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 예정인 삼성 사장단 인사를 두고 재계가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삼성 측은 한사코 부인하고 있지만 사내외에서는 연말 인사가 11월로 앞당겨 단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계속 나오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의 연말 사장단 인사시기를 두고 온갖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예년과 비슷하게 12월 초 개최되는 ‘자랑스런 삼성인’ 시상식 이후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11월말 인사 단행?
지난해의 경우 자랑스런 삼성인 시상식은 12월1일 열렸으며 사장단 인사는 이틀 후인 3일 단행됐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삼성 관계자는 “11월 말에 인사를 하려면 10월까지의 업무 성적을 토대로 해야 하는데 그러면 연말이 성수기인 전자 계열사들의 경우 가장 실적이 좋은 11·12월 성적이 감안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따라서 11월 인사설은 맞지 않으며 통상 12월 자랑스런 삼성인 시상식 이후 단행됐던 예년의 일정과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 9월 27일 미국 출장에 나서면서 “인사는 아직 시간이 있으며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 측도 일단 미래전략실 차원에서 인사시기를 앞당기는 문제 자체를 논의한 바 없다고 공식적으로 일축했다. 수십 년간 이어온 전통적인 관례에 따라 지난달부터 인사 검증을 하고 있고 통상적인 절차를 거쳐 12월 중순께 정기인사를 단행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렇게 통상적으로 작업하다 보니 11월 인사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또한 매년 12월1일 ‘자랑스러운 삼성인’ 시상식이 있는데, 여기서 상을 받으면 한 단계 특별승진하기 때문에 이를 인사에 반영하려면 적어도 12월은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룹 안팎과 증권가에서는 “삼성이 연말 정기인사 시점을 예년보다 앞당겨 내달 시행하거나 계열사별로 실시한 강도 높은 감사 결과를 일괄 발표한 뒤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설이 나돌고 있다.
부정비리 사건이 문제
이에 대한 근거로 지난 6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테크윈 부정 비리 사건을 질타한 것을 계기로 그룹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과 계열사 감사팀을 대폭 강화해 저인망식 감사를 실시한 결과 임직원의 나태·비리 사례가 상당수 적발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이 최근 실시한 계열사에 대한 경영진단 결과 상당한 비리가 적발돼 인사에 반영될 것”이라는 관측이 강력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부 계열사의 경우 비위 사실에 연루된 인사는 물론 최고경영책임자까지 관리 책임을 물을 것 같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한다.
임원의 20~30%, 심지어 최대 50%를 물갈이하기로 하고, 이들을 조기 퇴출시키기 위해 평년보다 한 달가량 이른 지난달 초부터 인사 검증 작업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좌전 리스트?” 소문도
이와 아울러 3/4분기가 지나면서 서서히 계열사별 또는 회사 내 사업부별 실적이 드러나는 만큼 미래전략실 전략1팀(삼성전자 담당)과 전략2팀(기타 계열사 담당)이 경영진단팀, 인사지원팀과 함께 CEO급 임원을 상대로 '영전'과 '좌천' 리스트를 작성한다는 소문도 증권가에서 떠돌고 있다.
이에 따라 그룹 차원에서 진행됐던 계열사 경영진단 결과가 사장단 인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 관계자는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감사 결과 중 사실과 맞지 않거나 과장된 내용이 많다”며 “개별 회사에 대한 세세한 감사 결과를 이 회장에게 일일이 보고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삼성테크윈 CEO를 즉각 교체하고 사업연도 중간임에도 실적이 부진한 장원기 삼성전자 액정표시장치(LCD)사업부장 사장을 사실상 경질하고 메모리반도체, 시스템 대규모집적회로(LSI), LCD 등 부품 사업을 모두 맡는 디바이스솔루션(DS) 사업총괄을 신설해 권오현 사장을 임명하는 등 삼성이 수십 년 간 지켜온 인사 관행을 깬 점도 정기인사 조기 단행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또한 방미 중인 이 회장이 일본을 거쳐 이달 중순 귀국하면 이달 말께 감사 및 경영진단 결과를 종합 보고하고 이를 언론에 발표한 뒤 다음 달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일정까지도 제시되는 상황이다.
