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일보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실질적인 대주주인 정수재단이 갖고 있는 부산일보 주식을 사회에 환해야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노조의 퇴진 압력을 받아온 김종렬 사장이 지난 5일 자진 사퇴하면서 사태 해결을 위해 노조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는 등 사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사추위)구성도 급선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부산일보 사태를 계기로 전국언론노조 부산일보 지부 조합원들이 주장하고 있는 정수장학재단의 사회적 파장에 대해 짚어봤다.
노조, 사장선임 과정 투명성 확보 요구
노조는 6일 성명을 통해 “사장 사퇴 이후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사 공동의 비상대책위를 구성하는 내용을 정수장학재단에 제의했다”면서 “편집권의 독립을 위해선 사원들의 평가를 거치는 사장 선임절차 도입이 시급하다”고 사추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와 관련해 최필립 정수재단 이사장은 지난 6일 부산을 방문, 부산일보 이사 및 국·실장급 간부들과 함께 사장 사퇴에 따른 후속 대책을 논의 했지만 노조가 요구하는 사장후보추천제 도입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날 노조는 사추위 구성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하고 정수장학재단 측에도 사추위 구성에 합의 할 경우, 현재 진행하고 있는 투쟁을 거둘 수도 있다는 입장을 최 이사장에게 전달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사추위 구성을 요구하는 노조와 후임 사장을 선임하려는 재단 간의 싸움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 이사장 등 재단 측은 당분간 사장 직무대행을 임명하지 않고 내년 2월 후임 사장 선임을 위한 재단의 주주총회가 열릴 때까지 국·실장급 간부 5명을 중심으로 TF팀을 구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노조는 “이사장은 아무 결정권도 없는 국장들을 앞세워 노조 탄압을 종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재단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부산일보는 지난달 30일자 신문에 ‘정수재단 사회 환원’관련 기사를 보도하려 했지만 회사 대표가 윤전기 가동을 막아 신문을 발행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는 지난 1일 신문 1면에 ‘부산일보 제2의 편집권 독립운동’기사를 보도,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앞으로도 잘못된 것에 대해 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끝까지 다할 것”이라며 “이러한 일련의 사안들은 결국 노조를 길들이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노조는 지난 2월에도 경영진 선임과 관련 직원들의 뜻이 반영되도록 정수재단과 협의하기로 했지만 재단이 경영권 침해라는 이유로 협의 자체를 거부해 무산된 적이 있다.
부산일보는 지난 1988년 파업으로 기자들이 편집국장을 뽑는 편집권 독립을 줄곧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후로도 정수재단은 부산일보 경영과 편집에 대한 일방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오면서 갈들의 골은 깊어만 갔다. 노조는 실질적인 사원 추천제 등을 통해 사장선임 과정에 투명성을 확보해 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재단의 경영권 간섭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노조 관계자는 “사장을 우리가 직접 뽑는 게 편집권 독립을 완성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재단으로부터 경영을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모든 구성원이 공통된 견해”라면서 “사장이 물러남에 따라 새 사장부터 사추위에서 뽑아야 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노조가 구상하는 사추위는 사원들의 투표로 사장 후보를 3배수로 압축해 재단에 추천하고 재단이 이 가운데 적임자를 임명하는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단의 강력한 경영권 개입에 노조는 어떤 투쟁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정수장학재단은 박 전 대표 영향력下 주장
이런 가운데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는 지난 7일 부산일보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표를 “기본이 안됐다”, “부도덕하다”며 맹비난했다. 또한 유 대표는 “정수재단은 쿠데타를 일으켜 사람을 겁박해서 강탈한 재산”이라며 “정수재단이 갖고 있는 부산일보 주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정수재단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현재 부산일보는 정수재단이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고, 그동안 재단 이사회가 부산일보의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선임해 왔다. 결국 재단이 임명한 사장에 의해 경영이나 인사권에 대한 전횡이 발생하고 이것이 편집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늘 존재해 왔다.
정수재단은 박근혜의 아버지 고 박정희의 ‘정’자와 고 육영수 여사의 ‘수’자를 따 붙여졌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 재단의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매월 1,300만원에 상당하는 금품과 서비스를 받다가, 부산일보 노조원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의 퇴진에 굴복, 지난 2005년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노조는 박 전 대표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박 전 대표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이 재단의 이사장은 유신시절 청와대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최필립 전 대사가 맡고 있다.
현재 노조가 사회 환원을 요구하고 있는 정수장학재단은 부산일보 주식 외에도 전국 19개 지역문화방송사(MBC)를 포함해 30여개의 계열사를 소유·지배하고 있는 MBC 주식의 30%를 갖고 있다. 만약 MBC가 상장하면 MBC그룹 전체의 자산과 가치는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또한 정수장학재단은 서울시 중구 정동에 본사가 있는 경향신문사 건물의 일부와 토지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육영재단도 박근혜와 남동생 박지만의 실질적인 영향력 하에 있다고 노조는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부산일보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전국언론노조 부산일보 지부 조합원들은 박 전 대표의 실질적인 영향력 하에 있는 정수장학재단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서 이번 사태에 대한 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윤종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