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MRO사업 철수에 속앓는 LG
대기업 MRO사업 철수에 속앓는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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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냐 지속이냐’ 선택 기로 놓인 구본무 LG회장

정부, 시민단체 등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 침범한다’ 지적 커
삼성, SK 등 대기업 MRO사업 철수 움직임에 LG만 입장유보
LG서브원 업계 1위…LG가 100% 지분 소유로 ‘LG家’ 배불려
사업분야 다양해 쉽게 포기하기 힘들어 구 회장 결단이 ‘중요’

대기업들이 대-중소기업 상생 차원에서 소모성자재구매대행사업(MRO)에서 철수 움직임을 보이자 LG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삼성은 매각을 통한 MRO사업 철수를, SK가 사회적기업화 한다는 방침을 속속 밝혔다.

하지만 정작 업계 1위인 LG는 삼성이 MRO사업 매각을 방침을 밝힌 지난 8월 1일 ‘사회적 합의 도출되면 그 방향에 맞추어 나간다는 방침’만을 밝혔을 뿐이다. 그동안 LG의 MRO 사업은 일감몰아주기와 재벌 재산증식 의혹을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LG에 대한 정부와 시민단체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 사면초가에 빠진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포기냐, 지속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지난해 SSM(기업형수퍼마켓)이 지역상권을 죽인다는 이유로 중소상공인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면 올해의 화두는 단연 MRO사업 논란이다. MRO(Maintenance:유지, Repair:보수 and Operating:운영)는 기업체 유지·보수·운영에 필요한 소모성 자재로, MRO 사업은 이들 물품의 구매 및 관리를 대행하는 것이다. 보통 기업의 경우 필기구, 복사용지, 프린터 토너 등의 사무용품과 청소용품 등 수만개 제품을 망라한다.

MRO 전담 업체를 두면 물품을 자체적으로 구매하고 관리하는 데 따른 비효율성과 인적 낭비 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마켓코리아(IMK,삼성), 서브원(LG), MRO코리아(SK) 등 대기업의 계열사 MRO업체들이 당초 계열사의 소모성 자재를 구매하는데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공공기관·대학·병원 등이나 비계열 타기업으로까지 사업영역을 넓히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정부 등 대기업 MRO시장 진출 문제제기

이 때문에 중소기업 영역을 무차별적으로 침범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한 납품단가까지 후려치는 등 동반성장에 역행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더군다나 대기업 MRO 사업체들의 경우 오너가의 지분구도가 높기 때문에 이를 통한 재벌들의 부의 대물림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대기업 MRO 사업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특히 여론의 동향에 민감한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대기업들의 MRO 시장 진출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몇몇 행정부처에서는 이미 대기업 MRO 사업자 대신 중소기업 MRO 사업자를 이용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졌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지난 6월 7일 중소기업 피해 우려를 낳고 있는 대기업의 MRO 사업 진출과 관련 대기업 MRO 사업자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 역시 지경부 산하 공공기관 10곳이 LG가 지분을 갖고 있는 서브원과 계약을 맺고 있는 등 대기업 계열사의 MRO 시장 문제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정태근 의원은 “대기업 MRO를 통해 구매창구가 일원화·대형화됨으로써 효율성과 수출 등의 장점도 있지만 그룹 MRO기업이 우월한 마케팅 능력과 협상력을 앞세워 무분별하게 시장을 확대하면서 중소기업 영역이 급속히 잠식되는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며 “정부 및 공공기관부터 중소 MRO기업 이용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MRO의 불공정거래가 없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대기업 진출에 따른 중소상공인들의 항의가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이들은 대기업 계열의 MRO 업체들의 물량 공세로 인해 생존 기반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삼성 MRO 사업 전면 손 떼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탓일까. MRO업체를 계열사들 두고 있는 대기업들이 속속 사업 철수를 선언하기 시작했다. 삼성은 지난 8월 1일 자회사인 MRO시장 철수를 공식화했다. 삼성은 삼성전자 등 9개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IMK의 지분 58.7%를 전부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MRO 사업에서 전면 손을 떼겠다는 것이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은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에 부응하고 비핵심 사업에서 철수해 그룹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매각을 결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및 상생협력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 비핵심사업 철수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게 이 부사장의 설명이다. MRO 사업은 기업의 유지, 보수, 운영 등에 필요한 소모성 자재를 구매 대행하는 사업으로 삼성은 2000년 12월 IMK를 설립해 관련 사업을 10년간 운영해왔다.
IMK 지분은 삼성전자·삼성물산 각 10.6%, 삼성전기 10%, 삼성중공업 7.2%, 삼성SDI 5.5%, 삼성엔지니어링 5.3%, 삼성코닝정밀소재 3.9%. 삼성에버랜드 및 제일모직 각 2.8%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보다 먼저 사업 철수를 선언한 곳은 한화다. 한화 측은 이미 지난 6월 MRO 회사인 한화S&C의 사업 철수를 결정하고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한편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 당국에도 통보했다고 밝혔다. 삼성과 한화가 MRO 사업 철수를 발표하자 눈치를 보던 다른 대기업들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SK, 최태원 회장 지시에 사회적기업 전환

이 중 통큰 결정을 내린 곳은 바로 SK그룹이었다. SK그룹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어 왔던 MRO사업 처리를 놓고 매각 등 여러 방안을 고심해 왔으나, 사회적 기업화가 가장 실효성이 높은 대안으로 판단하고, 이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키로 했다고 8월 7일 밝혔다.