11월 인사설 “아니다”
한편 11월 25일 삼성그룹의 조기 인사 가능성에 대해 삼성그룹 컨트롤타워를 지휘하고 있는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김순택 실장은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일부 언론에서 다음달 25일 경 삼성 사장단 인사가 단행된다고 보도했는데 맞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순택 실장은 이날 출근길에 이 같은 보도를 부인해 실제로 삼성 사장단 인사가 다음달 25일을 전후해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 미국과 일본 출장길에 오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의 인사시기와 폭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시간이 있으니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이날 김 실장은 삼성전자의 투톱 체제에 대해서도 "이미 그렇게 가고 있지 않느냐"고 말해 기존 체제를 크게 흔들 가능성도 크지 않음을 시사했다. 지금도 최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대표해 조직 전체를 총괄하면서 휴대폰, TV 등의 완제품 사업을 챙기고 있으며 권오현 사장은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등의 부품사업을 총괄하고 있어 사실상의 투톱체제라는 것이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삼성 관계자는 “인사는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저런 설이 많다”며 “여러 설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인사가 단행되는 시점에 가봐야 안다”고 밝혔다.
‘깜짝 인사’있나
이처럼 삼성의 ‘깜짝 인사’ 움직임은 올 하반기 이미 예견됐다는 게 재계의 전언이다. 삼성그룹은 지난 9월 30일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으로 옮긴 장충기 사장 후임으로 육현표 전무를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기획총괄에 임명했다.
기획총괄은 직제상 커뮤니케이션팀(팀장 이인용 부사장)에 속해 있지만 육 전무가 기획 업무와 관련한 권한과 책임을 모두 쥘 것으로 보인다. 커뮤니케이션팀이 홍보 담당인 이 부사장과 기획 담당인 육 전무 양 날개로 정비된 것이다.
이 같은 체제는 장충기 사장이 커뮤니케이션팀장을 맡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 사장은 명목상으로는 기획과 홍보를 총괄하고 있었지만, 언론을 대응하는 홍보 업무의 실권은 상당부분 이인용 부사장에 위임돼 있었다.
이처럼 홍보와 기획이 한지붕 아래에 있으면서도 상호 높은 방화벽을 사이에 두고 따로 돌아가는 것은 삼성에서 가지는 기획업무가 특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에서 기획부문은 흔히 말하는 사업 기획과는 거리가 멀다.
삼성 사령탑인 미래전략실 내 투자를 조정하고 사업을 배분하며 신사업을 추진하는 말 그대로의 기획 업무는 전략1·2팀(팀장 이상훈 사장·김명수 전무)이 맡고 있다. 삼성에서 말하는 기획 업무는 대외 협력 업무를 중심으로 하면서 사주 일가들의 지분 관리와 같은 경영 체제 관리 업무를 핵심으로 한다.
삼성 안팎에서는 장 사장의 미래전략실 차장으로 이동, 육 전무의 기획총괄 발령 등 기획 라인 재정비는 앞으로 삼성 내에서 기획 부문의 비중과 역할 확대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많다.
특히 삼성 일각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1월 10년 넘게 자신의 오른팔로 사용해 온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과 김인주 전 사장, 최광해 전 부사장 등을 퇴진시키면서도 장 사장을 유임시킨 데 이어, 또다시 미래전략실 차장으로 발탁하고 기획팀을 재정비한 데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이인용 부사장이 이끄는 홍보 파트는 양지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다면, 기획 파트는 음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다”며 “기획 파트 구성원들이 공개적으로 잘 노출되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사실 기획 파트에서 하는 일은 어지간한 고위급 인사들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보안 수위가 높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