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신세계·롯데 등 주요 재벌가 딸들이 운영하는 제과업체에 대해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딸이 운영하는 업체가 계열사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 때문이다. 이처럼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가의 딸들을 겨냥하게 된 이유에 대해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다.

지난달 중순 공정거래위원회가 제과업체 블리스 본사에 대해 현장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블리스는 롯데쇼핑 신영자 사장의 딸 장선윤 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로 블리스는 프랑스 베이커리 전문 브랜드인 ‘포숑’의 사업권을 들여와 지난 5월 영업을 시작한 뒤 롯데백화점 12개 지점에 입점해 있다.
‘럭셔리 베이커리’로
틈새시장 공략
장 사장은 블리스의 지분 중 70%를 갖고 있는 대주주로 알려져 있다. 포숑의 서울 소공동 롯데 백화점 본점의 월평균 매출은 1억 원 정도였지만 지난 7월 재개장한 이후에는 2억 원 이상 수입이 크게 늘었다.
롯데백화점 본점의 포숑은 일반 매장의 두 세배 정도 되는 100평 남짓 되는 자리를 차지하며 럭셔리한 외관과 매우 비싼 빵 가격으로 다른 베이커리 업계를 자본을 무기로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 포숑은 탁 트인 입구에 빵을 진열해놓은 베이커리 공간과 잼과 와인을 파는 블랙세션, 10개의 의자가 배치돼 빵을 사서 먹을 수 카페형 공간 등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 벽면은 화려한 금색으로 도색했으며 바닥 역시 금색과 은색의 타일을 붙여 럭셔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포숑은 특히 고급화 전략을 표방하며 일반 제과점보다 2~3배 비싼 이른바 럭셔리 빵을 팔고 있다. 식빵은 4천 원대, 바게트 3천원, 크로와상이나 일반 파이류는 개당 2천원이 넘는다.
하지만 포숑은 입점할 때부터 과도한 위치 선정과 ‘내 식구 밀어주기’로 눈총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라도 30~40여 평의 레스토랑 하나를 백화점에 입점하려면 까다로운 심사요건을 거쳐야 한다”며 “그런데 시작한지 반년도 안 된 제과업체가 100평이 넘는 공간을 차지한 것은 특혜 시비가 일어나기에 충분하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덧붙여 베이커리업계에서는 “포숑이 낮은 임대료와 함께 판매수수료 특혜까지 받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한 상황이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특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공정거래위원회는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최대 주주로 있는 조선호텔 베이커리에 대해서도 신세계가 부당하게 지원하고 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부당 지원 여부 조사 중

정유경 부사장은 ‘달로와요’ ‘베키아에 누보’라는 브랜드의 웨스틴조선호텔 베이커리 지분을 40% 보유하고 있다. 정 부사장은 지난 2005년 조선호텔 베이커리사업부문에서 물적 분할해 조선호텔 베이커리를 설립했다. 조선호텔 베이커리는 현재는 전국적으로 100여개에 이르는 점포망을 형성하고 있다.
조선호텔 베이커리 매출은 설립 당시 760억 원에 불과했지만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을 대상으로 한 공격적인 출점을 통해 지난해에는 매출을 1,678억 원까지 끌어올렸다. 현재 조선호텔 베이커리는 전국 이마트에 독점으로 빵과 피자를 공급하고 있다. 몇 달 전 파격적인 가격으로 상당한 논란의 대상에 됐던 ‘이마트 피자’가 바로 조선호텔 베이커리의 간판 상품이다.


보나비는 베이커리 카페인 ‘아티제’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신도림 디큐브시티에 위치한 카페 아티제는 카페형과 베이커리형 매장 두 곳이 나란히 입점해있다. 특히 카페형 매장에는 유명 디자이너가 그린 일러스트 벽화가 매장 한 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아티제 관계자는 “아티제는 호텔신라의 자회사로 있기 때문에 다른 베이커리와는 달리 호텔의 고급화된 서비스와 이미지를 강조하는 게 특징”이라며 “최대한 신라호텔의 고급스러움을 이어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의 딸인 성이·명이·윤이 씨가 각각 전무로 있는 해비치호텔앤리조트는 베이커리 카페인 ‘오젠’을 제주 1호점에 이어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사옥에 2호점을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대차그룹까지 베이커리 사업에 뛰어든다”는 화제가 만만치 않았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제과사업 뛰어들어


현재 오젠은 서울 압구정동 기아자동차 국내영업본부 사옥에 3호점을 준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관계자는 “오젠의 베이커리 맛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면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면서 “외식사업이 호텔사업과 별개가 아닌 연장선인 만큼 전무들이 큰 관심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젠이 재계로부터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그동안 현대차그룹의 오너 일가에서 여성들의 활약상이 다른 일가에 비해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타 그룹 총수 일가에 비해 현대차그룹의 여성 오너들이 상대적으로 조용한 행보를 보였지만 베이커리 카페 사업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선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처럼 대기업가의 딸들이 너도나도 베이커리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백화점과 마트 등 탄탄한 유통업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구축돼 있는 안정적인 유통망을 이용해 비교적 손쉽게 프리미엄 시장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것보다 리스크가 적은 반면 수익을 얻기는 쉽다는 것이다. 호텔신라나 현대자동차그룹은 계열사 내에 유통업체를 가지고 있지만 않지만 계열사가 소유한 건물에만 입점해도 매장은 확보된다. 현대자동차 사옥에 1호점을 낸 오젠처럼 호텔신라의 아티제도 서초동 삼성 사옥에 입점해 있다.
하지만 이들의 행보는 그리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정거래위원회가 이처럼 재벌가 딸들의 사업체에 대해 칼을 들이대게 된 상황의 발단은 지난 6월 7일이었다.
이날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대기업 총수의 딸들이 제과업까지 진출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되는 것 아니냐”라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재벌가 딸 계열사
유통망 이용 시장 잠식
이날 배영식 의원(한나라당)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딸 이부진 씨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딸 정유경 부사장 ▲롯데쇼핑 신영자 사장의 딸 장윤선 씨 등이 제과점을 운영하거나 대주주인 점을 거론하며 “재벌 2·3세가 국민경제의 순선환적인 면에 기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동반성장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라며 “앞으로 면밀히 조사 하겠다”고 대답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공정거래위윈회의 이번 블리스 현장 조사를 예견된 조치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들 업체가 백화점이나 마트, 계열사 건물에 입점하면서 특혜나 부당지원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계열사보다 판매수수료, 임대료 등을 낮게 책정 받는 식의 부당지원을 받았는지 여부다.
한편 해당업체 관계자들은 공정위의 조사사실에 대해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부당지원과 관련된 조사여부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호텔 베이커리 관계자는 “일반적인 시장현황 조사 정도로 알고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결코 곱지 않다. 재벌가 2세들이 이른바 골목상권의 대표격인 빵집을 열고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고급 베이커리 브랜드는 지금 당장은 백화점이나 계열사 사옥 등에 입주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앞으로 사업이 확대되면 언제든 골목상권으로 진출할 여지가 있다.
장범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