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중앙회가 사업구조 개편을 확정하면서 금융사업 인력을 대폭 늘리는 등 조직 상부 인원을 증원하는 계획을 밝혔다. 또 8조원 규모의 ‘무이자자금’ 운용권과 인사권 등 중앙회장 중심의 ‘농협그룹’ 통제권도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애초 ‘농산물 판매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농협의 개혁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과 국민 혈세를 지원받아 승진잔치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내년 개편 앞둔 대대적 인사 단행
농협중앙회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업구조개편 검토 및 논의를 대의원회 의결을 거쳐 정부에 제출했다. 농협중앙회 이사회가 통과시킨 ‘사업구조 개편에 따른 2012년도 조직 개편 및 정원 조정안’을 보면 두 단계로 나누어 내년 3월2일 금융지주회사와 경제지주회사를 설립해 중앙회-2지주회사-자회사 체제를 완성시킨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르면 중앙회 정원은 현재 1만8995명에서 4565명으로 1만4430명 줄어들고 신설 예정인 금융지주와 그 자회사들인 농협은행, 농협생명보험, 농협손해보험 등 13곳으로 인원이 분산배치돼 전체 정규직원 수는 2만92명으로 현재보다 1097명 늘어나게 된다.
특히 임원 수도 35명에서 72명으로 비상임이사를 포함해 37명 증가하고 집행 간부인 상근 임원 수도 지금의 26명에서 44명으로 늘리기로 한 가운데 ‘신용사업 부문’ 임원은 8명에서 27명으로 대폭 늘리는 반면 농협 주력 핵심이라고 밝힌 ‘경제사업 부문’은 지금의 8명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에 지난 20일 농협중앙회는 내년 1월1일자로 중앙회와 16개 지역본부의 본부장, 금융사업부 본부장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를 발표했다.
농협중앙회는 “내년 3월 신용·경제 부문을 분리하는 개편을 앞두고 신설법인의 출범을 위해 역량 있는 주요 인사를 발굴, 배치했다”고 밝혔다.
농협 경영구조개편부 관계자는 임원이 대폭 늘어난 것과 관련해 “금융지주가 분리 운영됨으로 인해 임원을 늘릴 수 밖에 없고 사외이사는 법적으로 3명이 필요하므로 전체 이사수의 과반수 이상이며 이에 상근하는 임원 수는 많지 않다”고 해명했다.
정부, 판매 활성화 위한 자본금 지원
최근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판매 활성화 관련 부문’(청과 도매물류센터, 축산물 종합물류센터 등)과 농민 조합원들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경제사업을 강화하겠다’는 주 목적을 가지고 농협에 자본금 4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농식품부 농업금융정책과 관계자는 “농협이 6조원의 지원금을 요청했지만, 농산물 판매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투자와 중복 사업에 대한 투자는 삭감했다”며 “농산물 판매와 관련해서도 지난 3월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안을 받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 등 금융지주는 법인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임원을 늘릴 수밖에 없고, 그 임원들조차 2~3개 업무를 겸임하기 때문에 타 은행에 비해 증가분이 큰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농협도 부족 자본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농협 조직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농협, 농촌을 위한 투자이며 사업구조개편의 대전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농협이 막대한 세금을 지원받아 조직 부풀리기를 하려 한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장상환 경상대학교 교수는 지난 1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협 사업구조 개편 관련 토론회에서 “농협 영업망의 확대로 농협 조직 상부가 비대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협제자리찾기국민운동 본부는 지난 8월 성명서를 통해 “농협이 과연 이번 사업구조개편을 통해 농업인 조합원에게 실익을 제공하는 판매농협을 구현할 의지와 열정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정부 지원기금 4조원이 당초 조성 목적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분리회계하고 이를 관리할 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개편안에도 명시돼 있듯이 판매 활성화를 위해 향후 3~5년의 기간동안 농업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중앙회장 중심 통제권 유지
농협은 중앙회의 기존 조직을 일부 축소하면서도 ‘그룹사 총괄 컨트롤타워’라는 전략기획본부 등을 중심으로 전체 농협그룹의 통제권을 강화시킬 계획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농협중앙회장의 통치자금으로 알려진 8조원대의 무이자자금 운용권과 인사권을 중앙회장에게 집중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경제사업 부문과 신용사업 부문을 따로 분리해 합리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본래의 농협 개혁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최양부 농협제자리찾기국민운동 대표는 농협 최원병 회장에게 “그동안 ‘회장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사실상 중앙회의 모든 돈과 인사권을 장악하고 전횡해 왔다”며 “이에 대한 개혁 없이 중앙회는 ‘농협다운 농협’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서신을 전달했다.
이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온 교육지원부(총무, 기획, 회원지원, 농촌지원 등)를 중심으로 형성된 농협파워그룹에 의해 저질러진 무리한 권력남용과 불투명한 예산집행이 지속되는 한 회장은 조합원 농민과 회원조합의 회장이 아니라 농협파워그룹의 이익에 봉사하는 회장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정부는 농협에게 구체적인 내용도 묻지 않고 백지수표를 내주고 있으며 농협 또한 구체적 실천계획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무엇을 믿고 국민 혈세를 퍼주다시피 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업구조·개혁 의지 재정비해야
농협의 정관 승인권을 가진 농식품부도 농협이 마련한 조직 개편안 수정과 비상근 명예직의 취지에 맞게 중앙회장 비서실을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협 측에 내년 사업구조 개편이 시행되기 전 마케팅회사 개념으로 조직구조를 다시 그릴 것”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농협은 내년 3월2일 시행전까지 농식품부의 요청을 수용해 사업구조를 재정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농협노조는 지금과 같은 형국이 계속된다면 농협 조직 전체의 부실을 초래할 것이라며 농협 구조개편 시행을 2017년으로 연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업구조개편을 2017년으로 미루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사업구조개편을 2017년으로 미루게 되면 조직 전체에 마대한 비용을 유발할 수 있으며,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주장은 자의적 판단이므로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해 논리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또 “개혁에 대한 농협의 의지가 불분명한 것 같다”며 농협 내 지배구조의 개선을 촉구했다.
한편 농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농협이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사업구조 개편에 올인하면서 한미FTA 발효로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농민 피해 대책은 뒷전으로 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도 일고 있어 향후 농협 조직 개편안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은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