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지주 매각이 또 다시 무산됐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이하 공자위)가 지난 17일 오후 5시 예비 입찰을 마감한 결과,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 한 곳만 입찰해 유효 경쟁 요건이 충족되지 못했다. 이로써 2001년 우리금융 출범 이후 10년을 끌어 온 민영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에 공자위는 매각방식을 다시 논의해 재매각 여부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간위원 6명 모두 이달 말로 임기 만료로 교체되기 때문에 재매각 추진 여부는 다음 공자위원들이 결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금융계에서는 현 정권 임기 내에 매각을 다시 추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우리금융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이 지난 17일 마감된 가운데, 당초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던 3개 사모펀드인 티스톤파트너스, 보고펀드, MBK파트너스 중 MBK파트너스만 예비입찰 마감 직전 입찰서류를 제출했다. 입찰 여부를 두고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하던 티스톤파트너스와 보고펀드는 투자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입찰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유효경쟁을 위해선 2곳 이상이 예비입찰에 참여해야하지만, MBK파트너스 1곳만 서류를 제출함에 따라 11년째 헛물만 들이켠 우리금융 매각은 다시 물거품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매각 무산을 두고 “첫 걸음부터 꼬였다”며 “정부가 과연 우리금융 민영화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특혜의혹’ 시비도
앞서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매각 중단 뒤 5개월만인 지난 5월 우리금융 민영화 계획을 밝혔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금융 지분 56.97%를 모두 민간에 넘기겠다며 빠르면 올해 안에 민영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우리금융 인수에 대한 남다른 의욕을 보이면서 난관에 부닥쳤다. 금융권과 정치권에서는 특혜의혹 및 관치금융 폐해와 강 회장이 추진하는 ‘메가뱅크론’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기했다.
여기에 금융위가 추진하는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은 산은지주특혜 의혹을 더욱 확대시켰다. 금융지주사가 다른 금융지주사를 자회사로 두려면 지분을 95% 이상 확보해야 하지만 우리금융처럼 공적자금이 투입된 경우는 이를 50%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하는 시행령이 사실상 산은을 염두에 둔 시나리오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금융위원회는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에서 산은금융을 배제했다. 금융위는 현행법상 금융지주사를 다른 금융지주사가 인수할 때 지분 95%를 보유해야 하는 규정을 50%로 낮추는 방안도 모색했지만 국회의 거부로 법 개정에도 실패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분율 제한을 낮추는 금융지주사법 시행령 개정이 좌초된 때부터 우리금융 매각엔 ‘먹구름’이 드리웠다”고 말했다.
우려했던 일괄매각방식
금융당국의 우리금융 일괄매각 방식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우리금융의 시가총액이 10조원가량 되는데 사실상 이를 모두 살 수 있는 금융회사는 우리나라에 없다.
17일 국내 사모투자펀드(PEF)의 3파전으로 전개됐던 입찰이 결국 무산된 데는 무엇보다 이런 자금 확보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MBK파트너스는 새마을금고의 자금력을 끌어들여 17일 예비입찰제안서를 제출했지만, 나머지 2곳이 불참해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았다. 티스톤 파트너스는 국내 투자자를 목표치만큼 유치하는 데 실패했고, 보고펀드도 인수전을 함께 뛸 전략적 투자자(SI)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면에는 PEF에 대한 국민 정서적 거부감과 한계, 그리고 최근 불어닥친 금융시장의 불안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PEF에는 수년 후 투자금액과 이익금을 모두 챙겨 떠나는 이른바 ‘먹튀’에 대한 의구심이 내제된 탓에 국내 금융시스템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금융지주사를 넘기기엔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이는 예비입찰에 참여해도 공자위의 심사 과정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으로 보여 PEF에 대한 투자 매력을 떨어트리는 쪽으로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언젠간 우리금융을 분할 매각해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줄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 한계도 PEF가 예비입찰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키웠다.
또 예기치 못한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우리금융 주가가 곤두박질 친 것 역시 악재가 됐다. 예비입찰에 불참한 티스톤 측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상황으로 인한 우리금융의 주가 하락으로 매각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어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결국 다음정권으로 넘어가나
10년째 장기표류 중인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이 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가면서 현 정부에서는 더 이상 민영화 작업을 재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우리금융 민영화가 이제 ‘장기 과제‘로 남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결국 다음 정권으로 넘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매각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현 공자위원들의 임기도 이달 말 종료된다. 이에 따라 새 매각 소위 결성은 내달 초 새 공자위원들이 정해진 다음에야 가능해 지는데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 등 굵직굵직한 정치적 이슈가 계획돼 있어 매각 작업 추진 여부가 불투명하다.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국민주 방식의 민영화도 사실상 가능성이 낮다. 최근 대내외 금융 불안으로 우리금융 주가가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추가 할인할 경우 주주들의 반발만 부를 소지가 있어서다.
심규선 한화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방법에 대해서는 블록세일, 국민주 방식 민영화, 분리매각 등 기존에 논의되었던 다양한 방법들이 논의되겠지만, 조기민영화, 한국 금융산업 발전,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세가지 목표를 충족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