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비대위, 친이계 청산 등 특단대책 불가피
고강도 인적쇄신 대두…정치권에 대한 국민 냉소
한나라당 국민신뢰 기본 무너져…당내 ‘재창당론’탄력?
당 해산, 중도ㆍ보수진영 대개편 예상 시나리오도 제기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검찰 조사에서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의 당사자로 사실상 박희태 국회의장 측을 지목하면서 정치권 일대에 거센 후폭풍이 예상되고 있다.
박 의장이 지난 2008년 7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18대 국회 첫 한나라당 대표이고, 현재 입법부 수장으로서의 상징성 때문에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여기에 박 의장이 친이계의 적극적인 지원속에서 정치적 행보를 진행해 왔기 때문에 친이계에 대한 인적 쇄신 등에도 적잖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직ㆍ간접 연루자 줄 소환
특히 고 의원이 검찰 조사에서 구체적 정황을 밝힌 만큼 직ㆍ간접 연루자들의 줄 소환이 예상되는 가운데, 총선을 겨우 3개월 남겨놓고 ‘돈 봉투’의 변수가 어떻게 밀어 닥칠지 파문의 향방조차 가늠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은 7·3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과 관련 “내가 보좌진에게 보고 받기로는 노란색 (돈)봉투 하나만 들고 온 것이 아니라 쇼핑백 안에 똑같은 노란색 봉투가 잔뜩 있었다”고 밝혔다.
고 의원은 최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날 검찰 진술내용에 대해 이 같이 밝힌 뒤 “당시 여러 의원실에 똑같이 돈 배달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추정했다.
그는 당시 정황과 관련, “내 의원실 여직원에게 노란색 봉투(전대)가 하루 이틀 전에 배달됐고, 그 봉투 속에는 현금 300만원과 특정인의 이름이 적힌 명함이 들어 있었다”며 “나는 깨끗한 정치를 한다는 소신에 따라 바로 돌려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돈 봉투와 함께 배달된 명함과 관련 “의원실에서 명설 선물을 돌릴 때 쓰는 이름 석자만 적힌 간단한 명함”이라며 “봉투 속에 들어 있었는데 한자로 특정인의 이름 석자가 적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상세한 내용은 일부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다”며 자신이 지목한 돈 봉투 살포자가 박희태 국회의장임을 인정했다.
다만 돈 봉투를 돌려준 뒤 걸려 왔다는 전화에 대해선 “오후에 전화가 온 것은 사실이지만 박희태 당시 대표측 관계자가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말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돈 봉투를 들고 온 사람이 K모 수석인 것처럼 언론에 보도된 부분은 정확한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고 의원은 “이번 일을 폭로라고 규정하는 자체가 너무 답답한 부분”이라며 “한달 전 신문에 9회에 걸쳐 칼럼을 썼고 그 가운데 전당대회 문제를 쓴 것이다. 칼럼에서 썼을 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돈 투 문제는 우리 정당의 50년이상 된 나쁜 관행이고 여야가 모두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라며 “이번 일이 우리 모두 바라는 정치발전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방위적 청산 예상
정치권에서는 이와 관련 돈 봉투를 받은 사람과 돈 봉투를 줬다고 지목된 사람 간 진실 공방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한나라당의 이미지는 급전직하로 내몰리는 형국이 됐다고 밝혔다.
결국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지난해 10ㆍ26 서울시장 보선 참패와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등의 악재에서 벗어나 환골탈태의 입장에서 4ㆍ11 총선에 나서려던 행보에 큰 걸림돌이 생긴 셈이 됐다.
특히 ‘돈 선거’라는 오명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박근혜 비대위로서는 특단의 대책이 불가피해졌고, 고강도 인적 쇄신 역시 대두되고 있다. 이와 함께 돈 봉투 사건에 연루된 관계자는 물론 돈 선거 등 과거 관행에 젖은 인사들과의 전방위적인 청산이 예상되기도 한다.
결국 그 대상은 친이계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왜냐하면 박 의장의 경우, 친이계로 분류되며, 실제 2008년 전대 당시 친이계의 전폭적인 지원속에서 대표 등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박근혜 비대위에서 논란의 핵심이었던 ‘MB정권 실세 용퇴론’의 새로운 동기를 부여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동안 용퇴론에 반발해온 친이계가 이번 사태로 목소리가 낮아질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물론 친이계의 이 같은 입장으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친박계 중심으로 모든 문제가 잘 풀릴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워낙 매머드급 폭풍이어서 박근혜 비대위의 위력을 반감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장 검찰 조사 불가피
이런 이유로 쇄신파의 재창당론이 다시금 재발화 됐고, ‘박근혜 비대위’의 대국민 사과 및 낡은 정치와의 결별 선언도 국민들에게는 큰 각인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는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 신뢰의 기본이 무너진 사태이며 당내 ‘재창당론’이 탄력을 받게 되면 당의 해산, 나아가 중도ㆍ보수 진영의 대개편이 예상된다는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고 의원의 진술대로라면 현직 국회의장에 대한 검찰 조사는 불가피해 보이며, 이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냉소ㆍ환멸을 촉진함으로써 그 파장이 한나라당 차원을 넘어서 정치권 전체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수사의뢰가 된 한나라당의 2008년 전당대회뿐 아니라 조전혁 의원이 ‘1천만원 돈 봉투를 뿌린 후보가 있었다고 한다’고 한 2010년 전대,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의 돈거래 의혹, 또한 야권의 ‘돈 선거설(說)’ 등에 대한 수사의뢰가 있다면 신속히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을 향해 공세입장이었던 민주통합당도 ‘전대 당시 돈 봉투가 건네졌다’, ‘금품 살포를 경험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오며 “민주통합당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정치권 국민 냉소ㆍ환멸 촉진
이에 따라 3개월을 앞두고 정치권 전체가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기존 정당과의 단절을 외치는 제3의 정치세력 출현의 당위성을 부여하며 잠재적 대권주자로 부상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일축한 ‘신당 창당설’의 재부상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돈 봉투가 뿌려졌다는 의혹에 대해 “이야기할 게 없다”며 일축했다.
박 위원장은 강원 춘천 신동면 중3리 소 사육 농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돈 봉투 의혹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여기까지 와서 너무들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앞서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통비와 식대로 수백만원씩 거마비를 주던 것이 나쁜 관행이 있었다”고 말했고, 원희룡 의원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대해 “대통령 경선도 예외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경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