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야권 대권 판도 흔들며 손학규와 선두 경쟁”
‘야권통합’으로 승부 거는 문재인, 현안 챙기는 손학규
文, 민주당 지지기반인 호남은 물론 영남도 지지세 넓혀
孫, 희망버스·대북정책 등 놓고 당내 비판에 지지율도 정체
야권에 차기 대권을 둘러싸고 전운이 감돌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 차기 대선주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도토리 키 재기’ 하던 시절은 지났다. 지난 4월 재보선 이후 혜성처럼 등장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인해 야권의 대권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손 대표와 문 이사장이 양강구도를 펼치며 힘겨루기 했던 것도 잠시, 문 이사장이 손 대표를 제치고 야권 대선주자 선두에 서며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야권 차기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이 뒤집혔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양강구도를 형성해왔으나, 최근 문 이사장의 지지율 역전으로 차기 대권을 둔 야권 대선주자들의 경쟁은 새로운 구도를 맞게 됐다.
샛별, 야권 큰 별 잡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8월 첫째 주 주간 정례조사 결과, 박근혜 전 대표가 32.2%로 1위를 유지한 가운데, 문재인 이사장이 전 주 대비 1.6%p 상승한 9.8%로 2위에 올라, 9.4%를 기록한 손학규 대표를 처음으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이 일부 야권후보들을 배제해서 단일화 효과로 손 대표를 앞선 적은 있으나, 전체 후보가 망라된 조사에서 문 이사장이 야권주자 선두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7.7%를 기록, 4위에 올랐고, 5위는 4.8%의 지지를 받은 오세훈 시장이 차지했다.
다음으로 한명숙 전 총리(4.3%), 김문수 지사(3.7%), 정동영 최고위원(3.1%), 정몽준 전 대표(3.0%), 이회창 전 대표(2.9%), 노회찬 전 대표(1.6%), 안상수 전 대표(0.9%), 정운찬 전 총리(0.9%), 이재오 특임장관(0.8%), 김태호 의원(0.7%), 정세균 최고위원(0.7%) 순으로 나타났다.
문 이사장의 지지율 상승은 가히 위협적인 수준이라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지난 5월 말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 포함, 3.3%의 지지율로 출발한지 3개월 만에 지지율을 10%대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은 물론 영남권에서의 지지까지 받을 수 있는데다, 아직 본격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으로 한 지지율 상승곡선을 타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선주자 지지율과 관련, 추가 상승 여력까지 남아있는 상태다.
문재인, 지지율 선두
정치전문가들도 이 같은 분석에 동의하고 있다. 이중 한 인사는 “문 이사장은 야권에서 차기 대선과 관련, ‘히든카드’ 혹은 ‘최종병기’로 불리고 있다”며 “친노 진영이 정치적 지원군으로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당장 친노 인사이자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명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문 이사장을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대항마”로 꼽았다.
유 대표는 지난 10일 “문 이사장은 국민들이 고통과 슬픔을 느낄 때 의지하고 싶어 할,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면서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이어 “문 이사장의 지지율은 더 올라갈 것으로 본다”며 “박 전 대표와 비교할 때도 매우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문 이사장은 남자답고 과묵하고 자기 절제와 강한 내면을 가져 보수층이나 장년층에서도 신뢰를 보낼 만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제1야당’ 수장임에도 문 이사장에게 야권 대표주자 자리를 내 준 손 대표는 문 이사장의 지지율 상승에 대해 “큰 틀에서 반갑고 고마운 일”이라며 “크게 보면 민주세력과 민주당의 지지의 총합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속내까지 그럴까. 지난 4월 재보선 후 문 이사장과 손 대표는 적지 않은 정치적 이득을 챙겼다. 문 이사장이 정치 일선에 나서며 주목받게 됐으며, 손 대표는 민주당을 ‘손학규 체제’로 재정비함과 동시에 야권 대표주자로 도약했다.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손학규
하지만 문 이사장이 계속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사이 손 대표는 내우외환에 시달려야 했다. 희망버스, 대북정책 등으로 당내 비판을 받았으며, 지지율도 정체돼 버린 것.
이 같은 손 대표의 처지에 대한 안팎의 반응도 싸늘한 편이다. 유 대표는 손 대표의 지지율 정체에 대해 “손 대표가 진보개혁 야권을 아우르는 지도자로서 면모를 보였더라면 지금보다 더 신망을 받을 텐데 아쉽다”며 “활동 영역을 민주당 대표로만 너무 한정한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손 대표는 ‘본심’을 슬쩍 내비쳤다. 그는 지지율 반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그냥 내 길을 가면 된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면 바꾸겠지만 옳은 길을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결단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도 손 대표는 “내가 하는 정치가 가장 옳은 정치라고 생각한다”면서 “언론이 인식을 바꿔야 한다. 국민들이 싫어하고 염증을 느끼는 정치는 단수가 낮다는 거 아니냐. 난 결단코 인정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강한 어조로 답변을 이어간 그는 한진중공업 관련 4차 희망버스에 관해서도 “당 대표로서 희망버스를 안 탄 건 잘한 일이며 처음부터 확고하게 생각한 것이었다”면서 “내가 할 일은 따로 있고 그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게임은 이제부터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번 지지율 역전을 계기로 야권 차기 대선주자들간의 기 싸움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신의 ‘역할’을 내세우며 세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 이사장은 자신의 역할을 ‘야권통합’에서 찾고 있다. 지난달 학계·시민사회·종교계 등 원로들을 중심으로 출범한 원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 시민사회 인사들과 만나 통합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문 이사장의 도약을 웃는 낯으로 반겼던 손 대표도 현안을 챙기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8월 임시국회와 ‘동고동락 민생실천’을 위한 현장방문에 나서는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2주기를 맞아 각종 관련 행사에 참석, DJ의 정신을 계승한 ‘적자’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정체성 논란을 일축해나간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