사회적기업은 이익을 사회환원하고, 취약 계층을 채용하는 등 사업 운영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기업으로, 대기업의 사회공헌 중에서 최적의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SK의 이같은 결정은 MRO 사업의 사회적 논란을 들은 최태원 회장이 지난 7월 중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봐 달라고 말한 뒤 그 대안으로 이익이 사회로 환원될 수 있는 사회적기업 같은 형태가 어떤지 검토해 보라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SK의 MRO 사업을 맡고 있는 MRO코리아는 지난 2000년 7월 SK네트웍스와 미국 그레인저 인터내셔널(Grainger International)사가 51대 49의 비율로 합작해 설립한 회사로 지난해 102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직원은 150여명이다.

SK그룹이 매출액 1000억 원이 넘는 MRO 사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게 됨에 따라 국내 최대 규모의 사회적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또한 이 사회적 기업은 SK그룹과 거래관계를 지속하고, 중소상공인들과의 협력 모델을 개발하게 됨으로써 대기업 사회적 상생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같은 MRO사업 철수의 움직임에도 요지부동인 기업이 바로 LG였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LG의 추가적인 움직임에 관심이 모아졌다. 정부와 시민단체들도 내심 LG 역시 삼성·SK처럼 대범한 결단을 내려주길 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LG는 지난 5월 25일 “계열사와 1차 협력사의 물량 외에 신규 영업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만을 밝힌 상태다.

LG “사회적 합의 나오면 맞추겠다”

LG 관계자는 8일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면 맞춰 나가겠다는 기존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LG 입장에서 MRO사업을 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LG는 LG서브원이라는 비상장 MRO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LG 서브원은 지난해 기준 매출규모가 3조8000억원에 달하는 업계 1위 업체다. 지주회사인 (주)LG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으며 또 다른 대기업과 달리 LG서브원은 MRO사업외에 건설 관련 매니지먼트나 건물 관리, 리조트 사업 등도 하고 있어 단순 매각이 쉽지 않다.

올해 3월 제출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LG서브원의 매출 비중은 MRO사업이  62.9%, FM(건물관리)사업 9.7%, 건설사업 24.4%, 레저사업 2.4% 등이다.

또 전체 매출 중 MRO 관련 사업비중이 약 58%를 차지할 정도로 LG 계열사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반면 지난해 1024억원을 벌어들인 SK MRO코리아는 SK 계열사들을 통한 매출이 612억원 정도로, 전체 매출 대비 MRO 관련 사업비중은 크지만 절대적인 규모는 LG에 크게 못 미친다. 또한 삼성 IMK(1조5492억원)보다 2조원 이상 많다. LG서브원의 경우 2007년 1조 5888억원, 2008년 2조 375억원, 2009년 2조 5765억원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이 때문에 LG서브원은 MRO 업계에서도 규모가 큰 기업으로 분류되고 다른 업체와 다르게 매출이 크기 때문에 LG로서는 쉽게 포기하기 힘든 계열사다.

특히 일각에서는 LG서브원이 LG가의 재산증식용 회사라는 점에서 더욱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LG서브원은 IMK에 비해 오너 일가의 지분 비율이 높다. IMK는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58.7% 지분을 가진 반면 서브원은 LG가 100% 지분을 보유한 장외기업이다. 오너 일가가 LG 지분 29.0%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서브원에 대한 영향력도 비례하는 것이다.

MRO회사 중 유일하게 그룹 오너가 공동대표

LG서브원은 지난해 325억원을 배당했는데, 이 돈이 LG를 통해 구본무 회장 일가에게 상당부문 들어갔다. 게다가 서브원의 경우, 대기업 MRO 회사 중 유일하게 그룹 오너인 구본무 회장이 2004년부터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고 그 보수 또한 10억원에 가깝다. 지주회사인 재계 오너가 MRO회사 대표이사를 겸직하는 자체가 이례적이다. 일각에서는 MRO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 창구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업계에서 서브원이 LG가의 자산증식용 계열사라는 지적을 받아온 것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MRO사업 이슈로 LG가 큰 부담을 가질 것이라고 내다본 반면 다른 그룹들의 경우 매각과 철수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업계에선 중소기업 영역에 침범과 대기업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두 가지 이슈가 겹치면서 LG에게 더 부담이 되는 상황이 됐다며 상장 역시 힘들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문제는 LG 최대주주인 구본무 회장이 MRO 이슈의 직접적인 타켓이 됐다는 점이다. LG 서브원에 대한 사업 포기나 지속이냐의 선택이 구 회장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기업의 MRO 사업에 대해 견제의 목소리를 낸 것은 애초에 서브원을 겨냥한 측면이 컸다”며 “삼성이 한발 앞서 움직이면서 LG 구 회장의 부담이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LG역시 업계의 지적처럼 난감한 것은 마찬가지다. 정부와 시민단체, 중소기업의 타켓이 바로 LG 서브원으로 맞춰졌고 오너인 구 회장에게도 대외적으로 압박이 조여오는 상태라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LG서브원이기에 구회장 역시 단기간에 쉽게 결정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당분간 LG서브원과 구 회장은 정부와 정치권, 중소기업, 시민단체로부터 무언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점은 LG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LG 관계자는 “삼성·SK와 달리 서브원은 여러 사업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MRO와 관련된 부분만 떼어내 파는 게 쉽지 않다”며 “사회적 분위기를 살피면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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