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원 징계양정규정 미비로 사건 키워
직위 이용한 상습적 성추행…비난 집중
LG생활건강(대표 차석용, 이하 LG생건)이 성희롱을 이유로 해고당한 직원과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이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 5개월 동안 4명의 여성 직원을 성희롱·성추행한 혐의로 지난 9월 해고당한 전 영업팀장 H씨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사건은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재판에서 회사가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H씨는 징계부당을 이유로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하면서 확산됐다. 중노위는 “H씨의 행위는 노골적 성적 표현이나 동기에서 비롯된 것 이라기보다는 왜곡된 사회적 인습, 직장문화에 의해 형성된 잘못된 생활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고는 과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LG생건은 내규 상 ‘직장 내 성희롱’을 일으킨 직원에 대한 징계양정에 ‘해고’가 포함되지 않아 사건을 키웠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성희롱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회사 내규 상 성희롱 문제에 대한 징계 상한을 해고까지 규정했다면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LG생건에 따르면 지난해 1월 H씨는 LG생건의 방판 모 지역 영업팀장으로 발령받았다. 해당 지역 영업전반을 담당하던 H씨는 여성 직원 4명에게 과도한 스킨십과 부적절한 행동을 일삼았다. H씨는 여직원 B에게 회의실에서 면담한 뒤 “기운을 나눠 주겠다”며 껴안고 엉덩이를 만지는 등 과도한 스킨십을 했다. H씨의 성희롱은 점점 대담해져 지난해 4월 계약직으로 입사한 여직원 C에게 입사 전날 축하주를 사주며 강제로 껴안고 심지어 회식자리에서는 C의 손과 허벅지도 서슴지 않고 만졌다. 또한 퇴근한 여직원 D를 술자리로 불러내 껴안는 등 그해 6월까지 총 4명의 여직원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일삼았다. 사실을 알게 된 회사 측은 지난해 9월 징계위원회 의결에 따라 H씨를 해고 조치했다. H씨의 이 같은 행위에 대해 평소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지 않았냐는 질문에 LG생건 관계자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중도위, 징계양정 부당 밝혀
결국 영업팀장 H씨는 징계처분 양정이 과하다는 이유로 LG생건을 고소했다. 지난해 12월 15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피해 당사자들과 동료 남자 직원들의 진술 당시 직원들 사이에 주고받았던 사내메신저 등의 내용이 구체적이고 신빙성이 있다”며 “H씨가 여직원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만한 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특히 “이러한 행위 사실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다수의 여직원들을 상대로 해 일정 기간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점, 이 사건 근로자는 부서 내 성희롱 예방교육 등을 담당해온 책임자로서 더욱 엄격하게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볼 때, 징계처분 양정이 과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H씨는 올해 3월 14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고 중노위는 “LG생건의 규정상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행한 경우 그 정도에 따라 견책, 감급, 정직 또는 강직 등 징계 처분’ 하도록 규정해 징계양정의 한도에서 해고를 배제시키고 있음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다”며 “이 사건 사용자가 징계 중 가장 중한 해고 처분을 행한 것은 그 징계양정이 과해 부당하다”고 밝혔다. 이에 반발한 LG생건은 중노위 판정 2개월 뒤인 지난 5월 서울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2월 1일 재판부는 “비록 LG생건 규정상 직장 내 성희롱의 최대 징계는 강직(降職)이지만 H씨의 행위는 형법상 강제추행에 해당하고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들의 고용환경을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며 계속적으로 성희롱을 반복하는 경우 권고사직이상의 징계양정 사유에 해당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중노위에 따르면 H씨는 성희롱 관련 내용들에 대해 사실관계를 부인하고 있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자신이 모 여직원에게 “넌 내꺼야”라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하거나 휴무일에 A와 승용차에 동승하고 B와 개별면담 도중 악수를 한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반면 그 밖의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중노위가 한 번 H씨의 손을 들어준 결과 이 사건이 행정법원의 1심 판결로 마무리 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직원교육 관리부재 한계 드러내
LG생건 관계자는 “사실상 요즘에는 회사 내에서 일어난 부정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폭로를 하기 때문에 서로 조심한다”며 “일일이 직원 한명 한명씩 따라다니며 간섭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H씨가 계속해서 법원 판결에 불복하지 않고 소송을 제기한다면 회사 이미지에 타격이 가지 않겠냐는 질문에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억울해서 소송을 제기하는 건 법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면 회사에서는 응하지 않을 수 없다”며 “회사차원에서는 통념상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직원을 해고하는 건 당연하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번 LG생건 직원의 불미스런 행동으로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예전부터 기업들이 조심스럽게 다루던 부분이고 그러한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여러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형식에 그친다. LG생건 역시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부서가 있다. 회사 제도를 통해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나오지 않도록 제재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LG생건이 성희롱 관련 문제에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직원교육에 대해 소홀한 결과로 내비칠 수도 있다. 한편 이번 사안을 두고 가해자 H씨는 회사의 징계사유는 억울하다며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