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투표를 해야 하는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우리 헌법에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강조하는 제 24조 내용이다. 인구의 증가와 사회의 복잡성으로 불가피하게 대의제도가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는 일반 국민이 자기의 존재가치를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의 투표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직․간접선거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그 특징 중 하나가 투표율이 현격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에 실시된 서울시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에서도 투표율이 25.7%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는 유권자들의 쟁점에 대한 인식부족, 정치에 대한 무관심, 제도적 장치의 미비 등 많은 요인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한 잘못된 책임의식에서 찾아 볼 수 있겠다.
선진국들의 실태는 어떤가. 이들 나라들도 과거에 비해 투표율이 많이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보다는 투표율이 높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에서 호주 94.8%, 벨기에 91.4%, 덴마크 86.1%, 독일 78.4%, 프랑스 71.1%, 미국 68.9%, 일본 62.6%의 투표율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는 평균 56.9%로 26위에 머무르고 있다. OECD국가 평균인 71.4%에 훨씬 못미치는 수치이다. 선거에 대한 역사성을 볼 때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낮아지는 투표율의 속도와 정도가 매우 완만한데 비해 우리는 그 정도가 매우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우리는 가족계획세대가 선거권을 지닌 1990년대 중반 이후 실시된 선거부터 투표율의 하락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 여년 동안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을 보면, 1992년(14대) 71.9%를 정점으로 1996년(15대) 63.9%, 2000년(16대) 57.2%, 2004년(17대) 60.6%, 2008년(18대) 46.1%로 나타나 하락의 가속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재․보선 선거의 경우 그 정도는 더욱 심하다. 2000년 이후 실시된 20회의 재․보선선거에서 평균 31.9%의 투표율을 보여, 선거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들 수 있겠다. 계속해서 붉어지는 정치인들의 비리와 밥그릇싸움, 뒤떨어지는 정치인들의 유권자에 대한 인식 등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정치적 냉소현상이 사회전반에 깔림으로서 자연스럽게 선거참여가 낮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시적으로 5공화국 시절 1985년에 실시된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84.6%의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이 선거에서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국회의 여소야대를 만들었고, 5공화국 말기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는 89.2%라는 높은 참여를 보였다. 이것은 당시 유권자들의 민주화와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정치적 관심도가 높을수록 투표율도 같이 높아지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 준 중요한 선거였다.
둘째, 정치인들의 유권자에 대한 경시현상에서 찾을 수 있겠다. 전반적인 국민들의 의식은 높아지고 있는데 반해 정치인들의 유권자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은 정치인들로 하여금 그 이상의 정치의식을 기대하고 있는데, 현실정치는 그것을 따라가질 못하고 있다. 젊은층의 선거참여 저조현상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들은 중장년층에 비해 빠른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고 피부에 와닿는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현실 정치인들은 이들의 요구와 기대를 거의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경제는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정치는 후진국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낮은 투표율의 선거결과를 통해 정치를 하는 자들의 절대적인 책임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언론에 대한 책임을 들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선거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참여광고가 과거에 비해 훨씬 많아졌음은 물론 언론사 자체적으로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선거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선거참여와 함께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뉴스보도가 그 만큼 많이 보도된다는 점이다. 쟁점에 대해서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사적인 가십성 기사를 많이 보도함으로서 선거의 소중함과 가치를 반감시키는 일을 서슴없이 해오고 있다. 물론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언론을 통해 검증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기사의 우선 순위를 정책보다는 사적인 가십에 두다보니 자연스럽게 유권자들의 관심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TV뉴스의 경우 화면에 우선하다보니 좀 더 자극적이고 흥미있는 뉴스가 정책적인 내용보다 훨씬 많아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경시현상을 유도한다고도 볼 수 있다.
넷째, 선거를 분열대결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좌우이념, 보수와 진보, 특정 지역간 등 사회를 대립현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 선거에만 있는 독특한 현상으로 선거문화의 발전과 함께 대략 한 세대가 더 지나가야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즉 6.25세대와 월남전 세대가 존재하고,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유권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부분이지 정치인들이 굳이 들추어낼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이념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 젊은 유권자에게 이런 내용들을 강요했을 때 자연스럽게 정치적 냉소현상은 커질 것이고, 선거참여는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독일의 경우 과거 나찌정권에 참여한 경력에 대해서 굳이 정치권에서 부각시키진 않는다. 다만 판단은 유권자에게 맏길 뿐이다. 과거의 이데올로기에 얽매인다면 발전보단 퇴보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선거참여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해결주체는 정치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직 모국회의원의 말에서 해결의 첫단추를 풀 수 있을 것 같다. “권력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뺏지를 달다보니 그 단맛만을 추구했지, 그에 대한 의무는 너무 소홀히 했던것 같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모든 사람은 선거전 유권자들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교과서같은 이야기이지만 이것이 투표율을 높이는 첫 번째 단추인 것이다. 선출직 정치인들은 권리보다 의무가 많이 부여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인들은 의무보다 권리만을 추구한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이런 모습을 본 유권자들의 평가는 결코 좋을 수 없고, 선진국에 비해 짧은 우리 정치사에서 이런 모습만이 부각된게 사실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는 너무나 당연하다.
둘째, 선거에 대한 중요성과 소중함에 대한 의식을 높여야 한다. 선거와 납세는 같은 의무이자 권리이다. 선출직 정치인은 납세자가 납부한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다. 이렇게 볼 때 정치인은 납세자가 고용한 일꾼이다. 일꾼이 일을 못한다면 주인은 반드시 그에 대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 즉 유권자라는 인식과 함께 납세자라는 인식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 따라서 유권자 혹은 납세자는 일꾼을 뽑는데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납세자의 책무를 안하는 것과 같다. 선거를 통해 정치인들을 평가하고 가려냄은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견제력이다.
셋째, 젊은층의 참여를 위해 다음세대를 위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즉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젊은층을 유인할 수 있는 비젼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층의 참여없이는 선거율이 높아질 수 없고, 이들의 참여없이 미래에 대한 발전적 논의를 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정책제안이 다소 추상적일수도 있지만, 公約이 空約으로 전락해서는 절대 안된다. 구태의연한 생색내기식 것보다는 젊은층들이 진정한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정책이 모색돼야 한다.
넷째, 가능한 재․보선선거를 없앨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실제로 재․보선선거의 참여율이 일반 선거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감안할 때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이 선거를 가능한 처음부터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선거는 법정 공휴일로 지정돼 참여율이 높은 반면 재․보선선거는 평일에 실시되기 때문에 참여율을 높이는데 분명 한계가 있다. 또한 유권자들이 다양한 정보에 접근하기 위한 통로도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선거가 실시되기 전 기본권을 제한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법의 엄격한 적용과 함께 탄력적인 운용도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본다.
다섯째, 일부 30여개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의무투표제도도 신중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방법은 현행법상 위헌의 소지가 충분히 있지만, 지금처럼 낮은 투표율에서 나온 결과로 선거의 대표성을 인정한다는 것 또한 오해의 소지는 충분히 있기 때문에 재고의 여유는 있는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권자의 선거참여는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중요한 주권행사이다. 이 때문에 참여하지 않은 자에 대한 배려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국가를 구성하는 중요한 국민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배려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바로 그 방법이 선거참여를 독려하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책임감을 갖게 하고,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제도권 내에 있는 공직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