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전력은 전기료 인상을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올겨울 서민들의 생활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전력은 “원가부담 상승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원가상승의 배경에는 LS·대한전선 등 굴지의 대형 전선업체들이 대거 포함된 전력선 가격 담합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게다가 이들 전선업계가 지난 11년 동안 계속된 업체의 담합으로 받아 챙긴 돈만 3,00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결국 이들 전선업체가 담합을 통해 비싸게 물건을 팔면서 높아진 원가 부담을 서민들이 고스란히 떠맡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전선업계 담합, 서민 전기료 부담 가중
지난 11월 27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전원회의를 열고 한국전력 발주 전력선 입찰에서 무려 11년간이나 담함을 일삼아 온 전선조합과 LS·대한전선·가온전선 등 전선업계에 대해 강하게 철퇴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공정위는 한전의 전력선 11개 품목 입찰에서 물량배분 및 낙찰가격을 담합한 35개사(전선조합 포함)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검찰고발 및 386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고발된 전선업체는 LS와 대한전선·가온전선 및 전선조합으로 드러났다.
업체별 과징금으로는 ▲LS 126억2,500만 원 ▲가온전선 65억7,700만 원 ▲대한전선 32억7,900만 원 ▲일진홀딩스 36억7,400만원 ▲넥상스코리아 14억2,400만 원 ▲대원전선 13억5,900만 원 ▲한신전선 12억1,300만 원 ▲대일전선 10억9,300만 원 ▲JS전선 10억3,200만 원 등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극동전선·대신전선·서울전선·한국전선·한미전선·대륙전선·대한엠앤씨·KTC·천일CIL·KB전선·EMG전선·경안전선·ITC·고려전선·화성전선·두원전선·대륭전선·금화전선·DKC·서일전선·삼원전선·세화전선 등도 과징금을 부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에 따르면 전선조합과 34개 전선제조 및 판매회사들은 지난 1998년 8월부터 2008년 9월까지 한전에서 발주하는 지하전력선 등 11개 품목 구매입찰에서 사전에 물량을 배분하고 수주예정자를 선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업체는 높은 가격에 낙찰을 받은 뒤 배분비율에 따라 담합해 참여사들 간에 배분키로 합의했으며 실제로 이렇게 실행했다.
낙찰 받은 뒤 배분비율 따라 담합
또한 관련 업계 모두가 이런 담합 과정에 참여해 거대한 독점 카르텔을 형성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해당 기간 중 99.4%의 낙찰률을 보였으며 낙찰가 인상을 위해 고의로 유찰시키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국전력은 낙찰가를 9.9~27.3% 인상하는 등 약 200억 원의 추가부담을 떠안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때문에 한전이 추가로 지급한 금액은 총 2,772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렇게 업체가 담합으로 비싼 가격에 물량을 수주한 결과 한국전력의 원가부담을 키웠으며 결국 이 금액만큼 서민들이 부당하게 전기료 부담 상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제재로 전선 산업 분야의 오랜 담합 관행을 타파했고 고착화됐던 담합구조를 와해시켰다”며 “이를 통해 실질적인 가격경쟁 활성화로 전선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며 한국전력의 원가절감으로 향후 전기료도 점차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해당 기업들의 법위반 사실을 한국전력에 통보해 필요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점 카르텔 형성, 99.4% 낙찰률
이처럼 공정위는 전선업계의 담합 관행이 근절되도록 앞으로도 감시 체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제재를 통해 향후 전선업체의 최대 수요처인 한국전력이 발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담합을 계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업체 대부분이 담합사실을 인정한 만큼 앞으로 한전과 해당 사업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도 협의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업계 전반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번 사건에서 걸린 업체 중 상당수가 지난 2년 동안 전선업체 담합사건에서 반복적으로 적발된 업체들이라는 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업체들이 주요 담합사건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릴 정도로 공정거래 인식이 낮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상당수 전문가들은 “전선업계 담합 문제가 일시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지난 2월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전선업계의 4개의 담합사건을 적발해 제재를 가했다. 각각의 사건과 과징금 감면을 제외한 과징금액은 ▲5개 전선업체의 유통대리점 판매가격(387억 원) ▲11개 전선업체의 KT 광케이블 구매 입찰(158억 원) ▲9개 전선업체의 부산 정관구 공사용 케이블 구매 입찰(10억 원) ▲6개 전선업체의 지하철 9호선 공사용 케이블 구매 입찰(10억 원) 등 네 개 사건이었다.
