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휩쓴 루머에 검찰 ‘구속수사’ 초강수 대응
네티즌에 정치권까지 ‘표현의 자유’ 주장하고 나서
검찰, 유언비어·괴담 유포자 구속수사 방침 하루 만에 철회
“루머수준 괴담에 검찰이 나서야 하나” 정치검찰 논란도
이른바 ‘FTA 괴담’이 인터넷을 한바탕 휩쓸었다. 한미 FTA가 시행되면 펼쳐질 수 있는 끔찍한 풍경과 소문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간 것이다. 이에 검찰은 ‘구속수사 방침’이라는 초강경수를 들고 나왔지만 여야를 비롯한 여론의 반발에 부딪쳐 한발 물러선 상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싸고 괴담 수준의 허위사실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을 타고 무섭게 퍼지고 있다.
한미 FTA 괴담 일파만파
SNS 통해 급속도로 확산돼
특히 ‘FTA 독소조항 12 완벽정리’, ‘맹장수술을 받으면 의료비가 900만원이 되고 감기약은 10만원이 된다’, ‘미국과 FTA를 체결했던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으로 도망갔다’는 등의 검증되지 않은 허위사실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시행되면 우리나라는 미국의 경제 식민지가 된다”와 “한미 FTA로 인해 광우병에 걸린 미국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이 생겨도 수입을 막지 못한다”와 같은 내용의 괴담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아울러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여대생이 경찰 연행 과정에서 목 졸려 숨졌으며, 충북 옥천에서 시신이 발견됐으나 경찰이 이를 은폐했다”는 끔찍한 내용의 글이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 11월 7일 경찰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기관과 공안대책협의회를 열어 FTA 반대시위와 인터넷 유언비어 유포에 대해 현행범 체포와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엄정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검찰은 또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토론방 등을 통해 한미 FTA와 관련된 괴담 수준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불법행위도 사법처리할 방침을 마련하기도 했다.
검찰은 최근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번지고 있는 FTA 괴담에 대해 정당한 비판과 반대를 넘어선 근거 없는 허위사실이라며 처벌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임정혁 공안부장은 “합법보장·불법필벌 원칙에 따라 합법적인 집회·시위는 최대한 보장하되 폭력시위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단키로 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검찰의 방침에 대해 시민단체와 인터넷 공간에서는 즉각 과잉대응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심지어 한나라당에서조차 “검찰의 FTA 괴담 구속수사 방침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저해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여야는 11월 8일 검찰의 한미 FTA 괴담 구속수사 방침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 황영철 원내대변인은 “검찰이 한미 FTA 관련 인터넷상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현행범 체포와 구속수사까지 언급한 것은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저해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이런 의견을 대검 공안부에 전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도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짓밟겠다는 검찰의 발상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한미 FTA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법의 힘으로 짓누르겠다는 구태이며 한미 FTA에 대한 찬반토론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 임영호 대변인은 “검찰의 구속수사 방침은 지나치다”며 “허위사실 유포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구속수사를 한다면,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 등 기본권을 훼손할 소지가 큰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또한 따르면 인터넷, 트위터, 페이스북 등 인맥구축서비스(SNS)에 허위로 글을 쓴 행위 자체는 처벌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난해 12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전기통신기본법 제 47조 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허위의 통신 자체는 명확성에 위배된다는 취지다. 자신의 트위터에 한·미 FTA와 관련, 사실이 아닌 내용을 써 올리거나 남이 쓴 괴담류의 글을 리트윗하는 방식으로 퍼 나른다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이 된다.
특히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쓰는 것만으로도 누군가가 퍼 나를 수 있기 때문에 허위사실 유포가 되지만 처벌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쓴 글이나 퍼 나른 글 때문에 누군가의 명예가 훼손당했다면 기소 대상이 될 수 있다.
현재까지 나온 표현 중 “한미 FTA 체결 시 맹장수술을 받으면 의료비가 900만원, 감기약은 10만원이 된다”와 같은 표현은 허위사실만 유포했을 뿐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기소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여대생이 경찰 연행과정에서 목 졸려 숨졌다, 경찰이 이를 은폐했다’는 글은 허위사실의 대상이 경찰로 적시돼 명백하게 기소 대상이 된다. 이 사실을 처음 유포한 최모씨는 현재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한 광우병 보도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던 PD수첩 제작진의 경우 허위사실 유포로 인해 정부 협상단의 명예를 훼손하고 수입업자들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최종적으로 무혐의 판결이 났지만, 이처럼 허위사실로 인해 피해 대상이 특정되면 기소될 소지를 갖추게 된다는 지적이다.
당시 업무방해로 거론된 피해자의 경우 불특정 다수인 쇠고기 수입업자가 대상이 됐고 대법원은 “해당 언론에 고의성이 없고 업무방해를 끼쳤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역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지난해 헌재 결정으로 '허위사실 유포'까지는 처벌을 피할 수 있지만 기소 주체인 검찰이나 불특정 다수의 단체 또는 개인이 일부 피해를 보았다고 인식되는 경우 기소 가능성이 있다”면서 “특히 트위터 등에 글을 쓰는 경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들의 글을 퍼 나르는 유포 행위가 따라오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잘 가려서 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포 자체는 형상처벌 아냐”
검찰, 여론에 밀려 뒷걸음질
이렇게 FTA괴담 구속수사 논란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 결국 검찰은 11월 8일 “유언비어나 괴담 등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유포하는 행위 자체는 형사처벌할 수 없다”며 한발 물러난 태도를 보였다.
한미 FTA와 관련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에 유언비어·괴담 등 허위사실 유포한 자를 구속수사 하겠다는 방침을 하루 만에 철회한 것. 대검찰청 고위관계자는 “유언비어나 괴담 등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유포하는 행위 자체는 형사처벌할 수 없다”며 “허위사실 유포가 타인의 명예를 침해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판단될 경우 엄단하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대체적으로 전문가들은 “대검이 루머 수사에 직접 나선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사회를 어지럽히는 악성 루머에 대한 수사는 좋지만 자칫 표현 및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요소가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부득이 수사에 나서야 하는 경우 처음부터 검찰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우선 경찰을 통해 수사를 시작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견해를 신중하게 밝히기도 한다.
장범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