙을 갖고, 삼성 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협력업체, 하청업체 노동자 등 삼성의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직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환 위원장은 앞으로 삼성노조 고문위원으로 활동한다.

창립총회에 참석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축사에서 “80만 민주노총 조합원 모두에게 자랑스럽고 기쁜 날이다”며“ 국민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을 얻기 위해 이렇게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게 안타깝다, 오늘 용기를 내어 앞장 서 나간 4명의 발걸음이 건강한 노사관계를 만들고 20만 삼성노동자의 희망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총회를 마친 삼성노조 조합원들은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을 찾아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삼성 직원이 이달 초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된 뒤 노조 설립 신고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부는 신고 사항을 검토해 조만간 신고필증 교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삼성노조에 따르면 각 계열사와 협력업체, 하청업체 등 삼성 관련 업종에 있는 모든 직종이 가입대상이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 또한 가입이 가능하다. 특히 이 노조는 계열사에 한정된 단위노조가 아니라 삼성 전 계열사 직원들이 가입할 수 있는 ‘초기업 노조’의 형태로 설립신고를 했다. 현재 삼성에버랜드 직원들로만 구성됐지만 향후 삼성전자·삼성중공업·삼성물산 등 삼성의 모든 계열사 직원들을 대표하는 노조로 떠오를 수 있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 삼성SDI 등 다른 계열사 노동자들의 추가 가입도 예상되고 있다. 삼성노조는 아직 상급단체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향후 민주노총에 가입할 가능성이 크다.

에버랜드 노조는 알박기용?

이들은 원래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이달 초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기는 바람이 시간이 지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삼성노조 출범에 앞서 에버랜드 노조가 먼저 출발을 했기 때문이다.

삼성 에버랜드 노조는 지난 6월 20일 용인시청에 설립신고를 냈고, 같은달 23일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신고된 조합원수도 삼성노조와 똑같다. 노동계에서는 이번에 생겨난 삼성노조를 견제하기 위한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동노동부에 따르면 삼성에버랜드 노조는 노조위원장으로 단체급식사업부의 차장급 직원이 맡았으며 현재 조합원 수 4명으로 파악됐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삼성이 노조 설립이 유력시되는 사업장에 이른바 어용노조를 만든 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규정에 따라 교섭대표권을 선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삼성에버랜드 노조가 설립되고 나서 ‘어용노조’라는 비판이 노동계에서 제기돼 왔다. 앞서 여타의 삼성계열사에서도 노조가 설립돼 있으나 노동계로부터 ‘페이퍼 노조’라고 지적돼 왔다. 즉 서류상으로는 7개 회사에 노조가 존재한다. 신라호텔 노조의 경우 노조원 2명을 비롯해 에스원은 2명, 삼성중공업은 38명으로 다 페이퍼 노조라고 노동계는 보고 있다.

공고기간 내 신청, 과반수 넘는 쪽이 교섭권

특히 에버랜드 노조의 경우 이미 사측에 단체교섭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노조 관련 규정을 담고 있는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에는 교섭요구 공고기간 7일동안 교섭참가를 희망하는 다른 노조가 없을 경우 기존 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되고 2013년까지 2년간 교섭권과 파업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만약 에버랜드 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 되면 새로 생긴 노조는 단체교섭은 물론 파업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 출범한 삼성노조가 필증을 교부받고 공고기간 내에 단체교섭을 에버랜드측에 신청을 한다면 과반수가 넘는 쪽이 교섭권을 가져가게 된다. 지금처럼 조합원 수가 같은 상황일 경우 노동위원회의 중재로 공동교섭단을 꾸리게 된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누가 교섭권을 가져갈지 아니면 공동교섭단을 꾸리게 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관련 삼성노조 박 위원장은 에버랜드 노조에 대해 “우리가 창립총회를 열고 노동부에 설립신고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먼저 신고를 한 그쪽 노조에서는 회사 측과 교섭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교섭창구 단일화가 그 노조와 이뤄지면 우리는 2년 동안 회사와 교섭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노조법 개정을 위해 나설 수밖에 없다. 또 그 사이에 노조가 할 수 있는 게 교섭만 있는 것은 아니니 다른 활동을 통해 조직을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이라고 밝혔다.

삼성에버랜드노조가 ‘알박기’를 한다는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진보신당은 “지금부터라도 삼성재벌이 노동자의 기본권을 빼앗는 무노조 경영을 포기하고 새롭게 설립된 삼성노조가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키는데 많이 노력해주길 바란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6월 20일 삼성노조 활동을 견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의심받는 이른바 ‘알박기’ 삼성에버랜드 노조는 해산돼야 한다. 또한 현행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상의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을 악용하여 건강한 노사관계를 저해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에서는 노조의 설립에 대해 삼성 직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계에서 만난 일부의 삼성 직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조의 역할도 분명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삼성에서 나타나는 무노조는 한국 재벌들의 노조 기피 경향의 대표적인 사례”라며 “노조가 생길 시 삼성이 분명 대처하겠지만 삼성 내부에서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 “원칙과 절차에 따라 대응”

삼성측은 삼성노조를 그룹 전반의 노조가 아닌 에버랜드 차원의 노조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삼성은 현재 무대응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노조 조합원들이 전부 에버랜드 소속인 만큼 에버랜드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에버랜드 관계자는 “노조 설립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 교섭 등의 요구에 대해 관련 법령이 보장한 원칙과 절차에 따라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앞서 에버랜드 노조가 사측에 요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에 새로 생긴 삼성노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보가 불명확한 상태라 어떻게 대응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삼성 순환출자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 에버랜드에서 노조의 첫 깃발을 올려졌다는 점에서 간단히 넘어갈 수는 없는 사안이라는 지적이 많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건희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지분 60.4%를 보유한 삼성에버랜드를 중심으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구조 형태이다. 

이건희 회장에게는 최대고민?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율을 살펴보면 삼성카드(25.64%),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25.1%),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각 8.37%), 한국장학재단 (4.25%), 삼성SDI·삼성전기·제일모직(각 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3.72%), 삼성물산(1.48%) 등 주주로 구성되어 있다. 1대 주주인 삼성카드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대한 법률(금산법) 규정에 따라 내년 4월까지 지분율을 5% 이하로 낮춰야 한다.

삼성애버랜드의 1대 주주인 삼성카드의 주식을 어떻게 매각하느냐가 경영권 승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은 지켜보고 있으며, 이번에 삼성노조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또 하나의 변수로 떠올랐다. 이점은 이건희 회장의 최대의 고민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삼성노조 설립은 이건희 회장에게도 삼성전자 2분기 실적악화에 이은 또하나의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노조가 설립되면 삼성 백혈병 논란을 비롯해 자살 등 수많은 삼성 관련 논란들과 연대할 수 있게 되며 최악의 경우 파업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어 전전긍긍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같이 삼성에도 노조가 생기면 경영권 승계 비판 및 파업과 같은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며 “앞으로 노조가 얼마나 커질지 삼성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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