이렇게 4개 담합에 가담한 업체들과 과징금액은 ▲LS(340억2400만원) ▲가온전선(67억4500만원) ▲넥상스코리아(38억8700만원) ▲대한전선(30억2900만원) ▲일진홀딩스(25억5500만원) ▲삼성전자(21억9700만원) ▲대원전선(19억4400만원) ▲창원기전(14억1000만원) ▲SHF코리아(9억5000만원) ▲화백전선(7억1500만원) ▲머큐리(2억2600만원) 등으로 밝혀졌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4개의 사건에서 LS·대한전선·가온전선·넥상스코리아·대원전선 등 5개사는 4개 사건에 모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선업계 담합 고질적 관행
이뿐만이 아니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2005년 하동화력발전소 7·8호기 공사 케이블 구매와 관련해 LS·대한전선 등 9개 업체가 사전에 수주업체를 선정했으며 수주 후 물량을 배분하기로 담합한 행위를 적발해 시정명령과 함께 17억7,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가온전선에 가장 많은 3억3,000만원을, LS·넥상스코리아·극동전선에 2억600만 원, 대원전선·서울전선에 1억7,500만 원, JS전선·일진홀딩스에 1억6,400만 원, 대한전선에 1억4,400만 원 등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한 2009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전력이 시행하는 피뢰침 겸용 통신선 구매입찰에서 담합한 4개 사업자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66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각각 ▲가온전선(17억 원) ▲대한전선(18억 원) ▲삼성전자(17억 원) ▲LS(14억 원)을 부과했다.
더욱이 2003년 5월에도 공정위는 LG전선·대한전선·일진전기에 대해 이들이 2001년 철도청의 전력선 구매 입찰에 참가하면서 사전에 낙찰예정자와 가격 담합혐의를 했던 일을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렇게 빗발치듯 계속되는 전선업계의 담합관행에 대해 업계는 “이들 업체들의 공정거래법에 대한 인식 부족 탓”이라고 지적한다. 전선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현장조사에 나설 당시 업계에 법무팀이 있는 업체가 하나밖에 없었을 정도로 공정거래 위반에 대한 인식이 취약했던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LS측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현장조사를 실시한 2006년 10월31일 당시 전선업계 중에 법무팀이 존재하는 곳은 LS만이 유일했다”며 “2007년 4월 공정거래위원에 자진신고 했으며 그해 6월 공정위로부터 2순위 자진신고 기업 지위를 부여받았다”고 항변했다. 이번에도 자진신고 지위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위, 자진신고 지위 취소 가중처벌
공정위는 “한전이 해당 기간 8~11개 품목에 대해 입찰을 진행했는데 LS는 공정위 조사에 협조한다면서도 품목이 5개라고 하는 등 담합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강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자진신고 지위를 취소해야 하고 가중처벌 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반면 대한전선측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담합에 가담했다”며 “2009년과 2010년 막대한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만큼 공정위가 과징금을 산정함에 있어 최대한 선처를 바란다”고 자세를 낮췄다.
한편 공정위가 제재를 결정한 입찰담합 주도기업 중 가온전선은 자진신고 기업 지위를 인정받아 과징금과 검찰고발이 면제될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상황이 이러한 와중에 “한국전력이 과연 이런 담합행위를 몰랐을까”라는 의문도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십년을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줄곧 이어져온 담합행위를 과연 한국전력이 몰랐겠느냐”는 의혹이다.
최근 3년만 살펴봐도 적자가 6조원에 이르고 국민들에게 원가보다 싼 전기를 쓴다고 생색내던 참이라 적자의 주원인이 원가관리의 부실에서 기인하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도 쏟아지고 있다.
업계는 “취임 두 달째를 맞은 김중겸 사장은 향후 한국전력의 내실 다지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범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