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조직폭력배와의 전쟁’을 선언한 경찰이 이번에는 “건설업과 증권시장 등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기업형 조폭을 최우선적으로 척결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찰은 금융정보분석원 등과 협조해 범죄 수익금을 추적하고 확인 시 적극적으로 환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원을 차단해 조직을 와해시킬 방침이라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경찰은 인천 장례식장 폭력사건 이후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데 이어 경찰청과 일선 지방경찰청에 ‘조직폭력 근절 추진단’을 구성하는 등 ‘기업형 조직폭력배 집중 색출활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자금원 차단해 완전히 무너뜨리겠다”
지난 11월 3일 경찰청은 “올해 말까지 조직폭력배 특별단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업형 조폭을 집중적으로 색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조폭은 유흥주점·보도방 등을 갈취하는 기생형에서 건설업·사채업·유통업뿐 아니라 증시·인수합병·보험사기·인터넷 도박 등에 걸친 기업형으로 진화 중이다.
경찰은 기업형 조폭에 대한 첩보 수집을 강화하고 뇌물을 제공하거나 관련 서류를 위·변조하는 등의 불법행위를 엄단하기로 했다. 경찰은 지능, 사이버, 생활안전 등 관련 기능을 적극 가동해 기업형 조폭의 활동영역인 불법대부업·도박사이트, 게임장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아울러 경찰은 금융정보분석원 등과의 협조를 통해 범죄수익금을 추적한 다음 확인되면 적극적으로 환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원을 차단해 조직을 완전히 무너뜨린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날 경찰은 경찰청 본청과 지방경찰청에 형사과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직폭력 근절 추진단을 구성하여 현판식을 열었다. 현판식 직후 전국 지방청 수사·형사과장·광역수사대장 회의를 열어 조폭 근절 종합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조현오 경찰청장은 “인천에서 벌어진 조폭 난동 사태가 오히려 경찰이 조폭을 소탕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 청장은 “서울 번화가에 위치한 특급호텔 연회장이나 커피숍에도 수십 명의 조폭들이 모여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데 다른 곳은 어떻겠느냐”며 “이들은 선량한 국민들이 모여 있는 곳에 몰려다니면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조폭이 초기 단계에는 지역이나 동네 중심으로 상인을 괴롭히는데 그치지만 성장하면 번화가나 이권이 많이 걸린 곳으로 이동하며 때로는 기업형으로 변모해 건설·시공 시행업에 직접 뛰어들던지 인수합병이나 주가 조작에 관여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 청장은 “우리 조폭도 느슨하지만 전국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만큼 자금력만 뒷받침되면 어느 순간 야쿠자나 마피아처럼 경찰이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발전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면서 “지금이 조폭을 통제가능 한 상태에 묶어두기 위한 호기라고 판단하고 국민이 조폭 때문에 위협받거나 불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경찰은 경찰청의 경우 형사과장을 단장으로 5명, 각 지방청은 수사 및 형사과장을 단장으로 5~6명이 참가하는 ‘조직폭력 근절 추진단’을 구성, 기업형 조직폭력배 단속에 총력전을 펼치기로 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10월 24일부터 오는 12월 31일까지 ‘조직폭력배 특별단속’ 기간으로 정해 대대적인 단속을 펼친 결과 지난달 말까지 조직폭력사건에 연루된 127명을 검거하고 24명을 구속한 바 있다.
