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모두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며 그동안 남북화해의 상징이었던 남북정상회담이 다시금 개최될 지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5월 23일, 김 전 대통령은 같은 해 8월 18일 영면했고, 김 위원장 역시 2011년 12월 17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정상회담의 주역들이 모두 사라지며 앞으로 남북관계와 동북아의 정세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화두로 등장했다.
정치권에서는 무엇보다 ‘김정일 사후’ 과연 언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지에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그러나 집권 5년차에 이르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정부의 움직임도 긴박해 졌다. 이 대통령은 김 위원장 사망 여파가 국내 정치·경제·사회에 끼칠 악영향을 차단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 재건을 지원하겠다는 기존의 ‘그랜드 바겐’ 기조를 유지하면서 한·미 안보동맹 강화에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그랜드 바겐’ 기조 유지
그러나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이 대통령의 남북 관계 카드 중에 하나였던 임기 내 정상회담 추진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도 정상회담의 대상이 불명확해졌다.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만남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부분이고, 김정은 체제는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 부위원장으로서는 무엇보다도 3대 세습 안착에 주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의 사망에 따른 북한의 긴박한 내부사정이 안정 국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정기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상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김정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실질적인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입지를 굳히고 자기중심으로 권력기반을 확충시키며 전면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이 보여주는 모습은 흡사 김일성 사후 김 위원장이 보여줬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어 소위 ‘유훈통치’라는 수순이 진행될 것임을 시사해준다. 지난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김 위원장은 3년의 '유훈통치' 기간이 지난 후 권력의 전면에 들어서며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명실상부하게 자리매김했다.
김정은 ‘유훈통치’ 수순
이 같은 상황에 따라 결국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되고, 남한에서도 차기 대선이후 새롭게 구성되는 정권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갈 것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 사후 "남북 정상회담을 바로 배제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류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으로부터 "여전히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이 같이 답변했고, 북한 붕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선 "속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사태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한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정상회담과 관련 "북한이 내년 '강성국가' 해를 거치고 그 다음해까지 김정은이 일정하게 자기 리더십 확보를 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며 "우리 정치일정으로도 올해 대선 후 새 정부가 정상회담을 하려 할테고, 그 다음해(2013년) 가을에는 가능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대목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차기 대선 이후 전망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사)평화통일시민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남북 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위해선 2013년 8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라며 “우리 정부의 정책이 중국과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2013년 대북 정책은 상생과 공영의 평화협력 정책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2013년 8월 정도가 되면 우리 새 정부, 그리고 미국의 대북정책 노선과 인사가 다 정립된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이 시기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가장 중요하고 동년 12월쯤에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여기에 더해 2014년에는 판문점에서 전쟁 종식을 위한 남북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2015년이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을 제시했다.
한 남북문제 전문가는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더라도 군에 대한 장악력이 약한 상황에서 비핵화에 부정적인 군부의 입장을 거스르기는 어렵다"며 "김정은으로서는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군대의 지지가 필수적이므로 대외적으로 강경한 군부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본인을 담대한 '군사의 영재'로 내세우기 위해 국제사회와의 군사적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시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전문가는 "김정은 체제가 강권하게 유지되면 북한이 강성대국을 목표로 개방 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며 "최소한 1년간 북한은 김정일을 앞세운 유훈통치 기간을 가질 텐데 이 기간 정부는 전략적인 대북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적으로 남북정상회담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1박2일간의 김정일 위원장 조문으로 남북간의 경색된 관계를 푸는 작은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전략적인 대북정책 세워야
이들은 조문 차원에서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만났을 뿐 별도의 면담은 없었다고 밝혔고, 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면담에서도 일반적인 얘기들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또 일부에서는 김정은이 두 사람을 깍듯이 예우하고 김 상임위원장이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언급한 것은 향후 남북관계에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김정일이 20년 가까이 후계를 준비해 왔음에도 북한은 상당기간 대외문제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며 남북관계가 최소 1년간은 소강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 내 권력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 속에서 남북 양측 간 냉각국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다.
북미대화 역시 이 같은 선상에 놓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 임기 내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며 남북대화도 현 정부 임기 안에는 커다란 진전을 생각하기에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거기다 남측이 요구하고 있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사과를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가 받아들일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경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