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원들과 친이계의 반목에 해법을 제시하며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만큼 한나라당의 내홍이 날로 심화되면서 그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적쇄신을 둘러싼 비대위-친이계 간 갈등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우려를 나타내며 이와 맞물려 박 위원장의 리더십 역시 위기를 맞은 채 시험대에 올랐다. 한지붕 아래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현 상황에서 박 위원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면서 향후 정국 운영방향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박 위원장은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세 번째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며 “처음 시작하면서 마음에 품고 있던 초심과 목표를 다시금 새기면서 그대로 노력해 나간다면 우리는 당 쇄신을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비대위원들에게는 “항상 국민의 눈높이, 국민의 상식이라는 입장에서 앞으로도 쇄신 작업에 박차를 가해주기를 당부 드린다”고 말했다.
비대위원들의 돌출 행보?
이 같은 박 위원장의 분위기는 비대위원들의 돌출 행보와 친이계의 반발, 당내 쇄신파 ‘반란’ 등으로 당 전체가 내홍조짐을 보임에 따라 이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박 위원장의 리더십 위기는 지난달 27일 첫 비대위 회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종인 이상돈 비대위원이 잇따라 ‘MB 정권 실세 퇴진론’을 주장하며 친이계를 자극했고, 친이계 역시 반격에 나서면서 비대위 대(對) 친이계의 결전을 예고했다.
박 위원장은 이와 관련 “개인 생각을 비대위 바깥에 피력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두 비대위원은 소신을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 친이계가 이들의 전력까지 언급하며 사퇴를 요구하는 형국에 까지 이르렀다.
이 같은 서막에는 이명박 정부 실세퇴진론 주장이 불씨로 작용했고, 또 비대위의 공천쇄신안이 갈등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어버렸다. 더욱이 절반이상 현역물갈이 여론이 득세중인 가운데 본격적인 총선공천국면 돌입시 이에 대한 폭발력은 그 결과를 짐작키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지난달 31일에는 당내에서는 박 위원장이 적극 제동을 걸었음에도 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쇄신파가 ‘한국판 버핏세’를 2012년도 예산안에 관철시켰다. ‘부자증세가 최고세율 구간신설이 아니다’라는 박 위원장의 지론이 당내 벽에 막혀 19대 국회에서 선보일 계획이었던 공약(대형자본가 집단에 공격 과세하는 자본과세)이 좌초된 것이다.
‘한국판 버핏세’ 관철
또한 쇄신파는 향후 대기업 공공구매를 규제하는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법 등 개혁법안 입법도 적극 추진할 계획인 가운데 박 위원장 입장을 개의치 않을 것임을 거듭 밝히고 있다. 박 위원장의 리더십을 위협하는 요인은 이뿐만 아니라 인적쇄신 과정에서 필연인 총선공천물갈이를 둘러싼 당내 분위기도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친박계 4선 이해봉 의원(대구 달서 을)이 전격 총선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당내 중진·고령들의 위기감도 팽배해졌다.
현 정권 핵심실세와 친박영남-고령-다선 의원들 용퇴압박 계기로 작용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 의원이 고령(70세), 다선(4선). 친박계 등 요건을 두루 겸비했고, 현재 여타 영남권 고령·친박의원들은 자신과 무관하다며 부인하고 있으나 비대위가 이미 대대적 인적쇄신을 예고한 마당이어서 이들의 버티기가 오래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당 지지도보다 5%P이상 지지율이 낮은 현역의원들을 일괄 교체하는 방안도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지며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같은 공천기준이 적용되거나 마련되면 한나라당 텃밭인 서울강남 및 영남권 현역들이 줄줄이 공천 탈락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8월 무상급식주민투표 지지율 기준시 강남 갑·을, 서초 을, 송파 갑·을·병, 양천 갑, 광진 을, 중랑 을 등 9곳이 ‘격차 5%P’ 기준을 넘었다.
이미 원희룡(양천 갑)·박진(종로)·홍정욱(노원 병)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했고 쇄신파 정태근(성북 갑)·김성식(관악 갑) 의원도 탈당했다. 영남권은 신년여론조사에서 당지지율과의 격차가 20∼40%를 보인 부산진을(이종혁), 부산 북·강서 을(허태열), 대구중·남(배영식)을 포함해 적잖은 지역구가 물갈이 여파에서 흥망성쇠의 순간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구 물갈이 여파 한몫
하지만 현재 박 위원장의 리더십에 가장 큰 위협은 친이계의 대응이다. 물갈이 등 공천위협을 직감한 친이계가 비대위원 퇴진 등을 압박하며 결사항전의 입장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친이계 일각에서는 두 비대위원의 사퇴를 추진하기위해 당내 비박(비박근혜) 세력을 규합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상처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친이계 장제원 의원은 “우리가 그간 당내 민주화나 반부패ㆍ차떼기 정당의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느냐”며 “동화은행 뇌물수수, 노태우 비자금 조성 사건으로 사법처리 된 분(김종인 비대위원)이 쇄신의 칼날을 휘두르면 누가 복종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우리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일부 비대위원이 ‘자살골 넣는 것’이라고 하는데 계속 이런 식이면 다른 비리를 얘기할 수도 있고, 추가로 다른 비대위원 2명 정도의 비리 형태도 폭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두 사람이 사퇴하지 않으면 우리는 ‘비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고, 많은 분이 뜻을 같이 한다”면서 “한두 명의 비대위원이 당의 존립을 흔드는 행동에 대해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대규모 회동을 하고 집단성명을 발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친이계의 반응은 모두 두 비대위원들을 향하고 있다.
친이계 집단성명 불사도
김종인 비대위원은 대표적인 부패인사이고, 이상돈 비대위원은 천안함 폭침과 관련해 정체성이 불분명한 사람이자 17대 대선 때 한나라당을 탈당한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도와 당에 해를 끼친 사람이라며 두 사람의 사퇴를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당 안팎에는 이와 관련 박 위원장이 이번 위기에서 어떤 해법으로 이를 돌파할지에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친박-친이-쇄신파는 여전한 ‘동상이몽’의 셈법을 나타내고 있다.
친박계에서는 박 위원장이 포용력과 원칙을 적절히 융화해 내분을 수습하면서 대선주자로써의 리더십과 위상이 배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친이계는 당 개혁을 명분삼아 ‘팽(烹)하려는 작전’이라며 의심하는 눈치다. 쇄신파 역시 비대위원들의 발언만 요란하지 실질적으로 당 간판을 내릴 정도의 쇄신안은 전혀 나오고 있지 않다며 친이계와 보조를 맞추는 모습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장범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