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노동센터, “명예퇴직, 전환배치, 노동강도가 원인”
KT “자살 연관성 없어…어떤 회사도 자리이동 있어”
KT에서 연이은 자살사고가 벌어지고 있다. KT에서 구조조정 이후 총 4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일각에서는 일련의 자살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 높은 노동강도와 전환배치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KT노동인권센터는 2010년 3월 이후 현재까지 KT에서 재직 중 사망한 직원만 해도 13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살한 직원의 숫자는 이 중에서 3분의 1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1년 동안 연이어 자살이 벌어지게 된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본지는 자살사건을 통해 그 내막을 살펴봤다.
7월 16일 KT 서울북부마케팅단 은평지사에서 근무하던 강모(50)씨는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 나왔다. 강씨는 이날 오후 옥상에서 추락사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강씨는 그동안 평소 하던 일과 다른 현장 개통·보수 업무로 지난해 전환배치된 이후 업무 부적응을 호소해 왔다.
작년 7월 신촌지사 배치를 받고 개통업무를 담담했던 그의 원래 데이터나 음성을 보내고 받는 전송 분야를 담당하는 네트워크 서비스 센터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개통 업무로 전환배치 후 업무에 미숙했던 강씨는 결국 인사고과에서 F등급을 받은 후 올해 1월 은평지사로 자리를 옮겼지만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경찰은 현재 강씨의 죽음에 대해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자 7월 18일 부검을 의뢰했다. 경찰관계자는 “정황상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독부터 추락사까지
지난 6월 16일에는 인천마케팅단 주안지사 대부 중계소 관내에서 KT직원 노모씨가 사망했다. KT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노씨는 음독자살을 했다.
지난 3월 28일에는 여수지역에서 근무하던 KT직원이 집근처 야산에서 목을 매고 숨진채 발견됐다. KT부당노동행위 분쇄 대책위원회는 3월 29일 “KT노동자가 집 근처 야산에서 숨진 채 28일 발견돼 현재 경찰이 사망원인을 조사하는 중으로 가족들이 잠든 새벽녘에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고인이 영업직으로 근무하면서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장시간 노동을 해왔고 과도한 업무를 호소하며 가족에게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꺼내기도 하는 등 계속 말 못할 고통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3일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장전평리 인근 중앙고속도로 장전평 3교에서는 KT직원 최모(47)씨가 20미터 아래 하천으로 투신해 숨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제천에서 춘천 방향으로 운행 중 사람이 교량 난간을 넘어 뛰어내리는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교량 20미터 아래 갈대숲에서 숨진 최씨의 시신을 수습했다.
경찰은 최씨가 아버지의 자살과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유가족의 진술에 따라 자살로 판단했다. 특히 최씨의 경우 부인도 최근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자살미수사건도 벌어져
자살미수에 그친 사건도 있었다. 지난 2009년 2월 19일 지체장애 2급 박모(54)씨는 서울 노원구 월계동 1호선 국철 석계역 승강장에서 전동차에 뛰어들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박씨는 병원으로 후송돼 목숨은 건졌으나 오른쪽 팔을 절단하는 중상을 당했다.
두 다리에 장애가 있는 박씨는 KT 월곡지점에서 네트워크 유지 보수일을 해왔는데 명예퇴직 문제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부터 우울증 증세가 심해져 병원치료를 계속 받던 중이었고, 그는 사고 당일에도 병원에 갔다 오겠다고 부인과 마지막 전화를 한 후, 자살을 하려고 전동차에 뛰어 들었다.
자살 원인은 무엇?
노동계에서는 이처럼 연이은 자살에 대한 원인으로 3가지 배경으로 압축하고 있다. KT에서 벌어진 대규모 명예퇴직에 대한 압박과 노동강도 증가, 전환배치로 인한 고통이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KT는 인력퇴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퇴출 대상자를 전환배치해 퇴직을 유도했다고 노동계는 보고 있다. 즉 전환배치 이면에는 2006년 봄부터 도입하고 시행한 비밀퇴출프로그램(CP)이 있다는 것이다.
KT노동인권센터는 이에대해 “사원의 기업에 대한 기여도를 기준으로 A-Player, B-Player, C-Player(CP) 등으로 분류하고 이 중 기여도가 가장 낮은 CP 대해서는 재교육 등의 방법을 통해 기업의 생산성을 극대화시킨다는 취지로 정립한 이론”이라며 “KT에서는 원래의 CP라는 개념을 왜곡하여 오직 퇴출대상자로 낙인찍고 상상을 초월한 방식으로 괴롭혀 끝내는 스스로 퇴직하게 유도하는 방식으로 변형하여 도입했다”고 지적했다.
CP의 존재유무는 지난 4월 18일 KT 관리자 출신 반기룡씨가 양심고백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반씨에 따르면 KT는 퇴출 해당자들에게 과도한 목표 부여하거나 수행 곤란한 업무 지정하고 해당 업무가 부진했을 때 경고장 남발, 징계 처분, 인사고과 평점 F 부여 및 임금 삭감하는 등의 가혹한 행위를 가했다.
이 때문에 한 피해자는 2001년도 114분사 당시 전출을 거부한 직원인데 그동안 상품판매활동을 해오다 2006년 선로 개통직으로 전보조치됐다. 여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전주를 타야 했으며 개통 실적이 오르지 않자 업무지시서, 업무촉구서 등을 남발하다 결국 2008년 10월 해고를 당했다. 이 피해자는 해고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까지 당했다.
“CP프로그램 존엄성 파괴한다”
이같은 CP에 대해 KT노동인권센터는 “CP비밀퇴출프로그램의 운영은 분명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는 불법행위이다”이라며 “KT재직 노동자 사망건수가 폭증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과도하게 멀티플레이어를 요구하는 것도 노동자들에겐 변형된 CP퇴출압박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한 KT의 구조조정이 계속되는 가운데 인건비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KT사업보고서에 따르면 5천505명의 퇴직자가 발생한 2003년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2001년 19.17%에서 15.73%로 줄었다. 2009년 5천992명이 퇴직한 뒤 지난해 인건비 비중은 9.03%로 낮아졌다. 인건비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퇴직자의 수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직원들의 업무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전환배치 뒤에 숨은 CP의 압박과 과중한 업무의 부담이 직원들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로 몰고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했다는 것이 KT노동인권센터의 지적이다. 또한 민영화된 KT의 최대주주인 해외투기자본의 수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 구조조정의 배경이었고 주장했다.
“앞으로 자살자 늘 것”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2009년 12월 5천992명의 대규모 명예퇴직이 시행된 이후 인력보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환배치와 높은 노동강도에 따르는 스트레스 등을 감당하지 못해 재직 중 사망한 직원이 지난해 3월부터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13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조 집행위원장은 “앞으로 자살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이같은 구조적 문제 때문에 조직원들간의 갈등을 물론이고 공동체적 요소까지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KT측은 이같은 연이은 자살에 대해 별다른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환배치에 대해서는 “어떤 회사에서도 자리이동은 있다”며 “새로운 자리에 배치를 받으면 기본 교육도 이뤄진다”고 해명했다.
KT 관계자는 “사망한 강씨의 경우 전환배치 됐지만 업무에 대한 기본교육을 했다”며 “네트워크 서비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어느 통신사나 마찬가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