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학교폭력 실태, 어디 까지?
대책 없는 학교폭력 실태, 어디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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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교육 제도·시스템 문제…근본대책 수립해야
▲ 학교폭력예방 포스터


청소년들의 학교폭력 문제가 위험수위를 달리고 있다. 작금의 학교폭력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학교교육의 제도와 시스템에 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타인을 밟고 올라서야 살아남는 정글식 경쟁교육과 입시제도 속에서 학교교육은 학생 간의 상호 작용만으로 해결될 부분이 아니다. 학교폭력 실태를 포함한 학생인권 전반에 대한 조사를 통해 학교폭력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학교 폭력은 전국을 들끓게 만들고 있다. 대구에 이어 광주, 서울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폭력 실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중학생들의 ‘왕따’와 ‘자살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같은 반, 같은 학년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난 소위 ‘집단 따돌림’은 이제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정도로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사실 우리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런 사건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몇 십 년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그 때는 사회적 관심을 덜 받았지만 유독 지금에 와서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폭력 근본 원인은 기성세대?

과거의 ‘따돌림’은 그저 장난의 수준에서 일어났다면, 지금의 따돌림은 그 정도를 뛰어 넘어 인간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커지고, 대범해졌다는 것이다. 사건의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가 우리가 보듬어야 할 소중한 2세들인데, 결과만을 놓고 아웅다웅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것이 왠지 안타까울 뿐이다.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른에게 있다. 한 두 명의 아기를 낳다보니 부모들의 이들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내 자식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자식에 대한 사랑은 거의 절대적이 돼버렸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하다는 의식이 같이 따라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지금의 사회적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어른들의 편향적인 자식사랑과 자기 과시(誇示)가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강남의 모 유치원교사가 이런 말을 했다. “남들은 강남의 잘사는 지역에서 유치원교사를 한다면 부러워하는 직업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아요”라고 말을 떼면서 많은 고충을 털어 놨다. 그 중 가장 어려운 점은 “학부형들이 유치원교사를 대하는 태도예요. ‘내가 누군데’라고 말을 시작하면, 우리는 기가 죽어 그 아이한텐 말도 못붙여요. 자칫 그 아이한테 조금만 실수를 하면 그 다음날 어김없이 유치원에 항의전화와 방문이 이어져요. 이런 상황에서 무슨 교육이 되겠어요? 어찌 보면 저희는 그 잘난 사람들 자식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일 뿐이예요”라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우리 어른들이 교사를 대하는 단적인 면을 보여 주고 있다. 초·중·고교의 교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자식들은 우리 부모가 ‘최고다’라는 인식이 생기다보니 교사에 대한 존경심도 예의도 없어지는 것이다. 과거에 선생님들이 존경을 받은 이유 중 하나가 학부모보다 많이 배우고, 좋은 직업을 가졌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가 생기면서 현재 교사들의 위상은 낮아지고, 학생들도 존경심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추락하는 교사의 위상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무슨 의욕이 생기겠는가. 한 언론 보도매체에 의하면 경기지역의 50대 중반 중학교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받은 수모는 우리 교사들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교사 ㄱ씨는 지난해 담임을 맡은 반의 한 학생으로부터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그 학생은 ㄱ교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당신 밤길 조심해. 부모도 찔러 죽이는데 당신 못 찔러 죽일 줄 알아?”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같은 반 여학생을 “아빠는 흑인, 엄마는 창녀”라며 괴롭히고 왕따를 시키는 그 학생을 ㄱ교사가 크게 혼낸 뒤의 일이었다. 이런 수모보다 ㄱ교사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연말에 통보된 2011년 교원평가 결과였다. 학생만족도조사에서 5점 만점에 1.78점을 받아 ‘장기 능력향상연수’ 대상자로 지정됐다. ‘무능 교사’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20여명의 학생 가운데 3명이 참여해 나온 결과다. 그는 “대충 짐작이 된다”며 “왕따를 당한 학생을 보호해주려고 노력한 결과가 ‘무능 교사’라는 낙인이라니 처참한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학교폭력 문제에 적극 나서는 교사들이 학생들로부터 봉변을 당하는 일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교사들이 학부모에게 지도를 요청해도 자녀를 두둔하고 교사를 비난하기 일쑤다.
서울 ㅅ중 교사 ㄴ씨는 왕따 사건을 조사하다 가해 학생 6명이 상담교사에게 ‘ㄴ교사가 진술을 듣기 위해 두들겨 팼다’고 거짓말을 해 곤경에 처했다. ㄴ교사는 “학생들이 왕따를 시키는 것만큼이나 지능적으로 교사를 곤경에 빠뜨린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에 개입하려는 여교사들은 남학생으로부터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경기 ㅇ중의 여교사 ㄷ씨는 몇 달 전 학교폭력을 저지른 한 학생을 나무라다 이 학생에게 멱살을 잡혔다. 학교는 10일간의 등교정지 처분을 내렸지만 열흘 뒤 학생이 학교로 돌아오자 ㄴ씨는 결국 휴직을 한 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이 학교 관계자는 “이 학생은 학교에 복귀해서도 해당 교사 뒤에서 욕을 했다”며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도교사를 바꿔주는 등의 미봉책뿐”이라고 말했다.


