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스피싱 피해자 배려’ 이미지메이킹 겨냥?
“현대카드 40%삭감률…감면율 결정권 없다” 비난
최근 현대카드가 카드론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피해액에 대한 원금감면 비율을 단독으로 발표함에 따라 타 카드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께 현대카드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게 피해 원금의 40%까지 감면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현대카드사의 단독 발표는 보이스피싱 피해 방지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를 하고 있던 카드사들에게 적지 않은 타격으로 현대카드가 이번 기회에 고객들을 겨냥해 이미지메이킹을 제대로 하고자 꼼수를 부린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기승을 부렸던 보이스피싱 피해사례에 대한 대책이 미흡한 가운데 현대카드가 보이스피싱 피해 삭감률을 40%까지 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에 협의한 30%의 기준을 훨씬 넘은 수치로 현대카드의 발표에 따라 타 카드사들은 난처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카드, 피해자 위한 배려?
그동안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는 급증하는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한 방지 노력에 수수방관하던 카드사들에게 경고해왔다. 금융위에 따르면 검사나 경찰관으로 사칭하며 진화해온 보이스피싱은 지난해 12월말까지 접수된 피해 사례만으로도 7234건이며 879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사례 5455건에 피해금액이 554억원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58%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순경까지 카드론 보이스 피싱 피해규모는 202억원이며 신한, 삼성, 현대, 롯데, 하나SK, KB국민 등 전업카드사가 전체 피해규모의 93%를 차지한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왔고 ‘나몰라라’식으로 방관하는 입장이었다. 오히려 보이스피싱 피해가 늘어나는 만큼 은행이나 카드사들은 막대한 연체이자를 받으며 돈을 벌고 있는 실정이었기에 대책마련에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지난 20일 정부는 ‘보이스피싱 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관계기관 합동 TF’를 구성해 새로운 형태의 보이스피싱을 비롯,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보이스 피싱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합동 TF는 금융위원회, 경찰청, 방송통신위원, 은행연합회, 여전협회, 주요 시중은행 등 관계기관으로 구성됐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은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구제하자는데 의견을 모았고, 피해금액의 감면액을 놓고 논의해 왔다. 잠정적으로 카드사에 따라 감면 비율은 다르지만 30%수준으로 감면을 하자는데 공감했다. 하지만 12월 27일 현대카드는 생색이라도 내듯 원금의 40%를 감면하겠다고 선언했다. 나머지 60%의 피해금액에 대해서는 이자 감면 대신 3년에 걸쳐 분할상환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에 하나SK카드는 감면 비율을 45%로 5% 더 높게 끌어올려 발표했다.
타 카드사 당혹감 드러내
당시 타 카드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잠정적으로 대략 30% 수준으로 원금을 감면하기로 결정한 바 있는 상황에서 현대카드가 아무런 협의도 없이 40%감면 구제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A카드사 관계자는 타매체와 인터뷰에서 “업계의 공통적인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두 카드사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먼저 구제조치를 하고 나섰다. 이에 다른 카드사의 입장만 곤란해졌다”며 “아직 검토중이지만 감면액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당시 입장을 밝혔다.
현대카드의 이러한 단독적인 행동은 타 카드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카드 관계자는 “다른 이유는 없다. 피해자들을 구제하기위해 예전부터 논의해 온 바 있고 배려차원에서 조치를 내린 것이다. 금융당국의 피해자들을 위한 지침에 따라 결정한 것이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를 위한 과정 속에서 결정이 내려졌고 회사내부에서 적절한 논의를 거쳐 원금 40% 감면을 하기로 한 것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하나SK카드 관계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구제정책들은 각사에서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다. 우리는 타사보다 피해고객이 많지 않았지만 피해를 입은 고객들과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기 보다는 원만한 선에서 합의를 하고 구제를 하는 것이 앞으로 회사 이미지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면서 “고객들과 싸워서 승소한다고 해도 회사입장에서는 유리한 입장이 아니다. 당시 카드사들이 30%까지 검토를 하고 있었는데 현대카드가 40%수준까지 끌어올리면서 그 부분에는 조정이 있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카드사에 피해를 본 고객들이 있기 때문에 그 수준이하로 하게 되면 고객들이 형평성 문제를 들고 나설 수 있다”며 “각 카드사들이 그 수준으로 다시 검토를 하게 된 것은 맞다. 대기업으로서 의무를 한 것뿐”이라고 역설했다.
카드사 원금 감면율엔 이견
여신금융업계와 카드사들에 따르면 신한카드, KB카드, 삼성카드, 롯데카드, BC카드 등 5개 카드사 실무자들은 지난 6일 원금삭감 비율과 감면대상 등을 놓고 회의를 진행해 의견조율을 마쳤다. 협의를 통해 원금감면 비율을 40%이상으로 공통의 안이 나왔다. 하지만 원금감면에 대한 부분은 다 동의하지만 감면율에 대해서는 업계 간 다소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가 있은 후 시사신문은 타 카드사 관계자들과 통화를 시도했고 모두들 현대카드의 단독행위에 대해 “불만은 없다. 회사가 고객을 위해 최대한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며 “조만간 구체적인 대안책이 마련될 것이다”고 말했다. 현대카드가 기준이 돼 선의의 모습을 보인 부분을 타 카드사가 불만을 제기하고 원금삭감 비율을 내리고자 한다면 오히려 카드사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결과로 비칠 것으로 판단에서다.
마침내 지난 12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해당 카드사들이 카드론 및 현금서비스의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과실 정도에 따라 피해액의 최대 40%까지 감면해주기로 합의했다. 장애인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50%의 우대 감면율을 적용하기로 했고 피해 구제 대상은 지난해 1월부터 같은 해 12월 초까지 발생한 카드론 또는 현금서비스 보이스피싱 피해자다. 카드사들은 오는 16일부터 해당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 절차를 안내할 예정이다.
현대카드가 선두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을 위해 구제하기로 나선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독특하고 기발한 광고마케팅을 통해 단숨에 카드사 순위 2위까지 끌어올리며 1위 탈환을 목표로 하는 현대카드가 이번 일을 계기로 단순히 고객들을 위한 선의의 차원에서 배려를 한 것인지 또하나의 마케팅으로 꼼수를 부린 것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