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롯데쇼핑의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그룹 운영의 ‘세대교체’ 신호탄을 알린 신동빈 회장 앞에 최근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지고 있다. 롯데의 실적이 올해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저조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해외사업 성과도 미미하다. 더욱이 롯데마트의 경남 거창 진출이 지역 주민의 강한 반발로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향후 신동빈 회장의 부담감은 그만큼 더 커지게 됐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이후 롯데백화점은 신세계에 밀리는가 하면 신 회장이 주도한 롯데닷컴·롯데홈쇼핑 등도 실적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신 회장의 경영능력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롯데 3/4분기 실적 예상보다 부진” 전망
롯데는 지난 2/4분기 주력계열사 실적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롯데쇼핑의 2/4분기 실적은 매출액과 영업이익, 순이익이 각각 5조3,673억 원, 4,368억 원, 3,011억 원으로 전기 대비 2.4%, 2.5%, 11.9% 감소했다.
다른 화학부분의 주요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도 부진한 성적표를 내놓았다. 호남석유화학은 지난 2/4분기 매출액이 0.4% 증가한데 그쳤으며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6.7%, 33.3%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2/4분기 롯데그룹은 카드와 편의점 사업 외에는 롯데의 모든 사업이 부진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문제는 3분기 실적도 그리 신통치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3/4분기에도 롯데그룹 실적은 지난 분기의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지난 11월 1일 우리투자증권은 롯데쇼핑에 대해 “홈쇼핑과 중국 마트 사업 등 주요 계열사들의 3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하다”며 목표주가를 63만원에서 52만원으로 하향 조정해 재계의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 관계자는 “롯데쇼핑의 3/4분기 본사 영업이익은 2,499억 원으로 예상치(2,551억 원)를 충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주요 계열사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롯데홈쇼핑과 카드 부문의 영업 손익은 각각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 송출 수수료 인상과 충당금 증가에 따라 지난해 3분기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해외 마트 사업 역시 40억 원의 영업 손실을 낸 전분기와 마찬가지로 손실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중국 마트의 경우 경쟁 심화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손익 개선이 지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롯데의 해외 사업은 좀처럼 수익을 내지 않고 있다. 주력 국가인 중국뿐만이 아니다. 롯데백화점의 첫 해외 점포인 모스크바점도 고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백화점 출점 당시 입점했던 국내 업체들도 현재는 절반 이상 퇴점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월 1일 다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롯데백화점이 모스크바에 개점한 지점은 해마다 적자를 기록 중인 상황이며 이에 따라 백화점을 찾는 고객들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7년 9월 롯데백화점은 업계 최초로 모스크바에 롯데 플라자를 개장했다. 초기에는 장밋빛 전망이 난무했다. 현지 언론들은 “롯데 플라자가 모스크바에서 최고의 요지로 곱히는 신아르바트 거리에 잡았다. 이것만으로도 성공은 따놓은 당상”이라며 낙관적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백화점이 개점한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모든 이의 기대는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애물단지’ 된 롯데백화점 모스크바점
롯데백화점 모스크바점에 입점했던 국내 업체 27곳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15개 점포가 이미 철수한 상태로 알려졌다. 이 중 두개 업체는 아예 파산해 브랜드 자체가 없어졌다. 현재 확인이 가능한 기업들 가운데에는 롯데제과를 제외하면 고작 세 개 업체만 남아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퇴점 업체 관계자는 “그 당시에는 호텔공사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고 준비 없이 현지에 진출하는 바람에 상당히 고생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관계자는 “매출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결국 퇴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설상가상으로 롯데백화점 모스크바점은 실적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모스크바점 지분을 100% 보유한 롯데 유럽홀딩스는 2008~2010 회계연도에서 3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했다. 롯데 유럽홀딩스는 지난해 405억 원의 순손실을 입었다. 앞서 2008~2009 회계연도에도 순손실이 각각 673억 원·287억 원이었다.
롯데 유럽홀딩스는 롯데그룹 러시아법인 Lotte Shopping Rus LLC(백화점)·ZAO Lotte Rus(호텔)·Confectionary Rus Kaluga LCC(과자제조)·Lotte KF Rus LLC(과자판매) 등 네 곳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지주회사로 알려져 있다.
롯데 유럽홀딩스 지분은 작년 말 기준으로 롯데제과가 31.66%·롯데쇼핑이 30.81% 등 롯데그룹이 모두 87%를 지분을 갖고 있다. 롯데제과와 롯데쇼핑은 각각 331억 원·1,505억 원씩을 들여 이 회사의 지분을 취득한 바 있다.
그렇지만 롯데쇼핑이 보유한 롯데 유럽홀딩스 지분의 평가액은 지난해 말 현재 943억 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 지분 취득금액보다 560억 원 넘게 손실을 보고 있는 상태인 셈이다.
지난 2009년에도 롯데쇼핑은 롯데 유럽홀딩스가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산업은행으로부터 차입한 1,000억 달러에 대해 지급보증을 섰다. 그런데 작년 5월 대출 기한이 만료되면서 채무자를 롯데백화점 러시아 법인으로 변경하며 보증기간을 2013년 5월13일까지 연장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롯데백화점 내부에서는 모스크바점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 되는 분위기로 알고 있다”며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그룹 측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롯데그룹의 유통 진출 사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 롯데마트는 건축허가 신청 후 5개월여 만에 경남 거창 진출을 포기했다. 지난 11월 2일 경남 거창군은 “롯데마트가 지난달 31일 롯데마트 거창점을 짓는 건축허가 신청을 취하했다”고 밝혔다. 지역상인의 반발로 롯데 측이 신청을 취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6월 롯데마트는 거창읍 김천리 현 스카이시티 슈퍼마켓이 위치한 2900㎡ 부지에 새로운 점포를 내기 위해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거창시장번영회는 “롯데마트가 들어오면 재래시장 상인들이 생존권을 잃게 된다”며 반발했다. 거창시장번영회와 상인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반대여론이 확산되고 집단민원이 발생되는 등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거창군의회는 재래시장 지키기에 나서 지난 6월 지역 영세상인 보호를 위해 롯데마트의 입점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거창군은 지난 7월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 및 대규모, 준 대규모 점포의 등록제한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여 롯데마트의 입점을 제도적으로 막았다. 국회에서 기존 전통 상권으로부터 500m 이내에 3000㎡ 이상 대형마트의 입점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을 통과한 데 따른 것이다.
거창군도 이러한 반발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이홍기 거창군수는 롯데마트 본사를 방문해 유통산업발전법의 제정 취지와 거창군의회의 조례를 설명하며 “거창이 소규모 도시로서 롯데마트가 입점할 경우 지역상권의 몰락이 우려 된다”는 뜻을 밝히고 입점 철회를 직접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결국 롯데마트가 입점을 철회한데 대해 거창군은 “행정의 중재노력과 상호 깊은 이해와 합의가 도출되면서 큰 틀에서 지역상권 보호를 우선으로 롯데마트측이 자진취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롯데마트 관계자는 “현 지역의 여론과 특성 및 상황을 고려할 때 신중하게 접근하는 방향이 맞는다는 판단 아래 건축허가 신청을 전격적으로 취하했다”고 밝혔다.
한편 업계에서는 롯데마트의 거창 진출 포기에 대해 “대형마트의 신규 점포 출점이 더욱 어려워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9월 이마트 역시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역사에 입점하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지역상인 등의 반발에 직면하는 바람에 결국 포기한 바 있다.
하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