기생형에서 기업형으로 발전하는 조폭
이처럼 최근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경찰이 전통적인 조폭에 이어 기업형 조폭 근절까지 나서게 된 이유는 기업 영역까지 세력을 확장하는 조폭이 더 큰 문제라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조폭은 유흥주점·보도방 갈취 등 기생형에서 기업형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편 2010년 기준으로 경찰이 검거한 조폭 3,881명 중 ▲유흥업소 갈취범 680명 ▲사행성 불법 영업 89명 ▲불법 및 변태 영업 20명 ▲경매 및 입찰 개입 10명 ▲탈세 및 사채업 219명 ▲부동산 투기 개입 2명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는 조폭들이 점점 기업형태의 사업들로 손을 뻗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조폭은 유흥주점이나 불법게임장, 성매매업소 등 불법영업장 운영뿐만 아니라 건설업, 사채업, 유통업, 연예기획사 등 합법을 가장한 사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에는 주식시장, 회사인수 합병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또한 기업형태에 이르지는 않지만 보험범죄, 인터넷 도박사이트 운영 등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개입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집중 단속에도 불구하고 폭력조직과 폭력배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9월 현재까지 전국에는 220개 조직, 5,451명의 조직폭력배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 현재 지역별 조직폭력배 현황은 경기도가 29개 조직(898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 23개(498명) ▲부산 23개(397명) ▲강원 19개(297명) ▲경남 17개(349명) ▲충남 17개(293명) ▲전북 16개(484명) ▲인천 13개(278명) ▲경북 12개(394명) ▲대구 11개(296명)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기업형 조폭은 각종 사업과 이권에 개입해 경찰에 덜미가 잡히기도 했다. 기업형 조폭들은 인수합병 시장이나 사채시장에서 사업가로 위장해 주식 등을 담보로 잡고 고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이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돈을 가로챘다.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고리로 사채를 대여한 후 기한 내 변제하지 못하면 고리이자를 원금에 합산해 사업권을 빼앗기도 했다. 기업의 대표이사 또는 사장이라고 신분을 속이고 기업자금을 횡령하거나 기업의 부실화를 초래해 고용된 근로자와 채권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각종 이권과 주가조작에 가입한 조폭도 있다. 축적한 자금 등을 이용해 주식시장에서 시세 조종자금을 제공하는 등 주가조작에 관여하여 막대한 부당이득을 챙겼다. 아울러 공사입찰, 건설자재공급, 아파트건설과 분양관련 사업, 상가 및 쇼핑몰 개발 등에 개입해 이권도 확보했다.
또한 조폭은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며 각종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연예인을 상대로 금품을 가로채고 사진촬영·사인·출연 등을 강요하는 한편 연예기획사(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면서 불공정 계약을 강요한다.
실제로 서울 구로경찰서는 지난 9월 폭력배를 동원, 쇼핑몰 임대사업자들을 협박하는 등 영업방해로 2억7,000만 원 상당의 영업 손실을 입게 한 폭력조직원 17명을 검거했다. 인천 삼산경찰서도 같은 달 재개발, 아파트 분양행사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해 강제계약 등 불법적으로 수익을 거둔 폭력조직원 등 136명을 검거했다. 이 밖에 경기청 광역수사대도 지난 6월 건설업체 지분분쟁 이권 개입 등으로 폭력의 행사한 조직폭력배 등 89명을 전격적으로 검거했다.
한편 검찰에 따르면 과거 유흥업소를 주요 무대로 삼던 조폭들이 요즘에는 부동산 시장을 거쳐 금융시장까지 침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들을 3세대 조폭으로 분류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검찰이 특별관리 하는 간부급 조폭은 ‘서방파’ ‘꼴망파’ ‘콜박스파’ ‘동성로파’ 등 191개 조직, 421명이다. 검찰은 이 가운데 상당수 조직이 금융범죄에 연루돼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무자본으로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한 뒤 161억 원을 가장납입 해 주가를 조작하고 회사 돈 44억 원을 횡령한 ‘범서방파’ 조직원 5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같은 해 6월에도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코스닥 회사를 인수, 20억 원을 빼돌린 ‘콜박스파’ 조직원 5명이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최근동향과 활동분야에 대한 첩보 수집을 강화하고 자금원 차단에 주력하는 등 기업형 조폭과도 전쟁을 선포했다. 또 본청과 지방청에 '조직폭력 근절 추진단'을 구성해 지속적이며 효율적인 근절정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검찰 또한 회계전문 인력을 조폭 수사에 대거 투입하는 한편 조폭 전담 검사와 수사관들에게 정기적으로 금융조사 기법을 교육하며 기업형 조폭 검거에 주력하고 있다.
문충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