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노조 원칙을 이어가는 삼성그룹에 첫 정식 삼성노동조합(삼성노조)이 생겼다. 지난해 7월부터 복수노조가 가능해지면서 삼성노조는 지난 7월13일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노조설립신고를 하고 7월18일 신고필증을 받았다. 이는 삼성에버랜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노조로써 의미가 깊다. 하지만 삼성노조가 설립되기 한달전 에버랜드 FC사업부 임모 차장이름으로 노조가 신고 됐다. 이 노조는 ‘알박기 노조’로 교섭권(회사와 단체협약 할 수 있는 권리)을 날치기하기 위해 구성됐다는 게 삼성노조의 주장이다. 복수노조 관련 법률의 ‘협상창구 단일화’ 조항에 따라 제1노조 뿐 만이 교섭권을 가질 수 있는 법의 허점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삼성노조가 교섭권을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2011년 7월19일 오후 7시 경기도 용인 삼성에버랜드 정문 앞에서 삼성노조 설립보고 기자회견이 열렸다. 3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어렵게 결실을 맺은 것이다. 삼성노조는 박원우 위원장, 조장희 부위원장, 백승진 사무국장, 김영태 회계감사로 이루어졌으며 초기업노조로서 삼성 계열사에 근무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가입가능하다. 삼성노조는 “삼성그룹을 전체적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 아니라 소수라도 같은 생각을 한다면 노조를 확대해 나가자는 취지다”고 밝혔다.
삼성노조 출범…“오래 걸렸다”
삼성노조가 설립되기 전 삼성그룹에 노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그룹 계열사에는 총 9개 노조가 있다.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정밀화학, 삼성중공업, 삼성에스원, 호텔신라, 삼성화재, 삼성메디슨 등이다. 이들은 자발적인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한 ‘유령 노조’이거나 삼성 계열사로 인수·합병된 업체의 기존 노조가 명맥을 이어온 것으로 실제 노동자들을 위한 정당한 노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는 삼성그룹에게 삼성노조는 눈에 가시다. 조 부위원장이 지난 2010년 1월 경 노동조합을 설립하자는 내용의 메시지를 사내 네트워크를 통해 공지했다. 당시 회사 측은 29만개의 메시지를 삭제하는 등 조 부위원장을 회유했다. 노조의 설립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 측의 압박과 회유로 인해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삼성노조회원들은 노조를 이끌어본 경험이 없었기에 설립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조 부위원장은 “노조를 설립하고자 했지만 무경험이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민노총 위원장을 만나 여러 조언을 들으며 진행했다”면서 “그런데 그 위원이 이상한 요구를 하면서 의혹이 생기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민노총을 퇴직한 상태였다”며 회고했다. 이어 “우리들은 그 당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노조가 결성되지 못하도록 온갖 방법을 강구해 방해했다. 회사에서 노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조 부위원장은 “가족이 있는 몸이었고 직장인인데 어려운 길을 택하니 많은 고민이 됐다”며 “노조가 결성되더라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누군가는 시작해야 했다”고 밝혔다.
삼성의 꼼수 ‘부당해고-교섭권 박탈’
조 부위원장은 노조 설립 신고필증을 받기 한 시간 전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2009년 경영 기밀과 임직원 신상 정보를 외부로 빼돌렸다는 게 해고 이유다. 삼성노조는 “노조 활동을 위해 이름과 연락처 등을 정리한 파일을 외부유출 한 것이 아니라 조 부위원장이 자신의 메일로 보낸 것”이라며 “그렇게 중요한 자료라면 2년간 벌어진 것을 모를리 없었을 것이다. 노조 설립 이후에 문제를 삼는 이유는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당일 오전까지 정보유출감사가 이뤄졌다”며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할 때 까지 반복적으로 질문하고 괴롭혔다. 감금수준이었다”고 토로했다. 부당해고를 두고 삼성노조는 회사가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압박이라고 보았다. 현재 조 위원장은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부당 해고에 대한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사측의 방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삼성노조는 지난해 1월 29일 삼성의 어영노조가 생겼다는 제보를 받았다. 삼성노조 설립 한 달 전 임모 차장 이름으로 신고 된 노조가 신고필증을 받았고 임모 차장과 간부 4명이 세운 노조는 6월 29일 교섭권을 체결했다. 삼성노조는 “용인시청에 정보 공개 요청을 했지만 개인정보가 들어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며 말했다. 이로 인해 삼성노조는 2년 동안 교섭권을 가질 수 없게 됐다. 조장희 부위원장은 “다른 나라 사례만 봐도 제1노조에게만 교섭권을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안타까워했다.
