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뒷목을 서늘케 할 ‘여름괴담’이 소리 없이 여의도에 찾아들었다. 그동안 한나라당 지지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PK(부산경남)가 요동치고 있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의 ‘텃밭’ ‘안방’ ‘표밭’으로 불리며 지역적 지지기반 역할을 충실히 해오던 곳이지만 최근 분위기는 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게 핵심이다. 동남권 신공항, 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민심이 등을 돌려 버린 PK는 이제 야권의 공세로부터 안전한 한나라당의 ‘민심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말이 짙은 여운을 남기며 한나라당을 휩쓸고 있다.

PK(부산경남)가 심상찮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와 저축은행 사태 등 악재의 파고 속에 PK도 무사하지 못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급락이 확인되는 등 심각한 민심이반을 겪고 있는 것.
‘PK 안방’은 옛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정기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25일 부산·울산·경남(PK)에서 전국 평균(48.1%)을 웃도는 53%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하락을 거듭한데 이어 올해 성적표는 이보다 더 좋지 않아졌다. 지난 4월에는 35.4%, 5월에는 37.6%로 주저앉은 것.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동남권 신공항 문제, 부산저축은행 사태, 같은 영남 내에서도 대구·경북(TK)의 인사 독식 등으로 PK에서 현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도 ‘전조현상’에 불과하다. ‘진짜’는 내년 총선, PK의 등 돌린 민심이 ‘변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내년 총선에서 지지할 정당 후보를 조사한 결과 여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50.8%,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32.4%였다. 그러나 이 수치는 3달 만에 뒤집혔다.
5월 미디어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PK 유권자들은 여당 후보(27.4%)보다는 야당 후보(29.3%)에 더 많은 표를 보냈다.
이러한 지역 분위기에 대해 부산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정훈 의원은 “부산 경남이 이명박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줬는데 신공항 백지화 이후 정부에서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김대중 정부 때도 인사에서 부산 사람들을 이렇게 배제하지는 않았다”고 일갈했다.
PK, 소외감 느껴
김 의원은 이어 “대구경북이나 광주에 비해서도 인사나 예산에서 소외됐다고 느끼는 게 부산 민심”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렇다보니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낙선 명단’이 오르내리는 등 총선에 대한 공포감이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PK 지역구 의원들의 공포감을 자극하는 것은 PK에 지역적 기반을 둔 또 다른 정치세력, 즉 친노진영이다. 내년 총선에서 친노 인사들이 대거 PK 지역에 출사표를 내밀 것으로 알려진 것. 이들이 야권단일후보로 총선에 나설 경우 심각한 민심이반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특히, 내년 총선에서 영남은 ‘박빙의 승부처’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지방선거와 재보선 등에서 ‘조짐’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야권은 ‘정치적 불모지’였던 영남에서 김두관 경남지사를 53.5%의 지지로 당선시켰다. 또한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은 44.6% 지지율을 기록, 허남식 부산시장과 10% 이내 접전을 벌이는 등 PK 지역에서 야권 인사의 세가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PK 야권 선대위원장 소문
여기에 ‘돌풍의 핵’도 마련됐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PK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문 이사장이 내년 총선에 나설 경우 영남에 도전장을 던진 야권 인사들과 함께 선거에 상당한 파괴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벌써부터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이사장은 PK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분”이라며 “그 지역을 맡아서 총선을 지휘해 준다면 부산과 경남, 울산에서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고 ‘문재인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아예 ‘문재인 PK 선거대책위원장’설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총선에서 문 이사장이 보일 파괴력은 그가 재보선으로 정치 전면에 나선 이후 그의 대선주자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지난 7월25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 결과, 문 이사장의 지지율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2.5%, 6월 3.8%에 이어 7월에는 6.0%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러한 지지율은 야권 대선주자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10.4%)와는 4.4%포인트,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6.2%)와는 0.2% 포인트 차에 불과하다.
‘다크호스’ 떴다!
정치전문가들은 “PK지역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문 이사장이 ‘PK 대권후보’로 부상할 경우 내년 총선, PK에서 나타날 ‘문재인 효과’는 상당해질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정기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PK지역 지지도는 2009년 10월 36.5%에서 올해 6월 46.0%, 7월 47.0%로 꾸준히 우위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문 이사장이 지난 6월 4.8%에서 7월 5.8%로 지지율 상승중인 상황을 짚으며 “내년 총선, 영남벨트에서 PK지역 이탈 현상이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면서 “PK 출신의 대선 유력 후보가 부상할 경우 그러한 경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