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인수합병·기업공개 통한 민영화 전략도 무산될 가능성 커
정책금융·민간은행 성격 혼재…민영화 반대 비판 여론도 감안
산업은행 민영화 변태적 추진…정책금융 전체적인 밑그림 왜곡
강만수 회장 행태 등 ‘묻지마’식 행보, 부정적인 시각도 팽배


중단과 재가동을 반복했던 산업은행의 민영화 작업이 또다시 중단됐다. 정부가 일단 반대 여론에 후퇴를 선택한 것이다. 무엇보다 금융위원회와 감사원이 산업은행의 행보에 일일이 어깃장을 놓고 나서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현재 금융권에 쌓여 있는 현안이 너무 많아 순위가 뒤로 밀렸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은행 인수합병과 기업공개를 통한 민영화 전략도 향후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산업은행 민영화 추진 중단은 상당 기간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 정책 현안 후순위로 밀려
산업은행이 이렇게 된 상항에 대해 금융계에서는 “일단 내년에는 총선이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재계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선거공약이었던 민영화는 자칫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큰 편”이라고 전망하는 분위기다.
또한 익명을 요구한 금융위원회 고위관계자는 “현재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민영화는 거의 논의가 안 되고 있다”며 “일단 산업은행 건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산은지주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담당자들은 산업은행 민영화 추진 계획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방식은 산업은행이 제시한 내용으로, 국내외 은행 인수합병을 통해 수신기반을 확충하며 민영 은행의 틀을 갖춰나감과 동시에 기업공개를 추진하는 방안이다.
이러한 방안은 강만수 회장이 직접 의욕적으로 챙겨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9월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산업은행 인수합병 관련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 대내외적으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혀 주목을 모았다.
이러한 강 회장의 발언은 지난 6월 정부가 산은지주의 우리금융 인수에 제동을 걸면서 인수합병을 통한 민영화가 사실상 어려워진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받았다. 아울러 강만수 회장은 “민영화는 2014년까지만 이뤄지면 되기 때문에 아직 시간이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이 자리를 통해 강만수 회장은 민영화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밝혔다. “민영화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고 언급했던 것이다. 강 회장의 이런 발언은 지난 10월 26일 구체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MB정권 말기 강만수 회장 영향력도 떨어져?
정부와 산업은행 등에 따르면 산은지주와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실무진이 산업은행 민영화 세부 추진 계획의 일환으로 산은지주 기업공개를 협의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인수합병을 통해 수신 기반을 확대한 뒤 상장하겠다는 기존 전략의 수정을 의미한다.
산은지주 주식을 직 간접으로 보유하고 있는 재정부도 산은지주 기업공개에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가 최근 국회에 보고한 내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산은지주 지분 매각을 통해 9,000억 원의 세외 수입을 책정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형 인수합병이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정부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기업공개 뿐”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 강만수 회장은 최근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 해외 투자자들을 직접 만나 기업공개를 추진할 때 투자 의향을 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사안을 지시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사안을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강만수 회장의 강한 의욕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같은 민영화 논의는 현재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산업은행은 민영화 과정의 관점으로 볼 때 과도기”라며 “정책금융과 민간은행의 성격이 혼재돼 혼란이 불가피하고 민영화 반대 비판 여론도 감안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 정부는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대비해 그동안 수행하던 정책기능을 정책금융공사에 떼어줬다. 그 대신 산업은행은 강점을 가진 국제 업무, 투자은행 능력을 살려 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과 다른 민간은행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강만수 회장의 생각도 이와 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노조 등에서 반대여론이 워낙 거세 멈칫하고 말았다. 대외적인 여론도 악화됐다. 그 일례로 지난 11월 1일 중소기업의 올바른 금융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에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정책금융의 민영화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노조 등 반대여론 거세, 대외 여론도 악화
이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 지부는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올바른 중소기업 금융정책 모색을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前 한국금융연구원장)는 “산업은행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 최대의 금융코미디”라며 “이명박 정부의 특기인 ‘필요 없는 일을 만들어 열심히 하기, 쉬운 일 어렵게 하기’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비난했다.
이동걸 교수는 이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민영화는 정책금융의 큰 틀에서 종합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며 “그런데 산업은행의 민영화가 변태적으로 추진되며 정책금융의 전체적인 큰 그림이 왜곡됐다”고 평가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박선숙 민주당 의원도 “산업은행이 한국정책금융공사로 나눠졌는데 이 같은 민영화는 사실상 실패했다”며 “한국정책금융공사가 하는 대출방식은 산은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취약해졌다”고 주장했다.
설상가상으로 감사원도 산업은행 민영화 움직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대놓았다. 지난 10월 23일 감사원은 산업은행과 산업은행에서 분리된 한국정책금융공사, 금융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정책금융제도 개편 및 운용실태’에 대해 감사를 벌인 결과를 공개했다.
감사원은 “현재 산업은행의 신용등급은 정부의 지급보증 등 지원을 받아 A1 등급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정부지원을 배제한 재무건전성 등급(BFSR)은 지방은행보다도 낮은 ‘D’ 등급 수준으로 향후 민영화 전환 시 경영 악화가 우려 된다”고 밝혔다.
재무건전성 등급은 정부지원 가능성을 배제한 은행 자체의 순수한 재무건전성을 평가한 등급으로 민영화 후의 산업은행 신용도로 볼 수 있다. A~C 등급은 양호한 상태지만 D등급은 ‘경우에 따라 외부지원이 필요할 정도로 재무건전성이 나빠져 있는 상태’일 때 부여된다. 외부지원이 필요한 E등급이 최하 등급이다.
수익성도 다른 일반은행 비해 훨씬 낮아
아울러 감사원은 “산업은행의 수익성도 다른 일반은행에 비해 훨씬 낮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수익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순이자마진은 1.6%(2010년 6월 말 기준)로 5개 시중은행 평균인 2.4%에 비해 훨씬 낮다”고 밝혔다. 은행의 총 대출액을 총예금잔액으로 나눈 비율을 뜻하는 예대율도 일반은행보다 심각히 우려되는 수준으로 지적됐다.
감사원은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 일반은행의 유동성 불안정을 막기 위해 개정된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예대율을 100% 이하로 유지해야 하는데 2009년 12월 현재 산업은행의 예대율은 425%”라고 밝혔다. 다른 시중은행은 105~120%였다. 또한 감사원은 “민영화 이후 산업은행이 100% 이하의 예대율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현재 산업은행이 여러 곳으로부터 제동이 걸리는 상황에 대해 금융권 일각에서는 “MB정권이 말기가 가까워지니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공약을 이행해줄 정부기관의 추진력이 약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관계와 금융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정권 초기부터 강만수 회장이 보여 온 ‘묻지마’ 식 행보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인사들이 많다”며 “그렇기 때문에 MB정부가 말기로 갈수록 ‘왕의 남자’ 중 한 사람이었던 강만수 회장의 파워도 그만큼 빛바래질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한편 지난 2/4분기 산은지주의 자기자본은 23조 원 규모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 은행권의 주가순자산비율을 고려하면(0.5~0.9%) 산은지주가 상장됐을 때 시가총액은 11조5,000억~20조7,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국내 최상위권인 신한금융(21조 원)·KB금융(16조 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규모다.
장범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