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사장 승진,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 본격화
“악재 속 위기관리 능력 평가 받아야 할 때 왔다”
과거 e삼성 실패 경험…뭔가 보여줘야 할 과제 남아
삼성측 “이 사장, 많은 성과 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삼성그룹 이재용 사장이 승진 이후 경영 시험대에 올랐다. 그것은 바로 삼성의 연이은 위기 속에서 자신의 실력을 평가를 받아야 하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삼성은 그동안 삼성전자의 실적부진를 비롯해 노조설립, 기강해이 등으로 곤욕을 치러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사장은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과거 e삼성을 맡았을 때 역시 실패를 경험해 그 짐을 삼성계열사에 떠넘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룹 안팎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아버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안전하게 경영권 승계를 받기위해서는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중요하게 됐다.
삼성그룹이 2010년 12월 3일 단행한 사장단 인사에서 이재용·이부진 남매가 나란히 사장으로 승진하며, 이병철-이건희-이재용·이부진 남매 체제로 이어지는 3세 경영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삼성은 사장단 인사에서 이재용 부사장을 삼성전자 사장으로,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겸 삼성에버랜드 전무를 호텔신라 겸 에버랜드 사장으로 내정했다.
이 사장은 삼성전자 부사장으로서 글로벌 기업들과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고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Display) 부문의 선행투자를 주도함으로써 시장지배력과 경쟁력을 높였다는 게 삼성측의 설명이다.
이 사장은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01년 삼성전자 상무보로 경영에 참여한 뒤 2003년 상무, 2007년 1월 전무, 2009년 12월 부사장 승진했다. 이 사장은 지난 2001년 33세의 나이로 상무보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경영기획팀에서 회사의 장기비전수립 등 후계자가 갖춰야 할 업무를 담당했다. 또 부친인 이 회장을 수행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전자, IT 등 업계 거물들과 친분을 쌓았다.
이재용 시대, 위치가 달라졌다
2011년부터 이 사장의 역할은 중요한 시점에 놓이게 됐다. 승진 뒤 이 사장의 보직은 기존대로 삼성전자 COO다. COO는 최고경영자(CEO)를 보좌하는 역할이나 사실상 CEO의 대부분 업무를 소화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가. 삼성에 따르면 최근 모습에서 이 사장은 과거 이 회장등 삼성수뇌부와 동행시 한발짝 물러나 경청하던 자세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삼성 안팎에서도 사장급으로 승진한 이 사장의 올해 대외적인 행동반경이 확대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사장급 대열에 합류한 이재용 사장의 활동범위는 부사장급에서 활동했던 수준을 크게 뛰어 넘을 것”이라며 “대외활동에서도 이 사장이 이전보다 자주 전면에 나서 활발히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재용 시대로의 진입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2008년 4월22일 이 회장은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은 “이재용 전무도 삼성전자의 COO를 사임한 후 주로 여건이 열악한 해외 사업장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체험하고 시장 개척 업무를 하게 될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열악한 사업장에서 이 사장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삼성 주변에서는 이 사장의 외유가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2009년 12월 당시 이재용 전무는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했고 1년여가 지난 2010년 12월에는 사장으로 등극했다. 왕자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위기도 오는 법. 견고한 성으로만 느껴졌던 삼성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 첫 번째는 실적부진이다.
라이벌은 승승장구 삼성은 부진
삼성전자는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2분기 실적이 연결 기준으로 매출 39조원, 영업이익 3조7천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7월 7일 밝혔다. 매출은 지난해 2분기에 비해 2.9%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26.2% 감소했다. 상반기 누계는 매출 75조9900억원, 영업이익 6조650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매출 72조5300억원, 영업이익 9조4200억원)에 비해 매출은 4.8%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9.4% 감소했다. 북미·유럽 등 선진국 시장 경기가 나빠지면서 텔레비전, LCD(액정 디스플레이 장치) 등의 판매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갤럭시S’ 등 다양한 제품을 내세워 스마트폰 판매량을 60% 늘린 것이 위안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모바일 분야에서 라이벌인 애플은 지난 2분기 매출 285억7000만달러, 순이익 73억1000만달러를 올렸다고 7월 19일 발표했다. 순이익은 IT 업체가 한 분기에 올린 실적 중 최고 기록이다. 이전 기록은 이 회사가 지난 1분기에 기록한 60억달러. 애플은 불과 석달 만에 순이익을 20% 넘게 늘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 내부에서 기강해이가 심각한 문제로 나타났다. 오죽했으면 이 회장이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 문화가 훼손됐다”며 삼성의 모든 계열사에서 부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임직원들을 질책했다. 최근 실시한 삼성테크윈에 대한 자체 경영진단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다. 이 회장은 삼성테크윈에 대한 감사 내용을 보고받은 뒤 “그동안 각 계열사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면서 “잘나가던 외국의 글로벌 기업들도 조직의 나태와 부정으로 주저앉은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질타했다.
