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문·케이블방송 광고를 보고 ‘무점포 창업’을 시도했다 수익은 고사하고 계약금마저 다 날리는 서민들이 늘고 있다. 이에 창업자들은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점포 창업이란 말 그대로 점포를 가지지 않은 상황에서 창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창업자가 본사(제조회사)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일정 지역의 영업권을 부여받는 방식으로 창업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A회사가 B씨에게 계약금 500만원을 받고 C지역의 영업권을 주고 물품을 C지역에 있는 판매처(슈퍼마켓이나 문방구 등)에 납품하면 이후 판매처에서 추가로 상품을 구입할 때 B씨를 통하도록 해 B씨에게 수익이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법적 근거 없어 피해 속수무책
여기서 문제는 창업자의 생각만큼 수익이 발생하지 않거나 심지어 매출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무점포 창업 피해자들에 따르면 처음에 본사는 창업자를 모집할 때 “틀림없이 안정적인 수익이 발생한다”며 유혹한 다음 향후 실제로 판매가 부진하면 연락이 두절되거나 아예 책임을 회피해 버리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또한 창업자들이 계약 해지 및 상품구입비 반환을 요구하면 위약금과 상품구입비 등을 떼고 나머지 금액을 돌려주는데 이 금액도 대체 계약자가 나타나 계약금을 받아야 돌려주고 있다.
또한 영업독점권을 부여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일부 본사는 창업자들에게 일정 지역의 영업독점권을 준다고 해 놓은 뒤 온라인으로 동일한 제품을 판매하거나 약간 다른 제품을 출시해 다른 사람에게 영업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를 위반하고 있다.
그렇지만 무점포 창업 본사가 이렇게 부당한 일들을 지속적으로 저질러도 피해를 입은 창업자들은 법적으로 구제 받을 수 있는 길을 도저히 마련할 수 없어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피해자들은 공정거래위원회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의뢰한 바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 또한 “사기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피해 사례는 다음과 같다. 지난 4월 대리기사를 하는 노모 씨는 ‘점포 임대료 부담 없이 창업을 할 수 있다’는 케이블방송 광고를 보고 귀가 솔깃했다. 이 회사가 공급하는 닭꼬치를 받아 거래처에 납품하는 일을 하면 월 200만~3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노 씨는 몇 달 동안 번 돈 750만원을 업체에 내고 1년 동안 지역 독점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 업체는 노 씨에게 “피시방·슈퍼마켓 등 점포 20여 곳에 납품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실제로 납품이 가능한 거래처는 영세한 슈퍼마켓 몇 곳뿐이었다. 그리하여 노 씨가 한 달 동안 번 돈은 5만원도 채 못 되었다. 견디다 못한 노 씨는 결국 지난 6월 계약해지를 요구했지만 본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경기도에 사는 윤모 씨는 소자본창업 아이템을 찾던 중 신문광고에 화장품 및 다이어트 제품 위탁판매점을 무점포로 저렴한 비용에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그 업체와 계약금 850만원을 지불하고 지역 독점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그렇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해 보니 본사측이 제품 배송도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전화통화도 잘 안 되는 등 문제가 발생해 운 씨는 결국 계약해지를 요청했다. 본사측은 “위약금 200만원과 샘플제품비용 23만원을 제외한 627만 원을 돌려준다”고 통보해 왔고 이것마저도 대체 계약자가 나타나 계약이 체결돼야 돌려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부산에 사는 주부 정모 씨도 올 초 비슷한 일을 당했다. 정씨는 두 아이의 양육비라도 보태기 위해 소자본 무점포 대리점주 모집 광고를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시어머니 사망보험금으로 받은 돈의 일부인 790만원으로 부산 지역에 인스턴트 짬뽕라면밥을 독점 공급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거래처 20곳을 섭외해주고, 홍보 지원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래처에서 “제품이 잘 익지 않는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회사 측은 “사람들 성격이 급해 빨리 먹으려 한다”며 무성의한 답만 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은 반품시켜주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철저한 주의·신중한 접근 필요
이처럼 무점포 창업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본사(제조사) 입장에서는 신제품 론칭에 들어가는 마케팅·영업비용에 대한 부담을 무점포 창업을 통해 창업자들에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창업자들이 제대로 된 조사 없이 본사의 유혹에 넘어가 쉽게 창업에 나서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본사는 ‘창업비용이 저렴하다’ ‘큰 노력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광고로 창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계약자와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부실 무점포 창업 업체를 규제할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는 현실이라 피해 구제가 쉽지 않을뿐더러 추가 피해도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무점포 창업이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가맹사업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별다른 조처를 하고 있지 않다. 가맹사업 분야 등에서 발생하는 분쟁 조정을 하고 있는 공정위 산하 한국공정거래조정원도 같은 이유로 무점포 창업 피해 신고를 각하시키고 있다. 일부 피해자는 검찰에 고소를 하고 있지만 업체들의 사기 혐의 입증이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무점포창업을 통한 피해가 폭증하고 있고, 사실상 예비창업자들이 불량 업체들을 분간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만큼 무점포창업에 대한 철저한 주의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서민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서 이기는 건 쉽지 않고 또 비용도 많이 든다”며 “현행법상 가맹사업자 범주를 넓히든지 공정위가 지난 7월 밝힌 대로 가맹사업이나 하도급 계약에 속하지 않는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조정하는 약관분쟁조정협의회 설치를 서두르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가맹거래법률원 관계자도 “올해 들어 상담은 100여건이 들어왔다”며 “경기가 나빠지면서 노인이나 주부, 취업을 하지 못한 청년들을 중심으로 주로 먹을거리·화장품·건강식품 등을 취급하는 사업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무점포 창업의 피해는 쉽게 돈을 벌려는 창업자들의 심리와 이를 악용한 제조업체들의 상술로 인해 발생하는 일”이라며 “창업을 할 때 좀 더 신중하고 꼼꼼하게 판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무점포창업 아이템을 접하게 되는 주요 경로는 각종 언론매체 보도자료”라고 지적하며 “케이블 방송과 중앙 일간지 등을 통해 소자본·고수익 창업아이템이라고 선전하는 것을 정보에 어두운 예비창업자들이 그대로 믿어 버리는 경향이 크다”고 진단했다고 전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현재 법 체계에서는 상법이나 민법 등으로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며 “창업을 담당하고 있는 지식경제부나 중소기업청이 관심을 갖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입법을 검토해야 한다. 지금은 창업자들이 스스로 피해를 당하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무점포 창업과 관련된 피해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언론에서도 지나친 광고성 보도는 지양하고 사업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려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범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