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5척을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한 사실이 업계에 알려지자 그 이유를 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현대상선은 그동안 현대중공업에 주력 선박을 맡겨왔다. 하지만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업계에서는 “현대상선과 현대중공업 간의 해묵은 경영권 분쟁과 관련이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반면 현대상선은 대우조선해양 선택에 대해 “가격과 인도 시기면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감정의 불씨가 아직도 남아있어 앞으로 현대중공업에 추가 발주가 없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이번 발주를 두고 논란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대상선이 8월 10일 축구장 4배 크기만 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5척을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한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에 따르면 “이번 발주는 주력선대를 1만TEU급 이상으로 대형화해 원가를 절감하고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종합해운물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대형화 통해 원감 절감위해 내린 결정”
현대상선이 이번에 발주한 1만3,100TEU급(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컨테이너선은 길이 365.5 미터, 폭 48.4 미터, 높이 29.9 미터로 축구경기장 4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또한 이 선박은 20피트 컨테이너(길이 약 6미터) 1만3,100개를 적재할 수 있는 규모로 이를 한 줄로 세우면 78km로 경부고속도로 서울 기점에서 천안분기점까지 갈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이다.
특히 이번에 발주한 선박은 CO2 배출량을 최소화하고, 연료 효율성을 극대화한 친환경 엔진을 탑재해 연료비와 환경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했다. 또한 해적 위험에 대비하기위해 외부에서 선내로 들어오는 계단을 없앴으며, C-Deck(승무원 데크)까지 방탄유리로 설치된다. 특히, 이번 선박은 2014년 파나마 운하 확장시, 파나마 운하도 통항 가능한 규모로 건조될 예정이어서, 향후 미주노선으로 투입될 수도 있는 다목적용이다.
현대상선은 이들 1만3,100TEU 선박들을 2014년 1분기부터 인도 받아 아시아-구주항로(AEX항로)에 투입할 계획이다.
현대상선이 발주한 1만3,100TEU급 컨테이너선은 국내 해운회사가 발주한 선박중 가장 큰 선박으로 건조는 대우조선해양이 맡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현대상선이 주력선대를 현대중공업이 아닌 다른 업체에 맡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금까지 주력선박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범 현대가인 현대중공업에 발주했는데, 이번엔 그 관행을 깨고 대우조선에 주문한 것이다.
현대상선측은 이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이 가격과 인도시기 면에서 가장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선 현대중공업에 쌓인 감정의 표출로 해석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간 앙금
현대상선의 오너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최근 몇 년 새 현대중공업 오너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과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였다. 현정은 회장과 정몽준 의원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다. 즉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이 현 회장이고 정 명예회장의 6남이 정 의원이다.
그런데 지난 2006년엔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지분을 매집, 경영권 대결 일보직전 상황까지 갔다. 앞서 2003년 현 회장의 시숙인 정상영 회장의 KCC그룹이 현대그룹 경영권 확보를 시도할 때 현대중공업은 KCC편에 섰다. 현대중공업은 현재도 23%대 지분을 보유한 현대상선의 2대 주주여서, 최대주주인 현 회장측은 현대중공업에 대해 항상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 측은 지난 3월에도 갈등을 빚었다. 올 3월 현대상선 주주총회에서 현 회장측이 우선주 발행한도를 2,000만주에서 8,000만주로 확대하는 정관 변경을 시도했으나 현대중공업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측은 “현대상선은 주주총회에서 우선주 발행한도를 현행 2000만주에서 8000만주로 늘리는 변경안을 상정할 예정인데 현대상선 지분 23.8%를 보유한 주요 주주인 현대중공업그룹이 미리 반대 의사를 현대상선 측에 전달했다”고 비판했다.
현대상선이 우선주 발행한도를 확대하는 것은 범현대가의 지분비율을 낮추고 우호지분을 확대하려는 목적이 있는데, 이에 반대하는 것은 명백히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지분율에 욕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현대그룹 측 주장이었다.
당시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의 화해 의지가 확고하다면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번 우선주 발행한도 정관 변경에 찬성하고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 7.8%를 조속히 현대그룹에 넘겨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현 회장과 특수관계인, 현대엘리베이터 등의 현대상선 보유 지분은 39.47%다. 범(凡)현대가의 36.85%(현대건설 7.71% 지분 포함)보다 다소 많지만 드러나지 않는 지분을 감안하면 언제든 경영권 분쟁이 재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현대건설 인수전을 둘러싼 현대자동차그룹과의 앙금도 남아 있어 화해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 시각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현대상선이 현대차그룹과 현대건설 인수전을 펼칠 당시 반대의견을 내세운 현대중공업에 대한 서운한 속내도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현대상선이 발주에 대한 공식보도자료를 통해 업계의 말을 빌려 ‘다른기업에 맡긴 것은 처음’이라고 우회적으로 밝힌 것을 봐도 쉽게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일련의 갈등을 거치면서 양측은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결국 현대상선이 최대 거래처이자 2대 주주인 현대중공업에 배를 주문하지 않고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하게 됐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이 때문에 지금 상태라면 향후 추가발주도 현대중공업 쪽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대상선 “코멘트 할 부분 없다”
반면 현대상선 측은 “다수의 대형컨테이너선을 발주한 세계 1위 머스크와 경쟁하기 위해 대형컨테이너 선단 확보가 필요했고, 신조가도 합리적인 수준에 있어서 투자 적기라고 판단했다”며 “이번 초대형선 발주를 통해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영업력을 강화하여 영업의 현대, 영업 최우선주의를 실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가격과 인도시기 면에서 대우조선해양이 유리해서 선택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며 현대중공업간의 갈등에 대해서는 “코멘트 할 부분이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한편 대우조선해양은 컨테이너선 수주 보도와 관련하여 “선주 측과 구체적인 계약사항에 대해서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주하는 1만3,100TEU 컨테이너선 5척에 약 6,950여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상선은 선박건조자금은 내부 자금과 장기 저리의 해외선박금융을 통해 조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