노조 설립도 골칫거리
최근에는 삼성노조 설립이 삼성의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복수노조 허용 이후 설립된 삼성노조가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노조의 등장으로 인해 이 회장에 대한 하나의 비판세력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재용-이부진 등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데에도 노조의 감시가 있을 수 있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삼성노조 설립은 이 사장에게는 삼성전자 2분기 실적악화에 이은 또하나의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노조는 삼성 백혈병 논란을 비롯해 자살 등 수많은 삼성 관련 논란들과 연대할 수 있게 되며 최악의 경우 파업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어 전전긍긍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삼성도 노조에 대해 대응했다. 노조설립을 주도한 조장희 부위원장은 사측으로부터 해직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조 부위원장이 이에 대해 노조탄압으로 간주하고 재심을 요청하는 등 강력 대응한다는 입장이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사장의 역할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 사장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이제는 이같은 악재에 대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야 할 때라는 지적이 잇고 있다. 삼성측은 이 사장이 그동안 여러차례 경영실적을 냈다고 밝혀왔다. 사장 승진도 그에 대한 반증이라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이재용 경영능력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장이 회사 안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회사 밖 역시 이재용의 삼성시대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여전하다. 과연 이 부사장이 스스로 연 매출 200조가 넘는 국내최대재벌 삼성을 여러 악재 속에서 경영할 만한 능력이 있느냐다. 아직까지 이 부사장의 경영능력이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이 사장은 2000년대 초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당시 이재용 전무는 인터넷 지주회사인 e삼성을 중심으로 16개 계열사를 거느렸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철수했다. 업계에서는 이재용씨가 e삼성 사업으로 200억원 이상을 허공에 날렸고, 삼성 계열사에서 그 손실을 고스란히 보전해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이 사장이 손을 댔던 e삼성 등이 사실상 실패한 것을 미뤄 봤을 때 향후 이 사장의 경영능력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사장은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또 한번의 망신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통운 인수를 위한 포스코 컨소시엄에 삼성SDS가 참여했다가 CJ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은 것은 물론 실패까지 경험하게 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한통운 인수전 막판에 삼성SDS가 뛰어든 것이 이건희 회장의 의중보다 이 사장의 뜻이 더 작용했을 거라는 관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삼성SDS 주식 분포를 보면, 이 사장이 8.8%로 개인 최대 주주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각각 4.18%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삼성SDS의 대한통운 인수전 참여가 개인 최대 주주인 이 사장의 의사를 배제하고 나왔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그룹 내 IT 서비스 회사인 삼성SDS가 물류사업에까지 뛰어들어 기업 가치가 높아진다면 향후 이 사장의 후계 구축에 유리한 날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 “이재용, 많은 성과 내왔다”
반면 삼성에서는 이 사장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부분을 강조하면서 안되는 부분만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는 “이중잣대”라며 경계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직까지 이 회장이 경영전반을 돌보고 있지만 앞으로 이 사장의 역할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지금까지 이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많은 성과를 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일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잘하지 못하는 부분만을 보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있는 잘하는 부분도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실적부진이야 이미 이 회장도 예견했던 부분이고 이 사장의 능력 부족이 실적부진 등을 야기한 것은 아니다. 이미 실력은 검증됐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 문제 역시 “복수노조 시대를 맞아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한통운 인수전에 대해서도 “이 사장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삼성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이 사장은 사장 직급 승진 이후 별도 사업부나 신사업을 추진하는 자리를 맡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게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아직까지는 안전하게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이제라도 이 사장의 능력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재계에서도 삼성이라는 재계 1위의 그룹을 이끌어가는 수장의 위치의 오르기 전에 확실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으면 여전히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자연스러운 후계구도 연결이 쉽지 많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삼성의 연이은 악재에 대한 대처가 앞으로 이 사장의 대권을 위한 행보에 있어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한 이 사장이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이 사장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61억원으로 자산 200조원에 이르는 삼성그룹의 지배력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세금을 16억원밖에 내지 않았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여전히 이 사장이 재산을 늘리고 그룹 지배권을 장악한 과정에 편법과 변칙이 동원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법적으로는 마무리되었다고 하지만 국민 여론상 여전히 인정받기 어려운 대목이다.
재계의 관계자는 “이재용씨가 사장으로 올랐지만 앞으로 여러 가지 악재에서 자신만의 분명한 경영능력과 색깔을 드러내기는 쉽지 많은 않을 것”이라며 “이건희 회장이 여전히 그룹전반에 걸쳐 경영을 챙길 것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후계구도를 위해서라도 이 사장은 좀 더 적극적인 수완과 그에 따른 성과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