학생 대한 적극적인 관심 필요

학교폭력의 주체는 역시 학생들이다. 공교롭게 대구와 광주에서 발생한 이번 학교폭력의 학생들은 중 2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런 문제를 야기시킬까? 한국청소년상담원이 펴낸 ‘2010년 전국 청소년 위기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서 배주미 박사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담 사례로 미뤄볼 때 남자는 중2~중3, 여자는 중1~중2 즈음에 키가 크는 등 신체적 성장이 일어나면서 충동성과 공격성이 강해지며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짙어지면서 ‘질풍노도의 시기’가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1 때는 학교 적응에 바쁘고, 중3 때는 고교 진학 등 진로 준비에 신경써야 하는 데 반면 중2 때는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없는 것도 학교 폭력이 많은 이유로 추측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소위 ‘일진회’라는 조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초등학교부터 시작되어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학교폭력의 예방이나 방지책에 이런 점들이 충분히 반영되었는지가 궁금하다.
정부는 지난 2일 학교폭력 예방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민관협의체 ‘학교폭력근절자문위원회’를 발족, 그 자리에서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이라는 초강경 대응책을 내놓았다. 형법상 형사 미성년자 나이를 현행보다 2살 낮춰 만 12세로 규정하고, 학교생활기록부에 폭력전력과 징계내역을 기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또 현재 강제 퇴학이 불가능한 의무교육과정의 중학생을 퇴학 또는 강제 전학시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학교폭력의 뿌리를 뽑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면서 “자문위원회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에서도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 1만 2,000명의 형사를 투입하여 학교폭력을 뿌리 채 뽑겠다고 발표했다. 청와대에서도 교육비서관을 중심으로 민정, 법무, 치안, 여성가족, 문화체육, 국민권익, 홍보기획 비서관 등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 팀을 구성, 학교폭력근절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안 학교폭력이 계속해서 늘고 있는 이유가 법과 제도적 미비에서 온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1995년 정부의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 수립, 2004년 정부와 국회의 ‘학교폭력 및 예방에 관한법률’ 제정, 2005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 5개년 기본계획’ 수립 등 많은 대책이 수립되었다. 학교폭력 문제가 1995년부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며 각종 정부 대책을 양산시켜 왔지만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

반복되는 ‘땜질식 처방’ 문제

정부가 사실상 첫 대규모 대책을 내놓은 지 무려 16년이 지났지만 ‘반복적인 형식적 대책’과 ‘땜질식 처방’으로 허송세월을 하면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찰에서도 학교폭력과 전쟁을 선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학교폭력 자진신고제도’가 도입, ‘폭력 신고함’이 설치됐다. 2001년 학교 폭력과의 전쟁이 선포된 뒤 전국 경찰서에는 여경으로 구성된 전담수사반이 설치됐다. 2005년 자원봉사 학부모들까지 나서 '어머니 폴리스'를 결성, 청소년 범죄예방에 나서기도 했다. 일진회와 같은 불량 서클, 학생폭력이 사회 문제가 될 때마다 경찰과 교육당국은 예방 및 단속활동에 열을 올렸지만 그때뿐이고 학교폭력은 줄어들지 않아 타성에 젖은 대책만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번에는 경찰서장이 지휘하는 ‘학교폭력 안전드림팀’을 각 경찰서에 설치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도 구랍 28일 효과적인 학생지도 방안을 자율적으로 학칙에 규정할 수 있도록 단위 학교의 학칙 제ㆍ개정권을 보장하라는 내용 등을 담은 `교원의 학생지도권 강화 및 학교폭력 대책 마련을 위한 건의'를 교과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교총은 학교가 학교폭력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학교폭력 예방교육현황,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심의결과 등 기존에 교육정보로 공개하던 사항을 변경하고, 대신 학교폭력과 집단 괴롭힘 해결을 잘한 학교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남자교사 증원과 전문상담교사ㆍ공익근무요원의 확대 배치 ▲사전 예방교육 강화 ▲Wee 센터 등 교육상담 시설확충 ▲학교·급별, 지역별, 유형별 교사ㆍ학부모용 대응 매뉴얼 제작ㆍ보급 ▲학생교육과 가정-학교-지역사회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교육기본법 개정 등도 요구했다.
교총은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와 교사, 학생 간 관계에만 집중돼 있어 교사의 정상적인 학생지도는 제어하고 정작 학생 간의 인권과 학습권 보장에는 유명무실한 모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 정책 실효성 의문

이런 정책들이 제대로 시행되어 학교폭력이 없어진다면 두말 할 나위 없이 반길 일이다. 하지만 실효성에 있어 의구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 동안 정부나 각종 기관에서 시행했던 정책과 제도에 문제가 있어서 지금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폭행에 관련된 주체들 즉 학생들의 참여가 우선해야 하는데, 이들의 참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소위 ‘전문가’라고 일컬어지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모여 만든 내용이 ‘위에서 아래로’(top down)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체계에서 이들 전문가들이 학생들의 현실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얼마 전 여주에서 일어난 여중생 일진회사건에서도 학생들의 화려한(?)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해당학교에서는 아무것도 몰랐다는데, 학교가 아닌 또 다른 곳의 전문가들이 그 같은 폭력학생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관련 정책을 세우는지 궁금할 뿐이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서클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만, 공개를 꺼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각 부처의 보여주기식 ‘판박이’ 정책이 빚어낸 결과”라며 “보다 근원적인 대책 없이는 학교폭력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책수립과정에서 일선 교사와 학생들의 참여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학교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교육대상은 바로 학부모들이다.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그래야 교권이 바로서고, 이 나라의 교육이 제 길을 갈 수 있다. 교육의 민주화와 학생의 민주화는 구별해야 한다. 자유와 민주화에는 반드시 의무와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교육은 방종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학교폭력의 해결은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사들이 기본에서 출발, 머리를 맞대고 참여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문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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