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선거에서 참패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즉각 사퇴했다. 그는 8월 26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권의 논란과 행정공백을 최소화 하기 위해 즉각적인 사퇴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오 시장의 다음 거취에 쏠리고 있다. 지난 8월 21일 오 시장이 주민투표를 코앞에 두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투표율이 미달하거나 서울시 안이 선택을 받지 못할 경우 시장직을 걸고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로써 그동안 좌절이 없었던 오 시장은 정치 인생 11년 만에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8월 24일 열린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율 미달로 인해 투표함도 열어보지 못하고 무위로 돌아가면서 오 시장은 결국 참패했다. 오 시장의 눈물도 1인 주민투표일 거리 홍보전도 그리고 대선 불출마 선언도 시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결국 시민들은 그를 외면했다.
“투표함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무상급식 투표율은 23.7%다. 주민투표법에 따르면 유권자의 3분의 1이상이 참여해야 유효한 것으로 보고 투표율이 33.3%를 넘지 않을 경우 개표하지 않고 무효처리한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33.3%를 넘지 못한 만큼 투표함을 열지 않고 무산 처리한다고 선관위는 밝혔다.
총투표자수는 215만 7천 772명으로 이 중 서초구에 거주하는 시민이 12만 6천 327명(36.2%)으로 가장 많이 투표율을 보였다.
주민투표가 무산하면서 서울시는 조례안에 따라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한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한다. 현재 부분 시행하고 있는 초등학교 무상급식은 올해 2학기부터 전면 실시한다. 내년부터는 중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시행해 2013년에는 중학교 2학년이 2014년에는 중학교 3학년이 무상급식 혜택을 볼 수 있다.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당장 오 시장의 거취에 쏠렸다. 지난 21일 오 시장이 주민투표를 코앞에 두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투표율이 미달하거나 오 시장 안이 선택을 받지 못할 경우 시장직을 걸고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바 있다.
8·24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 이후 거취문제를 놓고 고민중이던 오 시장은 8월 26일 기자회견을 갖고, “즉각 사퇴”를 선언했다.
사퇴시기, 여권 수뇌부와의 갈등
오 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개표 무산 이후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복지정책 방향을 확인할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쳐 안타깝다”고 말하며, 개봉조차 못하고 투표가 무위로 돌아간 데 대해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에게 감사의 뜻을 밝히며 “투표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26일 기자회견에서 오 시장은 “행정공백과 정치권혼란을 막기위해 즉각 사퇴가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며 “사퇴를 계기로 과잉복지에 대한 토론은 더욱 치열하고 심도 있게 전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 시장이 즉각 사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주민투표에서 패배한 만큼 즉각 사퇴하는 것이 명분에도 맞고 후일 도모를 위해서도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사퇴를 질질 끌어봤자 서울시의회 민주당을 비롯해 야권의 인신공격성 발언까지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리면서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을 법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뿌리인 한나라당을 비롯한 여권 수뇌부의 즉각 사퇴 만류 기류와 대선이 임박한 내년 4월 총선이 아닌 올해 10월 보궐선거로 악재를 미리 털어버려야 한다는 여권 일각의 주장을 이리저리 저울질해보는 모습도 그려볼 수 있다.
오 시장이 주민투표 패배 직후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여권 수뇌부와 만난 자리에서 “당장 그만두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당과 협의해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대목은 이런 추정에 힘을 더해준다.
보선 비용, 300억 혈세 부담
자신을 향한 지지자들에 대한 미안함도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을 듯싶다. 평일에 치러진 투표를 통해 25.7%의 투표율을 확보하고도 개표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민투표 투표율을 표로 환산하면 215만9095표. 오 시장이 작년에 6.2 지방선거 때 얻었던 208만6127표보다 더 많다. 야권이 주민투표 거부운동을 벌인 만큼 투표자 대다수는 오 시장의 지지자일 가능성이 높다.
선거비용에 대한 부담도 그가 쉽게 떨칠 수 없는 고민이다. 이번 주민투표를 치르기 위해 들어간 돈은 약 180억원이다.