4명으로 시작한 삼성노조는 설립 후 많은 이들이 접촉을 시도했다. 정확한 숫자는 거론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조 부위원장은 “한번은 직원 한명이 노조에 가입을 원해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현듯 그 직원이 지방발령을 받게 됐다”며 “(그림자)감시·미행·전화도청은 기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삼성SDI 최모 인사차장 ‘행방불명?’
삼성노조는 설립 전 ‘노조탄압 대응 매뉴얼’ 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그 동안 노조들이 탄압받았던 사례들을 정리해서 만든 것이다. 조 부위원장은 “삼성은 특히 탄압이 심했고 그에 대해 확실히 익혀놔야 노조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한 번은 회사 측에서 시골집에 전화를 걸어 ‘아들이 일은 안하고 데모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어 “예상했던 움직임이었고 어머니는 ‘알고 있어요. 이거 녹취되니깐 이름이 뭐에요’라고 했던 해프닝이 있었다”고 말했다.
왜 이들은 매뉴얼을 필요로 했을까. 삼성그룹이 무노조 경영을 원칙으로 하면서 노조설립에 대한 탄압은 다른 기업에 비해 거칠었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대책위원회(지대위)다. 지대위는 삼성 계열사 사업장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5~8개 가량 포진돼 있다. 주로 주요 계열사 사업장에서 파견된 고급관리들로 구성됐다. 지난 해 삼성SDI 최모 인사차장이 모 방송국에 삼성그룹의 노조탄압에 대해 모든 것을 알리겠다며 제보한 바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에 따르면 최 씨는 회사 재직 당시 노조 탄압을 위해 지대위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심장병에 걸려 회사 측에 산재 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했고 퇴직 후 회사의 비리나 부당한 행위에 대해 폭로하고자 삼성본사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최 씨가 방송국에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했을 때 그가 ‘판검사와 기자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삼성비리에 대해 폭로하려던 언론들을 막았다. 또한 민주노동당과 노조회원들을 미행하며 감시했다’고 말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송국에 비리를 폭로한다고 나선이유가 양심선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속내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얘기 했다.
이상한 지침서 ‘비노조 신념화 교육’
이뿐만이 아니라 에버랜드에서는 직원들에게 노무관리지침서에 따라 ‘비노조 신념화 교육’을 시행해 왔다. 일부 계열에서만 이뤄졌던 교육이 지난 2010년부터는 전 계열사로 확대됐다. 삼성노조는 “교육이 노조의 안 좋은 사례만 집중적으로 다룬다”며 “최근에는 민노총·중구세력들이 연대한 외부세력이 사업장에 들어오면 삼성그룹에 위기가 올 것이라는 흐름의 교육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노동자 출신 정치인을 비판하면서 노조회원들은 정치하려고 노조를 하는 것”이라며 “그들에게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조 위원장은 “분명 노조의 장점도 있는데 너무 안 좋은 부분만 부각한다”며 “무참하게 짓밟히는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것이 노조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삼성전자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나는 백혈병·희귀병 사망자들과 유족들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시사신문은 조 부위원장과의 몇 차례 인터뷰를 시도한 끝에 어렵게 그와 전화 통화를 했다. 조 부위원장은 “최근 에버랜드 동물원 근로자가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며 “상황을 잘 알지 못한 채 근로자 소식을 들었는데 회사 측에서 정황을 조작하려고 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삼성노조에 따르면 근로자는 일하는 도중 얼굴에 상처가 났고 그 상처를 통해서 패혈증에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아픈 상태로 근무를 지속했고 20일 가까이 혼수상태에 있다가 상태가 좋아져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6일 사망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사망자의 얼굴에 난 상처는 단순히 식당 화장실에서 넘어져 다친 것이다. 하지만 삼성노조의 조사결과 그는 동물원에 있는 새 우리에 찍혀 상처가 난 것이다. 회사 측은 이를 알고서도 은폐하려 했다는 것이다.
조 부위원장은 “모든 직종의 노동자들이 처한 위험과 사고에 대해 일방적으로 삼성은 감추려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의 권리나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삼성노조 4명은 각각 회사로부터 고소·고발 된 상태며 ‘MJ 사원(문제 사원)’으로 분류돼 인사상의 불이익도 따르고 있다. 삼성노조는 “삼성근로자들이 회사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게 적극지원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삼성노조의 시작으로 각 계열사에서는 조심스럽게 제2의 노조를 결성하는 분위기다. 이에 무노조 경영을 버리지 못하는 삼성이 어떤 방법으로 제2, 제3의 노조를 무력화 할지, 새삼 기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