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화재원인 규명’, 화재진원지 공개보고 요청 무산
주민요구 ‘발전소 이전’에서 ‘발전소 폐쇄’ 유일한 해결책
발전소 건립은 서울시민 전체 생명 경시한 무책임한 행동
한강 공공성 회복 전략정비구역 등 본래 취지 멀어 갈등
30년간 지역주민들의 끊임없는 민원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당인리발전소 이전문제는 지역주민들의 문제를 넘어 이젠 서울시민의 문제로 부각됐다. 경제성과 안전성 문제로 크게 갈라진 지하발전소 건설문제는 주민과 한전간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할 국가사업이다. 그동안 관계당국과 한국전력은 무엇을 했기에 이런 상황까지 이르렀을까.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나 해결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투명성은 열어 놓았는지 그간의 발자취를 추적해 봤다.“몇 십 년 동안 발전소 때문에 받은 피해가 얼만데,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언제 폭발할지 모를 시한폭탄을 베고 자라고…” 30여 년을 이곳에서 산 박순자(여, 69세)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젠 대통령, 국회의원, 구청장 등 모든 선출직들의 단골 공약메뉴가 돼버린 추억의 ‘당인리 발전소’.
지난 1977년 서울시의 ‘서울화력발전소 공해방지시설설치 재명령 및 고발대상’이 된 이후 30여 년 동안 많은 변화와 개선이 이뤄졌지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지역민들의 민원. 서울시와 한국전력 그리고 지역주민 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아킬레스건으로 부각되고 있다. 현재 한국중부발전(주) 서울화력발전소(당인리발전소)의 모습이다.
당초 당인리발전소를 경기도 고양시로 이전하려던 계획이 고양시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그 대안으로 같은 장소에 100만 KW급 대형 ‘지하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자 했던 한국전력은 또 다시 폭발위험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심각한 기로에 빠져 있다. 이젠 주민들의 요구는 ‘발전소 이전’에서 ‘발전소 폐쇄’로 한층 가열돼 있고, 주민들은 서명을 받은 청원서를 관계기관에 제출하면서 일촉측발을 맞고 있다.
MB ‘문화창작발전소’ 조성 공약 화근
마포구에 위치한 당인리발전소(서울화력발전소)는 한국 최초의 화력발전소로 8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유일하게 서울에 위치한 발전소이다. 발전소이전에 대한 논의는 2007년 이명박 대통령후보가 발전설비 철거부지(81,694㎡)를 매입, 영국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나 프랑스의 ‘오르세 박물관’과 같은 ‘문화창작발전소’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서울시는 2009년 1월 ‘한강 공공성 회복 선언’의 일환으로 합정구역을 포함한 5개 전략정비구역을 발표했다. ‘재개발·재건축의 의미가 아니라 20∼30년 후 한강의 새로운 모습을 창출하기 위해 한강변의 주요 거점 지역을 개발하고 관리하기 위해 육성하는 공간으로 설정했다’고 발표하면서, 특히 ‘합정전략정비구역은 당인리발전소의 공원화와 주변지역을 개발해 서울시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 한강변의 유일한 장소로 한강르네상스사업의 핵심구역이며, 다른 구역에 비해 전략적 개발이 우선시 되어 지정했다’고 소개했다. 이를 위해 ‘평균 30층, 최고 50층 전략정비’, ‘당인리발전소 이전 및 공원화’, ‘강변북로 지하화’ 그리고 ‘359,349㎡ 전 지역 개발’을 약속했다. 지역주민들의 기대감은 당연히 컸다.
그런데 2011년 1월에 발표된 변경 안은 주민들을 매우 실망시켰다. 2009년 원안보다 대폭 축소된 일부 역세권만을 개발하고, ⅔지역은 존치시키는 개악된 지구단위계획으로 변경됐다. 개발도 7층 층고 제한개발과 당인리발전소 이전 및 공원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이는 지난 80여 년 동안 당인리발전소의 공해를 고스란히 안으며 피해를 입어 온 합정, 상수주민에게 상실감을 줄 뿐 아니라 한강의 공공성 회복이나 전략정비구역이라는 본래의 취지와 부합되지 않은 것으로, 이때부터 지역주민들의 서울시와 한국전력 간 본격적인 갈등이 터진 것이다.
