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제약업계 ‘약가인하 전쟁’
보건복지부-제약업계 ‘약가인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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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인 강행’ 반발...‘생산 중단’ 우려도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약품의 약가를 평균 14% 인하하는 새 약가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가 정부의 약가인하에 전면전을 예고하고 나섰다. 생산중단은 물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약가인하를 철회시킨다는 방침이라 향후 ‘정면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지난 8월 12일 정부의 약가인하 로드맵이 발표된 이후 촉발된 이번 논쟁은 보건복지부의 입안예고로 인해 절정에 다다랐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약품의 약가를 평균 14% 인하하는 새로운 약가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새로운 약가산정 방식 적용”

지난 10월 31일 보건복지부는 필수의약품을 가격인하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새로 개편한 약가고시 내용을 발표했다. 애초에 정부는 지난 8월 12일 약가인하 품목을 8,776개(2조9,000억 원 규모)로 제시했지만 제약업계 반발에 밀려 개정안에서는 7,500개(2조5,000억 원)로 줄였다. 평균 약가 인하율은 17%에서 14%로 낮아졌다.
개정안은 동일한 성분의 의약품에는 동일한 보험 상한가를 부여하고 이미 등재돼 있는 의약품도 새로운 약가산정 방식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우선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 의약품은 모두 특허만료 전 오리지널 가격의 53.55%를 적용한다. 현재는 특허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은 기존 약가 대비 80%, 최초 출시된 제네릭 의약품 5개는 68%, 이후 출시된 의약품은 최저가의 90%를 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기존에 등재돼 있는 의약품도 약가조정 대상에 포함된다. 지난 2007년 결정됐던 오리지널 가격을 동일 제제 최고가로 삼아 53.55%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약가가 동일 효능군 하위 25% 이하인 저가 약품은 인하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렇지만 약가를 인하할 때 공급차질이 우려되는 필수 의약품 4,700개는 약가인하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또 개량 신약은 약가우대 기준을 현행 80~90%에서 90~100%로 상향 조정하고 원료합성 복제약은 일 년 간 68%수준에서 가격을 우대해 주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제네릭 진입 최초 일 년 동안은 기술개발 등을 고려해 다른 약품보다 높은 가격(특허만료 오리지널 70%, 일반 제네릭 59.5%)을 적용하고, 희귀약품에 한해 일 년이 지난 뒤에도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도 있도록 했다. 정부는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보건의료계 대협약(MOU)을 올해 말까지 이끌어 낼 계획이다.
아울러 리베이트가 적발되면 건강보험 급여 정지, 품목허가 취소, 면허취소 등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지금은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와 약사의 경우 최대 12개월까지 면허정지만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면허취소와 함께 명단을 공개하는 등 영구 퇴출하는 방안을 포함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이러한 방침에 대해 제약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1월 2일 한국제약협회는 이사장단 회의를 개최하고 보건복지부의 약가인하 개편안에 대해 집단행동에 돌입키로 결정했다. 제약사 190곳이 이달 중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을 반대하는 총 궐기대회를 진행한다. 또 하루 동안 의약품 생산을 중단키로 했다.

제약업계 “약값인하는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는 산업전반 타격 올 것”
결국 소비자에게도 피해, 다국적기업이 본격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제공

