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최근 대기업 정책동향 및 대응방안’ 공개돼 논란
전경련측 “회의는 했으나, 실무자 차원의 아이디어일 뿐”
정부와 정치권의 반대기업 정서 및 이와 관련 입법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주요 그룹을 대상으로 대국회 활동 강화방안이 제시돼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그룹별로 접촉할 정치인을 할당하고 그룹 총수가 국회 출석시 해당기업 최고경영자가 대신 출석한다는 방침까지 세워 ‘과거 정경유착을 다시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전경련 회장인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회장 취임 이래 가장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최근 삼성, 현대기아차, LG, SK, 롯데, GS 등 주요 그룹별로 접촉할 정치인을 할당해 집중 로비를 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최근 대기업 정책동향 및 대응방안’이라는 항목의 문건을 통해 반대기업 정책 입법 저지를 위해 여야 지도부와 지식경제위, 환경노동위, 국토해양위, 기획재정위 등 간부 등에 대한 로비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전경련, 정치권 로비강화 제안
또한 문건의 한 항목에는 국회가 대기업 총수를 증인으로 채택하면 원칙적으로 출석하지 않고 해당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대신 출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전경련이 제시한 문건에는 체감경기 양극화 심화와 대기업 때리기가 표심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맞물리면서 반대기업 입법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하며 특히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를 특정하면서 그가 강력한 대기업 규제책 마련을 천명했고, 민주당은 재벌개혁 법안을 준비해 8월 임시국회에서 입법화할 예정인 것으로 분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정책의 입법 저지를 위해 여야 지도부와 주요 상임위원회 간부 등에 대한 로비를 강화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에따라 전경련은 국회의원 전원과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김효재 정무수석, 김대기 경제수석을 직접 맡기로 하고, 삼성·현대차·LG·SK·롯데 등 주요 그룹에는 여야 대표, 각 상임위원장과 간사 등을 배정했다.
삼성그룹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이용섭(기재위 간사), 우제창(정무위 간사) 의원을, 현대차그룹에는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홍영표(환노위 간사) 의원을 배정했다.
또 LG그룹에는 박영선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김영환(지경위원장)ㆍ김성조(기재위원장) 의원을, SK그룹에는 강길부(기재위 간사) 김성순(환노위원장) 이성헌(정무위 간사) 의원이 롯데그룹에는 부산출신인 조경태(지경위 간사) 허태열(정무위원장) 의원, GS그룹에는 김재경(지경위 간사) 이범관(환노위 간사) 의원이 각각 할당됐다.
이들을 상대로 개별 면담과 후원금, 출판기념회, 지역구 사업ㆍ행사 후원을 통해 지원하고 의원의 지역 민원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라고 전경련은 제안했다.
“재벌문제 로비로 해결 발상자체가 문제”
전경련이 6대 재벌에게 여야 의원을 할당해 반대기업 입법 저지 로비를 지시한 것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정치권도 한목소리로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민주노동당이 5일 “이쯤 되면 아예 돈으로 법을 사 보겠다는 경악스러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질타했다.
우위영 민노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같이 질타한 뒤 “겉으로는 고통분담 운운하며 친서민 법안들을 저지하기 위한 로비라니, 파렴치하기 짝이 없다”고 비난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이날 자신을 포함해 여야 의원들에 대해 로비 지시를 내린 전경련을 강도높게 질타했다.
손학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대기업의 중소기업, 영세상공인에 대한 횡포, 특권과 반칙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기업, 재벌이 사회적 격차, 양극화와 분열의 진원지가 되서는 안 된다”며 “이런 마당에 전경련이 정치인에 대한 집중로비를 벌일 계획을 갖고 기업별로 로비대상 정치인을 할당했다는 보도가 있다. 참으로 문제”라고 분개했다.
손 대표는 이어 “최근 대두하고 있는 대기업 재벌문제를 로비로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큰일”이라며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세상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고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후리지 말고 중소기업이 양성한 인력을 빼가지 말고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빼가지 마는 것이 대기업이 해야 할 일”이라며 전경련과 대기업들을 싸잡아 질타했다
이에대해 전경련 측은 “사회공헌 회의를 준비하면서 실무자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낸 것일 뿐 임원진에게 보고가 되지 않았다”면서 “실무자의 아이디어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명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같은 내용의 회의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전경련이 기업을 대표하는 이익단체이지만 이번에 나온 문건은 단지 회의석상에 나온 의견일 뿐이다. 회의 결과도 이번 로비에 대해 하지 말자고 결혼을 내렸다”고 말했다.
허창수, 수장 역할 언제?
전경련은 최근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삼성, 현대차, LG, SK 등 4대 그룹 부회장들이 만나 사회공헌 사업을 논의하려던 간담회가 취소돼 ‘전경련이 공헌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또한 전경련은 지난달 열린 제주포럼에선 수재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병철 상근부회장이 부인까지 대동한 골프로 구설수에 올랐고, 여기에 기업별 로비 대상 정치인 문건이 공개되며 곤혹스러운 처지에 처하게 됐다. 더욱이 동반성장, 초과이익공유제 등 현안에 대해 재계의 힘을 결집시키지 못한다는 비판도 크다. 이 외에도 전경련은 최근 잇다른 ‘파문’ 때문에 전경련의 역할에 대한 재계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어 쇄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사태 때문에 전경련 수장인 허창수 회장의 리더십이 빛을 바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허 회장이 수장 취임이래 갖가지 논란이 일었고 이에 대한 대처 또한 부실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그동안 논란의 대상인 된 상근 부회장 관리 하나 못하나”라는 뼈아픈 지적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허 회장은 전경련 위상의 재정비를 위해 인적쇄신과 함께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부딪치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결국 이번 일로 정치권의 반발만 더 얻게 된 셈”이라며 “허 회장이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지적이 늘고 있는 만큼 허 회장 차원에서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