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개국을 앞둔 ‘종편채널’들의 ‘막가파식’행동이 미디어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 타 미디어에 대한 배려나 관심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나만 살아야겠다’는 자세로 일관하다보니, 중소신문사를 포함하여, 종교채널과 지역민방같은 소수채널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오는 12월 종합편성채널(종편) 방송의 개국으로 미디어시장의 본격적인 생존전쟁이 시작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종편방송이 시작됨에 따라 미디어 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미디어의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 매우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다양한 관점과 시각을 지닌 많은 언론들이 등장하는 것은 그 만큼 사회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잣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음은 왜 그럴까? 아직 본격적인 시작도 하지 않은 방송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자칫 섣부른 예단과 같은 미디어끼리 밥그릇 싸움으로 보일까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종편채널의 선정부터 개국에 이르기까지 드러난 문제점을 볼 때 적시하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측면이 있다. 여기에다 한미FTA관련 법안까지 국회에서 지난 22일 통과(?)됨에 따라 향후 드러나게 될 문제점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종편채널과 지상파방송간의 싸움으로 다른 미디어들은 설자리를 잃고 있다
먼저 종편채널과 MBC, SBS의 직접 광고영업에 따른 방송시장의 변동을 들 수 있다. 현재 종편채널들은 방송광고와 관련된 법적규제가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직접광고영업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1981년부터 방송광고를 담당하고 있던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지상파방송광고 판매대행에 대해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가 헌법불일치 판결을 내렸고, 이에 관련된 새로운 미디어렙 법안(종편의 직접 광고영업을 금지하는 법안)도 3년 넘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함에 따라 종편채널과 지상파방송의 직접광고영업은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새 제도가 마련될 때까지 KOBACO가 지상파 방송광고를 계속 판매대행하도록 행정권고를 했을 뿐이다.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먼저 깃발을 꽂아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틈을 이용, 4개사의 종편채널과 기존의 SBS와 MBC들은 자사 중심의 미디어렙을 설립, 방송사들의 본격적인 생존전쟁이 시작됐다. 사실상 종편채널들은 직접 광고영업을 시작한지 오래됐고, SBS는 지주회사인 SBS미디어홀딩스가 광고판매대행사를 설립했고, MBC도 미디어렙 법인명칭을 확정하고 지역MBC사장단들에게 설명회까지 마친 상태이다. 시작만을 남겨 둔 상태이다.
그런데 이들이 직접광고영업을 하게 된다면 방송시장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또 다른 형태의 독과점시장이 형성됨은 자명하다. 지금까지 한국방송공사는 언론의 다양성과 공공성 확보를 위해 지상파 방송프로그램의 광고시간을 팔 때 종교방송과 지역방송의 광고시간을 끼워파는 연계판매로 중소방송들을 지원해 왔다. 지난해 지역방송들은 광고매출의 20-30%, 종교방송들은 80% 정도가 이 같은 연계판매를 통해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방송사들이 각자 미디어렙을 설립, 경쟁체제로 바뀐다면, 종교방송과 지역 민방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지역차별과 함께 정보소외현상이 심해질 것으로 본다.
둘째, 종편채널과 지상파방송의 직접광고영업으로 타매체가 입는 피해부문과 방송내용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지난해 국내 광고시장 총액은 8조 4501억원이다. 그 중 방송광고시장은 3조 3414억으로 전체 시장에서 40%를, 신문 및 잡지시장은 대략 1조 7천억 정도로 20% 정도를, 인터넷 광고시장은 2조 800억원 정도로 대략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간 매체별 광고시장의 규모추이를 보면, 방송시장과 인터넷시장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신문 및 잡지시장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광고주 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종편채널로 광고비가 가장 많이 이동할 매체는 케이블TV, 위성방송, DMB, 지상파TV 순으로 나타났는데, 반면에 인터넷의 증가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았고, 신문 및 잡지시장은 2002년을 기점으로 계속 하락추세여서 상대적(?)으로 감소폭이 다른 방송미디어 보다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추이임에도 불구하고, 종편채널과 SBS와 MBC가 자사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미디어렙을 설립하는 것은 자기만 살겠다는 극단적인 이기심의 표현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미디어법 개정안에는 KBS와 EBS의 광고를 담당하게 될 공영렙 1곳과 민영렙 1곳을 둔다는 것에는 여야가 합의를 보았지만, 여당은 종편의 직접영업을, 야당은 종편도 미디어렙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대립하고 있다. 이것도 지금은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다른 미디어에 대한 논의는 관심밖에 있다.
이처럼 각 방송들이 이익중심으로 시스템을 바꾸다 보면, 프로그램의 질적인 변화도 생길 수밖에 없다. 광고영업을 하기위해서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데, 방송사 내부에서부터 제작이 시청률 중심으로 이어져 공익성보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코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결국 더 큰 것을 잃고 마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최근까지 ‘한류’가 아시아지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시청률도 중요했지만 프로그램의 완성도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셋째, 기존의 방송사와 종편채널들이 새로운 방송시장을 멀리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TV를 가족매체(family media)로 인식하고 있다면, 빠른 변화에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TV는 개인매체(individual media)로 바뀌어져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방송시장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예견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전통적 방식의 TV방송에 얶매어 이전투구를 고집하고 있다면,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없다. 단적인 예를 보자. 요즈음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불과 2-3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뭔가를 읽었지만, 지금은 듣거나 볼 뿐이다. 책이 사라진 것이다. 모든 것을 손 안에서 해결한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이처럼 기존 미디어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한다. ‘삐삐’라고 일컬어진 호출기도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극소수를 제외하고 순간적으로 거의 사라졌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을 비롯 새로운 개인 매체의 등장은 방송시장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인가? 기존 지상파방송사와 종편채널들이 심사숙고해야 할 부문이다. 종편의 경우 대략 4천억 이상의 자본금이 필요한데, 그 만큼의 자본을 지금 상황에서 방송에 투자할 가치가 있느냐는 점이다. 물론 출범을 앞둔 마당에 이런 논의가 아무 의미없는 얘기일수도 있지만, 미디어수용자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문제의 양상을 예견할 수 있다.
