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파업으로 호된 몸살을 앓았던 SC제일은행이 이번에는 구조조정 폭풍이 한바탕 휘몰아칠 전망이다. 사측은 파업 문책의 성격을 담아 임원진 명예퇴직을 단행한 데 이어 11월중 으로 직원들 대상의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할 예정으로 알려져 SC제일은행 직원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임원급 대상 명예퇴직 실시
지난 10월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초 SC제일은행이 실시한 임원급 명예퇴직과 관련 “이를 확대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늘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SC제일은행의 명예퇴직제도는 매년 연말마다 실시해 온 상설 제도로 그동안 20~30명 내외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왔다.
그렇지만 이번 경우처럼 임원급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은 처음이다. 은행 측은 이와 함께 연내에 행명에서 ‘제일’을 빼고 ‘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변경키로 하면서 대폭 조직 쇄신을 감행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은행 명칭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바꾸기에 앞서 ‘제일’의 색채를 완전히 빼기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미 명예퇴직 신청 기간은 지난주에 마감됐으며 현재 약 20명 정도 신청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두로 신청 의사를 밝힌 직원까지 합하면 앞으로 신청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은행 측에서 제시한 명예퇴직 신청 가능 대상자는 90명 정도다. 이 때문에 “부족한 머릿수를 일반 직원에게 확대해 채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하다.
은행 내에서는 실제로 “300~400명가량의 직원을 명예퇴직 대상에 포함 시킨다”는 수치도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강도 높은 희망퇴직을 놓고 은행 내에선 2개월 넘게 진행된 파업에 대한 문책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일선 영업점에 50세가 넘는 부지점장 급 인원이 300~400명에 달하는데 이들이 파업을 주도한 세력 중 하나라는 것이 은행 측 판단”이라며 “이번 기회에 확실히 물갈이를 해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도로 구조조정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명예퇴직 전 직원으로 확대되나
또한 노동조합 파업 이후 닫았던 영업점 43개 가운데 아직까지 문을 닫고 있는 상태인 15개 지점에 대한 의문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미 20개가 넘는 지점이 영업을 정상화했지만 여전히 영업을 재개하지 않는 것은 지점 문을 아예 닫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흘러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노조 관계자도 “무인점포 확대 방침이나 조직 슬림화 차원에서 볼 때 지점의 추가폐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미 SC제일은행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190명의 직원이 은행 문을 나선 바 있다. 그때를 떠올리며 현재 일반 직원들은 “실제로 구조조정이 감행되는 것은 아니냐”고 우려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그렇지만 은행 측은 “영업력 강화를 위한 조직 개편에 불과하다”며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SC제일은행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조직을 개편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관계자는 “현재 소매금융 채널 강화를 위한 조직 개편을 추진 중이며 명예퇴직 또한 해마다 해오던 것의 일환일 뿐 구조조정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SC제일은행은 지역본부 16개를 세분화하여 상위 개념의 영업본부 5개를 신설하며 그 아래로는 약 35개의 영업본부를 둘 예정이라고 한다.
이 관계자는 “각 본부는 기존의 영업점 관리에서 온라인 사업부문 등 보다 폭넓은 부문으로 관리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들어서는 “16개 본부를 5개로 축소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이 관계자는 “이것은 어디까지나 축소가 아니라 영업력 강화를 위한 개편”이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노조, “강력 대응”
아울러 노동조합도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노조 관계자는 “명예퇴직 등 인사 문제는 반드시 노조와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노조와 아무런 얘기도 오간 것이 없고 이 때문에 아직까지 확정된 바 없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 노조 관계자는 “희망퇴직 자체는 매년 진행하기로 한 것인 만큼 당분간 문제 삼지 않겠지만, 강제 할당이나 파업 문책 등의 성격이 있다면 즉시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노동조합의 총파업으로 폐쇄됐던 SC제일은행의 지점들이 대부분 문을 열면서 영업 정상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SC제일은행은 이날 압구정역 지점을 포함해 5개 지점을 개점하고 본격적인 영업에 돌입했다. 이번에 문을 다시 연 지점은 압구정역·목동PrB지점 등 서울 2곳과 대화역 등 경기도 1곳, 영도 등 부산·경남 1곳, 내당동 등 대구·경북 1곳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SC제일은행 관계자는 “고객 서비스에 지장이 없다는 판단 아래 그동안 문을 닫았던 5개 지점을 추가로 열었다”면서 “이로써 SC제일은행의 영업은 사실상 정상화된 상태며 나머지 폐쇄 지점의 개점 여부는 노조 활동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0일에는 면목동 지점을 포함해 8개 지점을 다시 여는 등 정상화 작업을 지속해, 노조 파업으로 폐쇄된 42개 지점 중 3분의 2 수준인 27개 지점이 개점했다. 노조원 2천700여명은 지난 6월 27일부터 8월 29일까지 사측과 갈등으로 은행권 최장기 파업을 진행해 394개 지점 가운데 42개 지점을 문을 닫았었다.
사측의 이 같은 영업 정상화 움직임에 대해 노조는 정시 출근, 점심때 동시 퇴장을 통한 태업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노조가 파업을 풀고 난 뒤 강경 투쟁을 자제하고 있어, 노사 간 갈등이 지난 6월의 대규모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아진 상태다.
계열사 편법 지원, 금융당국 징계
한편 상황이 이렇게 어수선한 가운데 SC제일은행이 은행 단기자금을 이용해 계열사를 편법 지원하다가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게 됐다. 지난 10월 26일 금융감독원은 최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SC제일은행에 대해 기관주의 조치를 내리는 한편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SC제일은행은 계열사인 한국SC증권에 담보 없이 콜 자금을 제공했다. 콜은 금융회사 사이에서 거래되는 단기 운용자금이다. 대부분 하루 단위로 거래되며, 자금중개회사를 통하지 않을 경우 담보가 있어야 자금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SC제일은행은 일시적으로 운용 자금이 부족해진 SC증권에 반일물 콜자금 약 1천900억 원을 총 4차례에 걸쳐 담보 없이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중개회사를 통하지 않은 무담보 콜거래는 은행법 위반으로 기관경고 이상의 중징계 사안이다.
그렇지만 SC제일은행이 잘못을 금융당국에 자진 신고했고 불법 행위가 일어난 콜거래가 초단기 반일물 콜 자금이었다는 점 등이 고려돼 기관주의와 과징금, 관련자 문책 수준의 경징계로 감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금융감독원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SC제일은행 고위 관계자는 “고의로 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절차상의 착오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취재/장범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