발전소 ‘눈 가리고 아옹…치졸한 변명’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가장 큰 반발을 산 것은 역시 당인리발전소 문제였다. 많은 문제들이 발전소의 존치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차후 다른 문제들도 해결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한국중부발전(주)은 “지난 연말 수립된 국가전력수급기본계획에도 수도권 전력공급과 주변지역 열공급을 위한 필수 사업으로 ‘수도권 LNG복합 화력발전소 건설’이 확정됐기 때문에 일단 발전소 수명부터 연장하고 지하발전소 건설을 포함해 이전 계획에 따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당인리발전소 부지에 100만KW의 발전설비와 700Gcal/h의 열공급 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의 반발은 거셌다. 당인리발전소폐쇄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강수씨는 “조그만 휴대용 라이터의 폭발력도 무서운데, 지하 30m에 엄청난 양의 LNG가 있을 때 그 안전성은 누구도 담보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아현동 지하철공사장 폭발사고와 대구 지하철 사고가 지하에서 발생한 가스로 인한 사고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무책임하고 안일한 발상”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전·마포구청 분명한 입장차
근거자료 공개해야
주민 최금자(여, 63세)씨는 “30년 동안 이곳에 살고 있지만 발전소 때문에 겪은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 “보상은커녕 또다시 불안하게 살라고 하니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어디 있느냐”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폐쇄위원회의 강동오씨는 당인리발전소가 한전 측의 유사시 비상발전소라는 주장에 대해 “전쟁이 발생되면 발전소는 우선공격목표가 되어 주변지역에 엄청난 인명피해를 유발시킨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눈 가리고 아옹하는 치졸한 변명”이라며 한전 측의 무책임한 발표에 대해 격분했다. 또한 강 씨는 온수생산에 대해서 “이촌동, 여의도, 반포, 압구정동 주민을 위해 마포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온수를 생산하는데, 그들만 생명이 소중하고, 마포주민은 그렇지 않냐?”라고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당인리발전소 이전 문제는 2008년부터 정부가 작성하는 ‘공공갈등 과제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민원이자 해결해야 할 우선사업이다. 하지만 해결주체인 당인리발전소(중부발전)측은 그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특히 발전소 이전에 대한 부분은 해당 관청과 확연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구청에서 작성한 이전에 대한 내부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발전소 이전의 기술적 가능성을 볼 때 ▲수도권 특히 한강이북지역의 전력계통에 불안을 유발한다(한전측)→ 울화력은 주력발전소가 아닌 보조발전소로 열 공급이 주목적이다.(마포구청측) ▲국가 중요시설에 대한 비상전력 공급원 역할 저해(한전측)→국가 중요시설에 비상전력 공급하는 중부 및 당인리변전소는 계속 존치 가능(마포구청측) ▲여의도, 반포 등에 난방열 및 온수공급 저해(한전측)→별도 존치 가능(마포구청측) ▲대북송전을 위한 전력공급 기지역할을 위해 존치(한전측)→대북송전은 가능하다해도 신규 발전소건설이 더 경제적(마포구청측)이란 주장이다.
결국 마포구청에 의하면, 한전측의 발전소이전 반대이유는 설득력이 없고, 당인리발전소 이전문제는 경제적 타당성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의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당인리발전소측과 마포구청이 제시한 소요예산을 보면 발전소 이전의 경제적 타당성에 관한 내용을 엿볼 수 있다.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한전측과 마포구청측 간에 이전비용이 2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어떤 근거에 의해 예산이 산출되었는지 근거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특히 한전측은 당인리발전소를 난지 물재생센터 옆 부지로 이전할 경우 송전로 부설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고 했지만, 이것도 객관성이 약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강동오 사무총장은 “발전소 이전비용을 많이 산정해 이전이 무산될 경우 혜택을 볼 사람이 누구냐”라며 “현재 당인리발전소는 150명의 직원이 200억 원의 정부지원금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발전소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결국 이 이전안(案)도 고양시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렇게 되자 한전측은 대안(代案)으로 당인리발전소의 ‘지하화’를 들고 나온 것이다. 발전소는 지하에, 지상에는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4월 27일 당인리발전소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서울 LNG복합화력대체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 공청회’는 이 계획의 추진과정 중 일부였는데, ‘깡패용역’에 대한 논란이 불어지면서 한전과 주민들의 반감만 더욱 거세졌다.
발전소 지하화 추진
지역주민 무시한 처사
공청회에서는 군데군데 몸싸움이 벌어졌고, 대다수 주민들이 철수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주민대책위원회에서는 공청회의 무효를 주장하며 공기업이 용역깡패들을 매수해 동원하는 천인공노할 상황이 벌어진 데 대해 지경부장관, 한전사장, 중부발전사장의 즉각적인 사죄와 함께 사퇴를 요구했고, 이번 사태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에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주민들은 “서울시에 의해 합정전략 지구마저 대폭 후퇴한 상황에서 발전소까지 지하화로 추진하는 것은 지역주민들을 무시한 처사인 만큼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주민대책위에서도 “더 이상의 협상은 없고, 유일한 해결책은 발전소를 폐쇄하는 길밖에 없다”고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이후 발전소와 주민간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15일 발생한 당인리발전소 화재사건은 주민들을 또 한번 화나게 했다. 발전소 측은 “가벼운 화재였을 뿐 큰 문제는 없고, 피해도 200만원 정도였다”면서 “소방차 차량 12대와 20명의 소방관이 출동해 30여분 만에 진화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마포소방서 화재조사팀은 “당인리발전소가 중요관리대상 설비여서 만약을 대비해 많은 수의 소방차가 출동했다”고 밝히면서, 이날 소방차는 28대에 소방관 97명이 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대책위에서는 거짓발표와 축소보고에 대해서 강한 불만과 함께 발전소에 ‘화재원인 규명’과 ‘화재진원지 공개보고’를 요청했지만 이루어지진 않았다.
당인리발전소폐쇄위원장 박강수씨는 “어떤 형태로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발전소 건립은 이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시민 전체의 생명을 경시하는 무책임한 일이다”라고 말하면서, “지하에 발전소를 건설한 사례가 선진국에서도 없는데, 왜 서울 도심 한복판에 화력발전소를 건설해야하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면서 발전소폐쇄를 강하게 주장했다.
당인리발전소의 이전 또는 폐쇄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정부나 관계기관에 의해 수면위로 올라온 논의는 없다. 다만 중부발전은 지하발전소건설계획 주민공청회(?)까지 마치고 지식경제부에 인허가 관련 심사를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문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