어떤 기업이던지 초기에 투자했던 자본금을 가능한 빨리 회수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보니 광고수익에 엄청난 비중을 둘 것이고, 모든 프로그램은 광고에 맞는 형태로 바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개인매체로 바뀐 상태에서 그 만큼의 광고효과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기업들은 광고매체로서 종편채널을 회피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복합 미디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문과 방송을 통해 기업을 압박할 것이다. 이런 미디어의 압박에 자유로울수 있는 기업이 대한민국에 몇 곳이나 있겠는가? 결국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기업들이 종편채널들의 의도대로 끌려 갈 것은 뻔한 일이다. 이런 시스템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신문사들이 그렇게도 방송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일 뿐 수용자들은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본다. 현재 4개사의 종편채널을 ‘1강1중2약’으로 보고 있는데, 향후 어떻게 될 것인가는 종편채널 당사자들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넷째, 한미FTA 체결 이후 미디어시장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을 곳으로 방송시장을 들 수 있다. 지난 달 17일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법 시행령과 방송프로그램 편성고시’에 대한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현행
협정 이후
외국인 간접 투자한도
50%
100%
국내영화 편성비율
25%
20%
국내애니메이션 편성비율
35%
30%
외국제작물 1개국 편성비율
60%
80%
이 내용은 협정 발효시점부터 3년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된다. 물론 과거처럼 외국의 영상제작물에 한국의 문화가 좌지우지되는 시대는 아니다할지라도 국내 영상물 제작시장을 고려했을 때는 전혀 다른 결과도 예상할 수 있다. 지금도 동일프로그램을 위성채널과 케이블TV의 여러 채널에서 몇 십번을 보아야 하는 상황에서, 외국 프로그램의 비율을 지금보다 높인다면 그 이후의 과정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외국인 간접 투자한도가 50%에서 100%로 늘었다는 점이다. 보도와 종편, 홈쇼핑을 제외한 일반 채널에 대한 간접 투자(한국법인 설립방식)가 가능한데, 많은 영상물을 제작하고 있는 미국의 방송사업자들이 한국내 법인을 설립하면 영상물의 가격상승은 곧바로 이어질 것이고, 기존에는 수입하여 방송을 했지만 이젠 제작사가 직접 방송을 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가격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특히 미디어렙에 외국자본이 들어온다면, 종편채널의 편성에 자본의 영향력이 커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SBS의 미디어렙인 미디어크리에이트에 일본의 광고회사인 ‘하쿠호도’가 20%의 지분참여를 하고 있다.
다섯째, 종편채널들의 무리한 요구를 들 수 있다. 먼저 채널배정에 대한 부문에서 심각한 잡음이 나고 있다. 현행법상 채널배정권한은 전적으로 유선방송사업자(SO)들에게 있는데,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커진 것이다. 4개의 종편사들은 모기업인 신문사를 통해 자사들의 주장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시장규모에 비해 사업자가 너무 많다는 점을 시인하면서 “2-3년간 케이블TV의 낮은 채널 배정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매경은 “종편 성공하려면 낮은 채널번호. 의무전송 보장돼야”라고 주장하면서, 기존 KBS1.2, MBC, SBS를 주변부로 돌리고 그 안에 종편채널과 홈소핑채널을 배치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현행 방송법에는 KBS1과 EBS 등 14개 채널을 공익을 위해 반드시 보내야 하는 의무전송채널로 정해만 두었을 뿐 채널 번호를 규정하진 않고 있다. 그래서 전국 통일번호를 가지고 있는 채널은 하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종편채널들의 낮은 숫자의 특정채널 요구는 지나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한겨레에 따르면, 종편채널 4개사는 주요 SO들과의 협상에서 15, 16, 17, 18번을 배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종편채널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기준도 지극히 애매모호하다. 종합편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존의 지상파 TV기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입장과 케이블 TV채널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입장이 날카롭게 대립해 있는데, 방송심의위원회에서는 두 채널을 혼합한 절충형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국내 방송시청형태가 90%이상이 케이블과 위성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종편채널은 기존의 지상파 채널과 다를게 없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도 반드시 지상파TV에 준하는 심의를 받아야 할 것이다. 제1기 방통심의위원이었던 백미숙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방통심의위는 시청자 입장에서 방송내용의 질과 방송문화를 관리해야 하는 기구로서 후발 진입자인 종편의 산업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방송사는 기업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사회적 영향력과 공익성을 배려하는 정책이 우선해야
방송사는 분명 기업이지만 사회에서 지니고 있는 영향력과 책임성 때문에 이익에 많은 비중을 두는 일반 기업과는 다르다. 돈벌이 수단으로 방송을 소유해서는 안되고, 운영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최근 국내 방송시장은 일반 기업과 같은 형태의 모습을 너무 많이 드러내고 있다.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스캔들’이라는 추한 사고가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종편채널을 소유하고 있는 Big 4 신문사들의 이같은 행태는 더하다. 10 여년전 방송광고자유화가 논의될 때 이들 4개 신문사는 “광고시장의 질서가 왜곡되고, 언론산업의 다양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면서 적극적인 반대를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들 스스로가 광고자유화를 부르짓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정부는 방송사를 키웠을 때 나머지 미디어들은 생존경쟁에서 분명히 밀려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왜 종편채널에는 그 많은 특혜를 주는가. 이율배반적이다. 다시한번 정부의 정책에 실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