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검찰, 한명숙 앞에 무릎꿇다
정치검찰, 한명숙 앞에 무릎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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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판결 한명숙, 검찰개혁 선봉…정치보폭 넓어질까?
▲ 한명숙 전 총리를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하며 “이번에는 확실하다”고 호언장담하던 검찰이 또 망신살만 뻗쳤다.

한명숙 전 총리를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하며 “이번에는 확실하다”고 호언장담하던 검찰이 또 망신살만 뻗쳤다. 재판부가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진술에 객관성이 부족한데다 번복되기까지 하는 등 직접 증거로서의 합리성이 없고 피고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며 무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특히, 김우진 부장판사는 무죄 판결을 내린데 따른 검찰의 반발에 “(9억여 원 수수 의혹의)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다”며 “형사소송법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입증에 이르는 데는 실패했다”고 일축하기까지 했다. 사실상 검찰이 무리한 짜맞추기식 수사를 펼쳐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검찰은 이번 9억여 원 수수 의혹에 따른 기소에 앞서 ‘5만 달러 뇌물수수 의혹’으로도 한 전 총리를 기소했었다. 그러나 그 사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었다. 한 전 총리를 상대로 한 검찰의 2차례 기소 모두 1심에서 패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검찰을 향한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MB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정치검찰이라는 비난에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됐으며, 야권의 거센 검찰개혁 요구에서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게 됐다. 이명박 정권을 감싸고 있던 장막들이 하나둘 걷혀지고 있는 것이다.

 

◆할 말 많은 검찰, 내부적으로는 패닉 상태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우진 부장판사)는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판결하며 한명숙 전 총리의 유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밝혔다. 다만, 한 전 총리의 비서인 김문숙 씨에 대해서는 “한명숙 전 총리를 보좌하는 입장에서 1억원 가까운 돈을 받고 한만호 전 대표의 사업과 관련된 이권에 개입한 정황이 있다”며 “또, 적극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등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징역 10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9453만원을 선고했다. 판결만 놓고 본다면, 한 전 총리 본인의 문제가 아닌 측근비리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검찰이 한 전 총리 수사를 위해 투입한 인력과 시간에 비해서는 미흡한 성과이지 않을 수 없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를 동원해 4개월 넘도록 수사에 매진했고, 1년 3개월간 무려 23차례에 걸쳐 법정 공방을 벌였다. 그런데도 무죄라니. 검찰 수사역사상 기록에 남을 만큼 처절한 패배다. 검찰로서는 패닉에 빠질 만도 한 상황이다.

검찰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 ‘한명숙 정치자금법위반 1심 판결에 대한 검찰 입장’이라는 장문의 반박자료를 내고 법원의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은 반박자료를 통해 “한만호가 9억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검찰에서는 비자금 9억원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만호가 횡령죄로 추가 기소될 것이 두려워 (가석방 등을 조건으로 한 회유로 인해) 허위의 공여진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재판부가) 판시”했으며 “아무런 근거가 없는 (재판부의) 주관적, 독단적 판단”고 강하게 비난했다.

또, 이전의 검찰을 향한 ‘표적 수사’라는 비난을 인용해 ‘표적 판결’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날 “객관적 정황으로 판단해야지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가 아니라고 하면 되느냐”며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법원의 봐주기 위한 표적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뇌물수사에서 진술 말고 증거가 무엇이 있느냐”며 “목격자나 CCTV가 아니라면 전달자 진술을 토대로 한 객관적 정황만 맞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이 이처럼 과한 반응을 보이는데 대해서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단순히 한명숙 전 총리를 상대로 1심에서만 2패라는 치욕의 문제가 아니다. 한 전 총리 수사와는 달리 이국철 SLS 회장이 폭로한 검찰 고위 간부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대한 의혹 등에는 사실상 ‘무마’에 가깝게 수사를 종결했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편향된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에 대한 심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명박 정권 하에서 검찰이 보여 온 무리한 수사와 표적수사 등 수 없이 많은 불합리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한꺼번에 터져 나올지 모를 상황인 것이다.

 

◆한명숙 공대위, “이성 상실한 檢, 심판 받을 준비나 하길”

 

검찰의 이 같은 태도에 한명숙 공대위는 2일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 재판과 관련한 치졸한 언론플레이는 그만두고 국민의 심판을 받을 준비나 하라”고 검찰의 행태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황창화 대변인은 이날 오후 논평을 내고 “검찰이 언론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한 것은 검찰이 한 전 총리 무죄 판결로 코너에 몰려 마침내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이 밝혔다.

황 대변인은 이어, “항소 절차를 통해 법정에서 다시 다투는 것조차 부당한 상황에서 법정이 아닌 치졸한 언론플레이를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하는 것은 검찰이 이제는 사법권에조차 도전하겠다는 오만함을 노출한 것”이라며 “이는 오히려 국민에게 왜 검찰개혁이 필요한지를 절감하게 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유일한 길은 한 전 총리 재판에 관련해 직권을 남용한 자들을 강력히 처벌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는 자정 노력뿐”이라면서 “검찰이 이미 자정능력을 잃어 그런 노력을 할 수 없다면 치졸한 언론플레이는 그만두고 국민의 심판을 받을 준비나 하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역시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정치검찰의 표적수사는 민주화에 젊음을 바치고 가치와 신념으로 명예롭게 살아온 인간 ‘한명숙’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되었다”면서 “검찰은 언제까지 ‘정권의 파수견’이라는 비난과 비웃음을 살 것인가”라며 검찰의 쇄신을 강력 촉구했다.

 

◆미네르바, PD수첩 등 줄줄이 무죄, 檢 후폭풍 예고

 

한명숙 전 총리 역시 공판 직후 “불법 정치 자금을 받은 사실이 없기 때문에 무죄 판결을 확신했다”며 “이는 정치 검찰에 대한 유죄 선고나 다름없다”는 심경을 밝혔다. 이튿날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해서는 “시련에 빠져보니 그동안(검찰로부터) 작거나 큰 고통을 당한 분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며 “검찰 개혁은 반드시 해야 하고, 앞으로 저의 정치 행보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검찰 개혁하는 데는 중심에 서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앞서, 김진표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전 총리 무죄 판결과 관련해 “2010년 4월에 이은 두 번째 무죄선고로 정치검찰이 참여정부 인사를 향해서 얼마나 치졸한 기획표적수사를 벌여왔음을 만천하에 입증했다”고 맹성토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정치검찰의 엉터리 표적수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그간 검찰의 행태를 조목조목 꼬집어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연주 전 KBS 사장, 미네르바 사건, MBC 피디수첩 등도 줄줄이 무죄선고를 받지 않았느냐”면서 “검찰은 법원의 이번 결정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검찰의 수사로 인해 그동안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처럼 정치활동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한 전 총리는 부담을 덜어낸 만큼 향후 보폭이 넓어질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특히, 야권의 대통합과 관련된 한 전 총리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부터 이해찬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 정세균 최고위원, 김원기 전 국회의장, 문희상 전 국회부의장 등과 비공개 조찬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 전 총리는 야권통합은 물론, 오는 12월 열릴 예정인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 전 총리의 마음이 대권과 당권 중 어느 쪽으로 굳어져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

일단, 한 전 총리 측근인 백원우 의원은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당대회 시기와 방식 등이 아직 결정되지 않아 출마 여부를 당장 밝히라는 것은 성급하다”면서도 “한 전 총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회피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당권이든 대권이든 어느 쪽으로도 열려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 전 총리 또한 이날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직까지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이행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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