제약업계는 “보건복지부가 공고한 약가인하 입법예고는 업계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0월 11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 ‘8·12 약가 인하’ 관련 보건복지부·제약업계 합동 워크숍을 통해서도 현 제도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 의견을 제시, 국민의 건강권 향상에 기반을 두고 건강보험재정안정과 제약 산업 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이룰 수 있도록 정책을 요구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제약협회와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등이 성명서를 발표하며 보건복지부의 입안예고에 우려를 표명했다. 우건 한국제약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입안예고에 대한 법적 대응을 통해 제약업계 요구의 정당성을 입증할 것”이라며 “또한 100만인 서명운동, 제약인 총 궐기대회, 생산중단 등 이미 계획된 일정을 예정대로 강행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전국화학연맹은 정부의 약가인하는 국내 토종제약 산업의 대폭적인 매출 감소와 적자경영, 산업붕괴로 인해 불과 2~3년 후에 국내 제약 산업의 시장 점유율은 현재 65~70% 수준에서 동남아 각국(20~30% 수준)과 비슷한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화학연맹은 “이는 결국엔 외국 기업들의 손에 국내 제약 산업이 넘어가게 되며, 종국엔 약가부담 급증은 물을 보듯 뻔하다”며 “당장에 달다고 마구 먹었다가는 정말로 큰일 날 정책이 바로 이번 약가인하”라고 비판했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또한 이번 약가인하에 문제점이 많다는 입장이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는 “현재 입법예고대로 추진된다면, 발전의 노력을 거듭하고 있는 제약 산업을 돌이킬 수 없이 후퇴시킬 수도 있을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협회는 이번 약가 인하  시기를 연차 별로 점진적으로 시행하고, 신약에 대한 새로운 가격 시스템을 이번 인하 방안과 함께 동시에 마련하는 방향으로 재검토 할 것을 촉구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제약협회는 이사회에서 복지부의 고시가 확정되면 헌법소원, 행정소송 등 가능한 법적 대응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업계에 따르면 이미 제약협회는 보건복지부 발표 하루 전인 지난 10월 30일 이사장단 회의를 통해 약가인하 저지를 위한 헌법소원 및 행정소송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으며 그동안 법조계와 접촉하며 이번 약가인하에 대한 자문을 받아 왔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약가인하 행정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법조계와 몇 차례 접촉하며 의견을 청취한 것은 사실”이라며 “향후 좀 더 구체적인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제약협회는 이달 중 협회 회원사 190개사에 근무하는 8만여 명의 임직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총 궐기대회를 진행키로 했다. 궐기대회가 열리는 당일 하루 동안 모든 의약품 생산을 중단한다.
하지만 생산만 중단하고 공급은 그대로 하기 때문에 의약품 공급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제약협회 관계자는 “정부의 일방적인 약가인하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궐기대회를 진행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복지부 ‘약값인하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제약업계 ‘소송으로 대응’ 충돌 불가피

이렇게 험악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이번 약가인하 조치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전면적인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보건복지부도 법적 절차적 부분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를 진행했다”며 “절차적으로 전혀 문제없이 진행을 할 것이며 유사한 소송의 사례를 검토했을 때 이번 인하 조치가 법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한국제약협회의 법적대응 움직임에 대해 일종의 시간 끌기 작전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만약 소송이 진행될 경우에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집행정지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계 임원은 “한국제약협회의 이번 소송은 결과와 상관없이 그 과정에 의미를 두고 봐야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협회로서는 결과가 패소로 끝날지라도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했다는 점에서 회원사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가장 좋은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임원은 “제약업계로서는 오히려 소송을 거는 것이 이득을 남기는 게임이 된다”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약가인하는 실질적으로 효력이 없기 때문에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에서는 보건복지부의 약가인하에 대해 “산업 전반에 타격을 가져올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는 분위기다. 지난 9월 27일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최영희(민주당) 의원 주요 제약회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정부가 지난 8월 12일 발표한 대로 약가인하를 강행할 경우 국내 제약사 매출액은 2010년 대비 22.5%가 감소하며 영업이익은 마이너스로 적자전환 돼 R&D 투자는 절반 이상 가까이 감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 의원은 “제약사가 그동안 신약개발보다 리베이트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면서도 “최근 우리나라 약제비 증가의 첫 번째 원인이 ‘사용량’이라는 심평원의 보고가 있었는데도 정부가 손쉬운 가격정책만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재선 위원장도 “최근 추진하려는 정부의 무리한 약가인하 정책은 제약업계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대규모 실업자를 양산하고, 제약 산업의 투자위축을 불러와 결국 국민들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범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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