오 시장이 9월30일 이전에 사퇴해 10월에 보선을 치를 경우 300여억원의 혈세가 추가로 든다는 점은 부담감으로 밀려왔을 것이다. 내년 4월 총선에 서울시장 보선을 하면 별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이후 1년2개월 만인 올해 8월 주민투표를 치르고 2개월 뒤인 10월에 또 자신 때문에 보선을 치를 경우 국민의 정치적 불신을 조장하고 세금을 낭비한다는 비판을 감내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 것으로 그려진다.
‘스타 변호사’에서 ‘시장직 사퇴’까지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패로 조기 사퇴를 맞이한 오 시장. 그의 정치 인생 11년 만에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2000년 16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한 오 시장은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수차례 파장이 큰 정치적 승부수를 던져왔고, 이런 승부수들은 지금까지 늘 그에게 성공을 안겨줬다.
당시 ‘환경변호사’로 이름을 떨친 오 시장은 훤칠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대중을 사로잡았으며, 정치권에선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오 시장을 영입 대상 1호로 삼았다.
오 시장은 변호사로 탄탄대로를 걸어 왔다. 1991년 그는 대기업을 상대로 한 아파트 일조권 소송을 맡아 승소해 헌법상의 환경권이 실질적인 권리로 인정받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었다.
1994년 법률 상담 프로그램인 MBC ‘오변호사 배변호사’를 진행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오늘과 내일’이라는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잇따라 맡으면서 일약 스타 변호사로 떠올랐다.
이어 16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 으로 불리는 정치개혁 관련법 개정을 주도했다.
오세훈 선거법은 국회의원들에 대한 기업후원금 금지, 연간 100만원 이상 고액 기부자 실명 기재, 모금 한도액 하향 조정 등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이 법은 정치문화의 변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고 있을 당시 여야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았고 장고 끝에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고 노른자위인 강남 을에 출마한 오 시장은 59%의 지지율을 이끌어내며 당선됐다.
새내기 정치인이었지만 오 시장의 ‘클린 정치’는 2003년 말 검찰의 불법 대선 자금 수사로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한나라당의 쇄신에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후 그는 국회 입성 후 남경필·원희룡 의원 등과 함께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를 결성한데 이어 검은돈의 정치권 유입을 막기 위한 정치 개혁 관련 정당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했다.
이후 오 시장은 5·6공화국 인사들을 향해 ‘아름다운 퇴진’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오 시장은 2004년 1월 “정치 개혁과 한나라당의 공천 혁명에 밑거름이 되겠다”며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초강수를 뒀다.
패배의 쓴잔
결국 오 시장의 불출마 선언은 당시 3선 이상 의원 16명을 포함해 현역 의원 27명의 퇴진을 이끌어냈다. 이로써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을 뚫고 121석을 건질 수 있었다.
오 시장은 “정치 현실에 정통하지 못하면서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덤벼든 무모한 도전이 부끄럽다”고 토로했고 2004년 5월 변호사로 컴백했다. 하지만 오 시장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여전했다.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하고, 저서를 출간한데 이어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를 등반한 오 시장의 일상생활마저도 언론에 보도될 정도였다. 그의 인기는 TV와 CF 출연으로 증명되기도 했다.
이 같은 대중적 인기를 발판으로 오 시장은 2006년 서울시장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게 됐다. 당시 240만9736표를 얻어 민주당 강금실 후보를 가볍게 따돌렸다. 이와 함께 전국 최다 득표와 역대 최연소 민선 서울시장 기록을 세웠다.
이후에도 오 시장의 좌절은 없었다. 하지만 오 시장은 민심을 잘못 헤아리고 말았다. 무릎을 꿇고 눈물까지 흘렸지만 ‘무상급식’에 대한 민심은 냉정했다. 개표 가능한 유효투표율 33.3%에 7.6% 포인트 못 미친 오 시장은 끝내 투표율 미달로 인해 투표함도 열어보지 못하고 무위로 돌아가면서 참패의 쓴 잔을 마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